“종합경제대책 기본방향부터 잘못됐다”
  • 김필상(고려대교수)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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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의 늪으로 빠져가는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주기 위하여 정부의 종합경제대책이 발표되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대출금이 1%포인트 인하, 1조원의 정책자금의 신설 및 통화의 신축운영이라는 금융지원정책이 주요내용을 이룬다. 우리경제의 견인차인 수출과 투자가 저조한 상태에 있음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어느 정도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극도로 위축된 기업의 투자심리가 이같은 금융지원에 의해 되살아나면 우리경제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플레와 投機의 씨앗 뿌려

 그러나 문제는 이 정도의 정책변화로 구조적으로 깊게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쉽사리 회복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현실적 상황에 비추어 산업투자를 부추기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실 원화절상, 노사분규 등으로 심한 고통을 겪은 후 시설투자에 등을 돌리고 부동산과 증권투자에 열중해 온 기업들이 이 정도로 다시 돌아설 것인가를 따져보면 이번 조치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조치가 별효과 없이 끝나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금리인하 및 통화량증가가 새로운 자극제가 되어 인플레이션과 투기의 악령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정부의 조치는 한가닥의 희망적 기대에 너무도 큰 리스크를 져야 하는 대책이다.

 우선 우리경제는 노동쟁의와 인플레이션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이 소용돌이는 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본격화된 민주화의 대가로 나타난 구조적 현상이다. 우선 양대선거에서 풀린 대규모 자금은 즉시 경제를 긴축의 고삐에서 풀고 물가를 자극하여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현상을 가져왔다. 여기에 86년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무역흑자가 대부분 통화증발로 연결되면서 인플레이션의 기세가 치솟았다. 한편 민주화과정에서 자기몫을 찾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요구와 더불어 노동쟁의가 전산업에 걸쳐 확산되었는데, 이로 인해 임금이 큰폭으로 올랐다. 아직 노동집약성이 강한 우리나라의 산업특성 때문에 임금상승은 상당부분 물가상승으로 연결되었고 물가는 더욱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또하나의 경제,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이 인플레이션과 투기라는 제2의 소용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에 대한 선호가 그렇지 않아도 높은데 물가불안이 겹치자 투기는 일시에 열병처럼 확산되었다. 결국 이러한 二重의 악순환 속에서 우리경제는 물가가 오르고 실업은 증가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겪게 되고 불균형의 악화를 가져왔다. 이와같이 문제가 심각한 상태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노사 및 분배의 제도적 개혁이 없는 한, 일시적 금융지원조치로 경제가 되살아나리라고 믿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위기적 상황으로 만든 원인은 무엇인가?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통화금융기능의 미비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운영에 있어서 퉁화금융의 정상적 기능 발휘는 경제 및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유도하는 데 기본조건이 된다. 이 기능이 제대로 안정돼야만 통화 및 저축이 적절히 조정되고, 동원된 자금이 효율적으로 산업에 배분되며, 또한 산업발전을 통해 형성된 부의 균형적인 분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기능이 관주도체제로 인해 제한됨으로써 오늘의 난관을 스스로 孕胎해 온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통화 및 금융의 운영은 경제의 다양화된 수요를 무시한 채 정치적 팽창위주로 운영되어 온 것이며 경제의 안정화 및 균형적 발전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이번 정부의 조치는 정책금융을 강화하고 금융자율화를 역행시킨다는 점에서 근본적 치유책과는 정면으로 상반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이 난관을 극복하는 우선적인 길은 심한 고통이 따른다 할지라도 안정을 기본골격으로 정착시키고 여기에 입각하여 통화신용의 시장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돈의 물줄기 제대로 잡아야

 사실상 지금 우리경제의 문제는 시중에 자금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선거 및 무역흑자를 통해 오히려 대규모의 통화팽창이 있었다. 이것이 제대로 관리가 되지 못함으로써 오늘의 위기적 상황으로 발전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경제가 해결할 기본적 문제는 자금순환체계를 정상화시켜 생산적 투자로 부동자금을 유입시킴으로써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율적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근원적 치유를 외면한 채 정부는 억지통화환수만을 꾀하여 오다가 결국 제도금융의 자금만 고갈시키는 아이러니를 발생시켰는데 여기서 기업들의 자금난호소가 빗발치자 어쩔 수 없이 이번의 진통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부는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고 새로운 차원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우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기득권세력의 저항이나 압력을 배제하고 강력한 입법 및 행정조치를 취하여 기업들의 투기심리를 불식시키고 건전한 산업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예산의 삭감 등을 통하여 정부 스스로가 앞장서서 인플레이션의 불안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노사가 자기파괴적인 분규를 지양하고 기업발전을 공동목표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일시적인 마약성 경기부양책이 아니고 안정기반의 조성과 건전한 투자환경의 정착을 위한 정부의 결단력과 지도력 발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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