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형으로 범죄 막을 수 없다”
  • 서명숙 기자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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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범에게 딸 잃고 사형폐지운동 벌이는 미국의 마리에타 예거 여사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는 1989년을 ‘사형제도 폐지의 해’로 선포한 바 있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그 어느때보다 “인간의 생명은 어떠한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지난 5월에는 각계인사 3백명이 참여하는 ‘사형폐지운동협의회“(공도의장 이상혁변호사)가 민간기구로 발족되어 사형폐지 운동의 본격적인 장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법을 집행하는 쪽으로부터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올들어 인신매매?떼강도 등 흉악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그 수법도 점점 흉포해지자 지난 8월 법무부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그동안 집행을 미워왔던 사형확정 죄수들 가운데 서진룸살롱 사건의 주범등 7명을 ‘전격적으로’교수형에 처했다. 지난 86년 이윤상군 유괴살해범 ooo의 처형 이후로 3년2개월만이었고, 새로 옮긴 서울교도소서는 처음으로 사형수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사형제도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란이 일기 시작한 가운데, 12월12일 앰네스티 한국연락위원회와 사형폐지운동협의회의 초청으로 미국의 사형폐지운동가 마리에타 예거(51)여사가 방한하여 대구, 광주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사형제도야말로 폭력을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제도”라고 주장하는 그녀를 13일 오후 6시 대구 YMCA 강연회 직후에 만났다.

 

● 여사는 특별한 개인적 동기에서 사형폐지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73년에 7살난 막내딸이 유아 연쇄살해범에게 유괴되어 강간당한 뒤 1년이 지난 뒤에야 범인의 냉장고 속에서 토막난 시체로 발견되엇어요. 처음 2추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다음 찾아온 감정은 범인에 대한 증오심이었고 꼭 찾아내서 교수대 위에 올리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이었지요. 흉악범죄 피해자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스런 감정이지요.


● 그런데 어떻게 그 감정을 극복하고 오히려 사형폐지운동에 헌신하게 된 것입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범인을 사형시킨다고 하여 내딸이 다시 내품에 안긴다거나 나와 함께 웃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때부터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벌과 함께 고통을 받아야 하는 범인에 대해 연민과 동정, 나아가 진심으로 염려를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뒤 범인이 잡히고 그가 정신질환자라는 걸 알게 되자 오히려 내쪽에서 사형만은 면케 해달라고 주정부에 탄원했지만 범인은 나머지 12건의 범죄까지 자백한 뒤 경찰서에서 자살해버리고 말았읍니다. 그 끔찍한 경험을 통해 흉악범을 사형에 처한다고 사회정의가 바로 서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또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깨닫고 사형폐지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이지요.

● 여사가 속한 사형폐지운동단체 ‘솔라스’(SOLACE?미국흉악범피해자가족회)의 회원들은 모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인가요?

지난해 7월에 발족한 ‘솔라스’에는 현재 2백50여명의 회원이 가입돼 있습니다. 대부분 흉악범죄에 가족들을 희생당했으면서도 ‘국가가 저지르는 또다른 살인’인 사형에는 강력히 반대하는 사람들로서 서로 모여 위로하고 사형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사형수 가족들도 있지요. 솔라스회원들의 사형폐지 호소야말로 실제로 범죄에 희생당한 가족들의 주장이기 때문에 설득력도 가장 강한 것입니다.

● 그러나 반드시 개인적인 복수심 때문에 사형제도 존속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엔 미처 상상키도 어려웠던 흉악범죄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범죄 예방이나 억지를 위해서는 사형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크게 제기됩니다만…

흉악범죄가 늘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사형을 폐지했던 일부 주에서조차 사형제도를 부활하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형비율이 높은 주일수록 흉악범죄의 발생률도 높다는 통계가 나와 있지요. 반면에 현재 사형제도를 전면 폐지한 나라가 35개국인데, 대부분의 나라들에선 이를 폐지한 이후에도 살인범죄가 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형제도가 범죄를 예방하고 억지하는 효과를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리 숭고한 목적이라 해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감형이 없는 종신형도 충분한 범죄 억지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 사형폐지가 가장 절실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잘못된 판결’로 희생당하는 억울한 사형수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오위웅이라는 사형수가 ‘나는 억울하다’고 외치며 사형장에서 죽어가기도 했는데, 미국에서는 오심이 별 문제가 안되는지요?

오심은 미국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비극적인 일입니다. 지난 40년 동안 사형수가 처형된 후에 진범이 나타난 경우만도 25건이나 있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사례까지 합치면 그보다 훨씬 더하지요. 그밖에도 소수민족, 토착 인디언, 유색인종, 흑인들은 인종차별이나 가난 때문에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형판결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사형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죄악입니다.

● 한국의 사형폐지운동 실태를 보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주마다 사형제도가 다른 미국의 경우를 제외하면 일본, 한국 등은 문명국가 중에는 보기드문 사형존치국입니다. 그러나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많은 분들이 열정을 갖고 있어 한국에서도 사형이 폐지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사랑하는 막내딸의 참혹한 죽음을 통해 미국의 평범한 증산츨 가정주부에서 사형폐지운동의 열렬한 ‘전도사’로 변신한 그는 5박6일의 일정을 마치고 17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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