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薰鉉의 장기집권, 언제 끝날까
  • 이승현(바둑평론가) ()
  • 승인 1989.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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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國手位 오른 뒤 1인천하 요지부동…응창기배 우승, ‘세계의 절대자’로 우뚝

‘바둑황제’ 曺薰鉉 9단. 이른바 速力行馬의 장본인이며 전세계 프로기사 중 ‘가장 武士的인 얼굴’의 주인공. 1남2녀를 거느린 다정한 아버지인 동시에 술 한모금만 들이켜도 온몸이 불덩이로 달아오르는 남자. 언제나 담배는 ‘장미’. 또 언제나 5분의1쯤만 태우고 재떨이에 짓이겨버리는 끽연스타일. 피우는 게 아니라 깨무는 것인지, 필터를 흡집 투성이로 남겨놓는 사나이. 언제나 단문단답형인 말투. 그래서 어느 자리건 마이크를 1분이상 들어본 기억이 없는 30대 후반의 유명인사.

바둑판 위에서만 빠른 게 아니라 걸음걸이도 ‘살인적’으로 빨라서 마치 화살처럼 市井을 질주하는 승부사, 그 때문에 金O 9단은 70년대 중반 지리산을 타고 오르는 그의 뒷모습에서 언뜻 하늘로 치솟는 제비를 연상했고, 그로부터 지인들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제비’로 점찍힌 전문기사.

이러저러한 특징들을 열거해 왔지만 曺薰鉉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으레 그러하듯, 일개인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은 서로 일관되게 흘러 어떤 구체적인 형상으로 집약되기보다는 그 개인을 오히려 추상화하고 복잡하게 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그의 실체를 탐문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공인이며 그러면서도 온통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또 그의 실체 자체가 풀리지 않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 물음은 다음과 같다. ‘曺薰鉉의 장기집권은 과연 언제,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 것이가?“

 

바둑계 수준향상에도 불구 기세 안 꺾여

그가 76년 國手位 장악을 발판삼아 우리 바둑계의 절대자로 우뚝 선 지 벌써 14년. 그동안 우리는 쉬지 않고 앞서의 물음을 던져왔다.

과연 그의 세도는 언제 끝나느냐고. 이 황야에 누가 있어, 그의 독주를 마감시킬 것이냐고. 그와 타이틀을 주고받을 강자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출현할 것이냐고.

84년 여름에는 이같은 물음이 월간 <바둑> 특집으로 꾸며지기도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그럴싸한 논증과 함께 많은 대답들을 했다. ‘3년’ 또는 ‘5년’. 또 어떤 이들은 막연하게 ‘근시일내’.

어느 쪽이냐 하면, 대체로 5년 이내 曺의 1인 독주가 끝날 것이라는 진단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끝날 것이라는 진단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큰웃음만 터져나오는 ‘돌팔이’예언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당시는 “5년은 너무 길지 않느냐”는 게 바둑계의 분위기였던 것이다.

프로기사들이 기업체 취업이 실현돼 생활안정이 보장되는 등 당시 우리 바둑계는 가위 ‘보이지 않는 革命’이 이뤄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혁명의 열기는 바둑계 전반의 수준향상을 강력하게 예고하고 있었고, 그런 맥락에서 曺의 1인천하는 조만간 붕괴될 것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5년6개월이 지난 현재도 曺의 1인천하는 요지부동, 뿐인가 曺薰鉉은 올들어 일약 세계의 절대자로 부각됐다.

그는 지난 9월 제1회 應昌期배 세계바둑선수권전에서 ‘鐵의 수문장’이라는 중국의 ?衛平 9단은 격파, ‘바둑황제’로 등극한 것이다. 이는 분명히 ‘한국바둑’의 깃발 세계만방에 휘날린, 다시 말해 한국 두뇌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쾌거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자랑스럽고 또 존경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기가 차다. 曺薰鉉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구길래 혁명기에서 5년이 흐른 지금도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더욱 힘차게 기세를 떨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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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물어보자. “曺의 장기집권은 언제,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그러나 대답은 세상 어드메에도 없다. 그렇다면, 曺薰鉉자신은 자기 전성기를 어느 시점까지 보고 있는가.

“애닐이면 끝날 것이다.”

실로 무성의한 대답 같기도 하고, 얼핏 禪문답처럼 들리기도 한다. 또 이같은 물음에 대해 자못 탐탁치 않다는 반응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정도 대답으로 그만둘 수는 없다. 계속 물어보라. 과연 ‘바둑황제’는 어떻게 자신의 앞날을 예언하고 있는가.

“劉昌赫?李昌鎬 3단이 얼마만큼 빨리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그 진부하고 부질없던 물음은 어떤 대답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궁극적으로 해답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더라도.

曺9단의 힌트는 계속된다.

“劉昌赫3단은 앞으로 3년이 문제다. 그 기간에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세계바둑계의 판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劉3단은 24세의 기대주. 홍안의 미소년 시절부터 줄곧 ‘미완의 대기’로 손꼽혔고, 작년에는 曺9단으로부터 大王타이틀을 빼앗는 ‘사건’을 저질렀다. 앞으로 3년간 더 정진한다면 ‘사건’형식이 아닌 ‘일상사’형식으로 대권을 노려볼 만하다는 것이 曺9단의 예언.

“李昌鎬3단이 앞으로 어느 정도의 대기가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曺9단은 특히 자신의 內弟子인 李3단에게 기대를 거는 눈치다. 李3단은 그의 표현대로는 “10년간은 계속 성장할 재목.”뿐만 아니라 曺9단이 “지금 당장도 나보다 세다”고 엄살(?)을 부릴 정도의 보석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렇게 예언해야 되겠다. “曺의 1인천하는 劉?李3단에 의해 잠식될 것”이라고. 그 시기는 전례에 따라 ‘5년내’라고 못 박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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