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막히면 경제도 막힌다
  • 박중환 편집위원대리 ()
  • 승인 1989.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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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시간·기름 허비 등 돈으로 치면 연간 3조원 꼴

서울7자7×6×호 개인용달차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노경환(43)시는 “교통사정이 더 나빠진다면 이 짓도 오래 해먹기 어려울 것같다”며 한숨을 내쉰다.


 노씨는 몇 년전만 해도 ‘용달이 벌이’가 짭짤했다고 말한다. 노씨의 ‘터’는 목이 좋기로 소문났던 서울 남대문시장이다. 이곳을 중심으로하여 4대문안을 주로 뛰어왔으니 재미가 제법 톡톡했음직도하다. 그런데 두서너해전부터 형편이 싹 달라졌다. “요즘 남대문시장에서 동대문시장까지 가는 데 보통 한시간 이상씩 걸리지요. 거리로 따진다면 기본요금 거리인 5㎞도 안되는데….” 어이가 없다는 말투다. 소통이 잘 되던 시절에는 5㎞ 거리는 한시간에 ‘왕복 두탕’도 쉽게 뛸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노씨는 “서울 시내 간선도로가 하루내내 차량홍수에 막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마는, 특히 퇴계로·종로·청계로·용산로와 한남대교·잠실대교에서 체증에 걸렸다 하면 한두시간은 꼼짝없이 묶여 있기 마련”이라며 넌더리를 냈다.


웃돈 운임, 물가에 파급

 이런 서울의 교통사정을 살펴볼 때 교통체증에 따른 경제적인 손실은 쉽게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차량들이 거북이 운행을 하는 동안 소모되는 기름값은 경제적 손실 중에서도 하찮은 것이다. 노씨의 경우를 보면 차량소통이 잘되고 화물이 계속 있을 경우 한시간에 5㎞거리를 네 번 뛸 수 있었던 것이 요즘에는 한번 가기도 힘들다는 계산이 나온다. 때문에 노씨와 같이 도심에서 운임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용달차 운전자들은 미터요금대로 운임을 받아선 살아갈 수가 없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얼마전부터 4대문안에서 5㎞ 기본거리를 가는 데에 미터기 요금 1천8백원보다 훨씬 많은 3천원이나 4천원식 받아오고 있다. 노씨는 “이렇게 웃돈을 받더라도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체증으로 막힌 길바닥 위에 붙들려 있다 보면 3천원짜리 10탕을 해내기 어렵다”고 푸념한다. 간혹 차량소통이 잘되는 날에는 3만원을 넘게 벌기도 하지만 이런 날은 달이 바뀔수록 줄어든다고 하소연한다.

 교통정체의 경제적 손실은 노씨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용달을 이용하는 영세상인들은 웃돈운임으로 생긴 교통비 부담을 상품값에 반영시키게 되고, 결국에는 소비자 물가를 올리는 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 파급영향은 이처럼 광범위해 일일이 들먹이기도 힘들 정도다.

 얼마전 서울시와 교통개발원이 공동으로 서울시내 교통체증에 따른 연간 차량의 기름소모와 승차시민의 시간허비를 돈으로 산출한 바 있었다. 이 조사보고서를 보면 연간 손실액은 무려 2조3천1백8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금액은 내년도 국가예산의 10%수준에 해당되는 천문학적인 것이다 이것은 기름소모와 승객의 시간손실이라는 1차적인 요소만을 계산한 데 그친 것이며, 엄밀하게 따진다면 승객뿐 아니라 차를 장시간 기다림으로써 생기는 시민들의 시간손실, 차량의 감가상각 요인, 매연공해 발생에 다른 사회·경제적 대책부담, 사고발생의 추가요인, 장기체증시 승객들의 고통 등의 비용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이런 비용까지 넣어 산출한다면 3조원을 웃돌지도 모른다.

 이 보고서에 다르면 승객이 체증으로 길에서 버리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했을 경우 모두 1조9천8백18억6천여만원이고, 이때 차량이 소비하는 기름값은 3천3백68억1천여만원이라는 것. 시간손실액은 국민 한사람이 한시간에 생산하는 평균 액수를 국민총생산액(GNP)에서 산출해낸 것이고, 기름소비값은 차종별로 조사된 정체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해낸 것이다.

 


“머지 않아 도시기능까지 잃어버릴 수도”

 이 조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서울 도심에서의 평균 차량속도는 불과 시속19㎞이며, 일반버스는 한대가 하루에 평균 3백65.2㎞를 운행하면서 교통체증으로 30초씩 6백9차례나 멈춰선다는 것이다. 승용차는 한대가 하루 평균 75.7㎞를 운행하면서 30초씩 1백26번 멈춰섰다가 다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가용 차량은 하루 평균 3시간 남짓 운행하는 데 정체로 길에 서있는 시간은 무려 1시간 3분이나 됐다는 보고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이런 상태로 서울의 교통을 방치할 경우 90년대 중반에는 도심 평균 차량속도는 시속 15㎞ 이하로 떨어지고, 이 지경에 이르면 국가적인 해결과제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퇴근과 거래처 방문을 하다 보면 하루에 한강 다리를 4번 이상 건넌다는 강장욱씨(40·서울 강동구 명일동)는 서울의 교통실태를 이렇게 말한다. “서울의 교통체증은 불편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고, 최근에는 서울의 도심 간 선로가 온통 동맥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마비증상’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은 머지 않아 뇌졸중을 일으켜 도시기능 자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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