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공룡의 천국
  • 김창엽 기자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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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에서 발자국화석 3천여개 발견

에덴동산이 있기 훨씬 전의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경남 고성군 하이면 해안부근에 수백마리가 넘는 거구의 동물들이 떼지어 산다. 웬만한 빌딩보다 커보이는 몸집을 가진 놈이 있는가 하면, 험상궂은 얼굴에 울퉁불퉁한 몸통을 가진 놈, 길이 1m도 채 안되는 놈, 그리고 그들의 새끼들이 물가를 오가며 갈증을 푼다. 배가 부르면 갯벌에서 장난을 친다.

 대략 1억년이란 時差를 ‘극복하고’ 이들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지난 1982년 1월19일.

 

‘심상치 않은’ 굴곡들

 경북대 지구과학과 梁承榮교수팀은 조개화석 수집차 찾은 덕명리 해안 일대에서 바닷가 암반 위에 새겨진 ‘심상치 않은 굴곡’들을 발견했다. 바위 표면에 이끼와 조개껍질 등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상태여서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凹凸들이었다. 이곳은 원래 물이 들어오면 거의 잠겨버리는 지역이지만, 마침 썰물 때라서 바위 위에 붙은 것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조심스런 처리과정을 거쳐 선명히 드러난 凹凸은 보통사람들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동물의 발자국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실이 학계에 보고된 뒤, 일본, 중국, 프랑스의 공룡학자들이 찾아와 공룡의 발자국이 틀림없음을 보증했다. 작년에는 세계적인 공룡발자국화석 전문가인 美 콜로라도 대학의 마틴 록클리 교수도 현장을 직접 답사, 공룡의 발자국이라고 확인했다.

 국내외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된 가운데 梁교수팀은 최근까지 답사와 발굴을 계속해 그 중간결과를 지난 9월에 열린 한국지구과학회 학술대회에 발표했다. 梁교수팀은 발견 당시보다 10배나 많은 무려 3천여개의 발자국을 더 찾아냈고 이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공룡의 種類, 食性, 步行形態 등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梁교수와 함께 발굴에 참여, 덕명리 공룡 발자국화석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인 林成圭교수(경북대 지구과학과ㆍ고생물학)는 이번에 발견한 3천여개의 발자국을 형태에 따라 12가지 종류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공룡은 네발동물인데 실제 걷는 발은 두발인 경우도 있고 네발인 경우도 있다. 林교수는 자신이 분류한 12종류의 발자국 중 8종류는 ‘二足步行’을 하고 나머지 4종류는 ‘四足步行’을 했었던 것 같다고 밝힌다.

 

발자국으로 食性, 步行形態를 짐작

 발자국화석을 통해 공룡의 식성도 짐작할 수 있는데 林교수는 “코끼리 발자국처럼 둥그스름한 모양의 것은 草食을, 새처럼 날카로운 형태를 띠는 것은 肉食을 주로 하는 공룡의 발자국입니다. 또 肉食을 하려면 동작이 빨라야 하기 때문에 보통 二足步行을 하죠. 그러나 二足步行을 한다고 해서 모두 다 육식성인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번에 발견한 8종류의 二足步行공룡 중 3종류가 육식성인 것으로 판명됐지요. 四足步行을 하는 것은 거의 다 草食으로 봐도 됩니다”라고 설명한다.

 발자국 크기는 공룡의 몸집을 짐작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덕명리 해안에서 발견된 발자국은 가장 작은 것이 약 10cm 정도, 가장 큰 것은 약 1m 정도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林교수는 “1m 정도의 발자국이라면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최소한 50m쯤은 됐을 겁니다. 발자국을 보고 정확히 어떤 종류의 공룡이라고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발자국은 아마 ‘사우로포즈(sauropods)' 계통의 공룡 발자국으로 생각됩니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공룡은 대략 1억5천만년 전서부터 나타나기 시작 6천5백만년 전까지 전성기를 누린 걸로 알려져 있다. 한데 지금껏 국내에서는 이렇다할 만한 공룡의 화석이 발굴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는 공룡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원로 공룡학자 金鳳均교수는 “3천개라는 발자국 숫자 하나만으로도 세계적인 공룡화석 산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과거 한반도지역도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많은 공룡들이 서식했음이 분명해진 것입니다”라고 이번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自然史학습장으로 이용 기대돼

 그간 국내에서는 78년 경북 의성군 탑리에서 공룡의 것으로 생각되는 뼈조각이 발견된 이후 경북 합천군, 군위군 등에서 몇 차례 더 骨格화석이 발견되었다. 지난 83년에는 역시 梁교수에 의해 공룡의 ‘알(卵)화석’이 경남 하동 부근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발자국화석이 발견된 것은 덕명리가 처음이다.

 더욱이 덕명리의 발자국화석은 1백82개나 되는 層準에 걸쳐 나타나 이 지역에 오랜 기간 공룡이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층준이란 갯벌 위에 발자국이 찍힌 다음에 퇴적물이 밀려와 덮이면 하나의 층준이 형성되는 것으로 본다.

 또 덕명리에서는 세계적으로 드문 ‘다이노토베이션(dinoturbation)현상’이 발견되어 외국학자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다이노토베이션이란 공룡들이 심하게 ‘뛰어놀아’ 위의 층준과 아래의 층준이 뒤죽박죽된 상태로 굳어 화석이 된 것을 말한다.

 중생대에 가장 번창했던 동물로, 아직은 멸종의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 그들이 이 땅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잃어버린’ 시대를 찾아주고, 중생대 당시의 강이나 산, 바다의 위치를 짐작케 한다. 또한 덕명리의 공룡 발자국 화석지는 自然史학습장이나 관광지로 일반에게 이용될 수도 있어 발견의 의의를 더욱 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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