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8년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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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의 사건파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는 육군 1군단 예하 부대의 한 창고 구석에는 빛바랜 태극기에 쌓인 한 장교의 유골함이 놓여있다. 벌써 8년째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이 유골의 주인공은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경비 중대 241GP에서 경계근무 중 의문의 권총 탄환을 머리에 맞고 사망한 소대장 고 김훈 중위이다.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은 휘하 소대원들이 야음을 이용해 북한 초소로 넘나들면 적공조와 내통한 충격적 군기문란 실상과 아우러져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또 군대 의문사 문제를 세상에 공론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지만 정작 그의 영혼은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자식을 군대에 보냈다가 싸늘한 주검으로 맞게 되는 부모가 한해 3백여 명. 이들 군의문사 유가족의 심정이야 어느 부모인들 다를까마는 그래도 고 김훈 중위 유족의 비운에는 남다른 데가 있다. 김훈 중위 아버지는 사건 당시 3군 부사령관을 막 예편한 3성 장군 출신으로 부자가 대를 이어 국방에 헌신한 햇수가 36년에 이르는 군인가족이었다.

김척씨는 누구보다 군의 생리와 내부 핵심 정보를 잘 알 수 있었던 입장이었기에 군당국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건 후 아들이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과학적 과학적 증거를 찾아내 들이밀 수 있었다. 그 결과 당시 국회에 김훈중위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까지 구성되어 ‘타살’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사건의 파문이 확대되자 군당국은 1년여 동안 3차례에 걸친 형식적 수사와 군사작전식 세몰이를 통해 끝까지 김훈 중위가 자살이라고 우긴 채 1999년 5월 사건을 종결했다.

이제 ‘진실의 문’ 열자

 그러나 이후에도 아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 8년간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추적하는 험난한 과정에 김척 장군 및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했기에 김훈 중위는 타살당했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웬만큼은 확보하고 있다.  이런 증거들은 김중위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민사소송 과정에서 법정에 제출됐다. 그 결과 사법부에서는 ‘군당국의 허술한 수사는 김훈 중위가 자살했는지 타살했는지 현재까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는 요지의 결론을 내린 상태이다.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도 국방부의 자살 결론을 수용하지 않은 셈이다.  


김훈 중위는 죽음으로써 군대 의문사 문제 해결에 밀알이 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군대에 자식을 보냈다 의문사한 수백명의 유가족들이 비로소 한데 뭉쳐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 폭력 근절 운동을 벌여나갔던 것이다.
 지난 8년간 성역을 향한 군의문사 유가족의 도전은 군당국으로부터 번번이 핍박을 받았지만 결국 지난해 국회에서 군대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올들어 대통령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 목사)가 문을 열었다.

사법·입법·의문사위 모두 자살 인정 안해

5월24일 김척 예비역 장군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김훈중위 사망사건 진정서를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제출했다. 김장군으로서는아들이 간지 실로 8년만에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를 통한 ‘진실의 문’을 열 기회를 맞이한 셈이다. 이날 유가족을 면담한 자리에서 이해동 위원장은 “위원회가 수사권은 없고 조사권만 가진 상태라 진상규명에 어려움은 많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화답했다. 

 아닌게 아니라 첫삽은 떴지만 군의문사위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해 대부분의 군대내 의문사 사건 배후에는 사건이 난 부대의 지휘관과 초동 수사기관의 진상 은폐 및 직무유기 의혹이 숨어 있다. 조사 과정에서 만일 진실이 뒤집힐 경우 책임론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군 내 각종 세력의 입김이 그만큼클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명을 다한 2기 의문사위원회가 지난 2003년 허원근일병 사망 사건을 조사하면서 목격자까지 찾아내 타살이라고 결론을 발표했지만 군당국이 이에 반발해 군사작전식으로 자살몰이를 강행한 전례도 있다. 당시 의문사위 조사관이 군 관련자를 찾아가 중요 자료제출을 요구했다가 권총 위협을 받았는가 하면 현역 군수뇌부 인사가 조사관을 찾아와 타살 방향으로 결론을 내리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같은 악습이 되풀이된다면 군은 국민으로부터 외면받아 스스로 명예를 되찾을 기회를 영원히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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