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오락’ 구설 오른 서울대 총학생회장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5.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인 게임기 제작 회사 음향팀장 재직 선거 기간에는 “아무 관련 없다” 부인

 
“성인오락실은 중년 폐인들이나 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애가 빠질 줄은 몰랐다.” 지난 3월 도박 중독자 재활 시민단체인 ‘한국 단도박 모임’을 찾은 김정환씨(가명·서울거주·53)는 오락실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을 친다. 대학생 아들이 새 학기가 되어도 학교에 가지 않기에 추궁했더니, 놀랍게도 ‘성인오락실에서 등록금을 모두 날렸다’는 고백을 들은 것이다. 김씨는 “돈도 돈이지만 아이가 소중한 청춘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한국 단도박 모임의 이부평 사무국장(34)은  요즘 ‘빠찡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20대 후반 중독자도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학생 중독 상담 사례가 많아졌다.” 이 사무국장은 대학생들이 늘어나는 이유로 성인오락실 게임들이 점점 신세대 취향에 맞게 변신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런 분석이 일리 있는 것은 오락 게임 기계를 만드는 주역들이 바로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현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황라열씨(29)도 있다.

황씨는 지난 5월10일 한총련 탈퇴 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보수 언론으로부터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 지난 8년간 서울대 총학생회는 한총련에 가입한 적이 없어서 논리적으로 ‘탈퇴 성명’이란 뜬금없는 촌극이었지만(<시사저널> 865호 참조) 신문`방송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치켜세웠다.

황씨는 지난 3월 총학생회장에 당선 할 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고대 의대 입학· 막일꾼·학원 강사·시사 주간지 기자·무에타이협회 프로선수·음반 회사 사장·외국인노동자 인권단체 회장 등 50가지 직업을 거쳤다는 그의 전력은 각종 인터뷰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하지만 그 50가지 직업 가운데 성인오락기 회사 근무는 빠져 있다. 그는 사행성 오락 게임기 ‘바다 이야기’를 제조·유통하는 (주)지코프라임의 현직 팀장이다. ‘바다 이야기’는 2004년부터 성인오락기 시장을 평정하면서 많은 중독자를 낳아 사회문제가 된 게임이다.

황씨가 성인오락기 회사에서 일한다는 소문은 선거 기간에도 나돌았다. 지난 3월26일 서울대생 김종현씨는 “만약 황라열 후보의 회사가  성인 도박 게임 제조회사라면 그것은 정말 커다란 충격이다”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황후보는 자신이 성인오락실 업계와 관련이 없다고 부정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황씨는 현재까지 총학생회장 직과 지코프라임 팀장 직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코프라임 경영기획실 관계자는 “황씨는 음향팀장이며 총학생회장 당선 이후에는 우리 회사가 하는 문화장학 사업, 대학생 지원 사업 도 맡고 있다”라고 밝혔다. 회사 직무와 총학생회 직무 간에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5월26일 황라열씨는 서울대 학보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주)지코프라임에서 추진하고 있는 장학사업이 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지원과도 관계가 있다” “지난 49대 총학선거 당시 모금했다고 밝힌 ‘기부금 약 8천8백만원’ 중 약 5천만원이 (주)지코프라임의 기부금”  “(주)지코프라임의 돈으로 스누라이프(SNULife) 서버 교체, 쥬이쌍스 지원 등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코프라임은 성인오락실 업계의 ‘삼성그룹’에 비견된다. 성인오락기 산업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락기 유통업자 김아무개씨는 “성인오락기 시장 규모가 최소 5조원이 넘는다. 기계 한 대당 5백만~8백만 원에 달한다. 한 업소에 기계가 족히 100대는 있고 전국에 오락실이 1만개가 넘는다”라고 말했다. 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업체가 지코프라임-에이원비즈 그룹이다.  에이원비즈는 지코프라임의 관계사인데 사실상 동일한 회사다.  두 회사는 전화번호도 같이 쓰고 있으며, 에이원비즈의 서울 지점 주소지가 지코프라임 주소지다

성인오락실로 떼돈을 번 지코프라임은 직원들에게 최상의 대우를 해주었다. 직원 이두희씨(서울대 3학년)는 자신의 블로그에 “전 직원에게 3개월에 한 번씩 해외 여행을 지원해주고…, 오늘은 29만원짜리 스키복을 전 직원에게 뿌렸다”라고 자랑했다. 서울대 학내게시판에는 황라열씨가 성인오락실 업체로부터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황라열씨는 자신의 연봉이 얼마인지는 계약 관계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지코프라임(에이원비즈)에게 대박을 안겨준 효자 상품은 ‘바다 이야기’라는 오락 기계다.  종전의 칙칙한 나무 케이스로 만들어진 기계와 달리 2004년 출시된 ‘바다 이야기’는 26인치 LCD 모니터에 금형 케이스를 씌워 성인오락실 게임기 시장에 일대 혁신을 불러왔다. 지코프라임측은 지난해 바다이야기를 3만대 팔아 총매출이 1천억원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다른 오락기 회사 사장은 “매출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순이익만 지코프라임 2백억원, 에이원비즈 8백억원으로 추정된다”라고 주장했다. 주력 게임기인 바다 이야기의 가격은 현재 7백70만원을 호가한다.

5월23일 찾아간 서울 영등포역 앞에 있는 ‘바다 이야기’ 게임장에는 1백10대가 넘는 게임기 모두가 ‘바다 이야기’였다. 처음 1만원을 넣고 게임을 시작했으나 10분 만에 모두 잃었다. 옆에 앉은 남자는 “1시간에 10만원 잃는 것은 보통이다. 하지만 대박이 나면 100만원이 넘게 벌 수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법적으로 상품권 최대 한도는 2만원(5천원권 4장)이지만 실제로는 ‘연타’ ‘예지’ 기능을 이용해 2백만~3백만 원이 넘는 상품권을 타는 일이 가능하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은 “오락실 게임기 제조 회사들이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편법을 쓰고 있다. 영상물 등급심사를 받을 때는 ‘연타’ 기능을 없앴지만, 실제 시중에 유통되는 기계에는 거의 다 ‘연타’ ‘예지’ 기능이 들어 있다. 오락장 업주들은 기계를 조작한 것은 자기들이 아니라 제조회사라고 일관되게 증언한다. 이런 정황이니 지코프라임-에이원비즈 그룹에 대한 경찰 조사가 필요하다 ”라고 말했다.

황라열씨가 성인오락실 산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3년 ‘바다 이야기’의 음향 작업을 맡을 때부터다. 황씨는 이때 자신을 ‘빠찡코 뮤지션’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바다 이야기’ 배경 음악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게임 개발 일이 아니라 주변 일이었기 때문에 오락기 산업과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바다 이야기’ 음향 직접 제작

이후 황씨는 2005년에는 (주)엑스페이스 대표이사를 맡았다. 엑스페이스 역시 오락기 제조 회사로 ‘바다 이야기’와 거의 유사한 사행성 오락기인 ‘대물’을 만들었다. 대물은 사행성 때문에 아직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성인오락실 커뮤니티에서는 대물을 해봤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황씨는 “엑스페이스에서 대물을 만들었던 때는 2004년 9월이며 자신은 2005년에 사장이 되었다. 엑스페이스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성인오락실 게임기 제작 사업을 했지만 나와는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코프라임 관계자는 ”2005년 말 엑스페이스를 인수할 때, 그 회사가 제작하고 있던 대물 개발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었다”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이 성인오락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항변도 있다. 지코프라임 경영기획부의 권호용 차장은 “일본은 빠찡코가 건전한 성인 오락 문화로 활성화해 있다. 성인오락실을 자꾸 규제하고 죄악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생 김범래씨(25)는 “황씨는 총학생회 선거를 할 때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강조했는데 왜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총학생회장이 성인오락실 회사 일을 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황라열씨가 선거운동 기간에 선관위에 제출한 이력서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밝힌 이력 가운데는 과장되거나 잘못된 것이 많다. 황씨의 50가지가 넘는 이력 가운데 <시사저널>이 4개를 골라 검증해 본 결과 해병대 근무를 제외하고는 허위/과장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1998년 고려대 의대에 입학했다고 주장했고 이후 각종 언론 인터뷰 때마다 고대를 나왔다는 경력은 꼬박꼬박 등장했다. 미래가 보장된 의대 졸업을 포기했다는 점이 화제였다. 하지만 고려대 학적과 담당자는 "고려대 1백년 역사에 황라열이라는 이름은 없다. 단 하루라도 학교를 다녔다면 기록이 남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고려대 의대에 합격했지만 집안 문제로 등록을 못하고 관두었다"라고 말했다. 고려대 입학처장은 "황라열씨가 고려대 의대 특차와 일반 전형에 모두 응시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합격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황라열씨는 또 2001년 <한겨레21> 수습기자로 일했다고 썼지만 <한겨레21>측은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5월25일 황씨는 "<한겨레21>에는 힙합 관련 문화 기사 기고 의뢰를 받아 취재를 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으나 5월26일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다른 잡지를 한겨레21과 헷갈렸다"라고 답했다.
황씨는 1996년 포항 외국인노동자인권위원회 회장이라고 자신을 치장했지만, 포항 지역 노동자 활동가 가운데 이런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황씨는 "당시 교회에 다니면서 외국인 노동자 통역일을 도와줬다. 뜻맞는 친구들을 모아 40 여명 정도가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했다"라고 말했다.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현재 내가 지코프라임에서 하는 일은 성인오락실 사업과 무관한 온라인·모바일 게임 사업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다. 총학생회장 직과 겸임해서 계속 일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