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사회의 잔혹한 인생사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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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비열한 거리> 감독:유하 주연:조인성

 
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비열하다.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항상 우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거리’라는 열린 공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긴장감이 넘친다. 마틴 스콜세지의 <비열한 거리>에서 제목을 따온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는, 이러한 거리의 속성을 통해 인생의 비열함, 아니 비루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병든 엄마와 문제아인 남동생과 입시 준비에 한창인 여동생이 있다. 그의 이름은 병두(조인성). 직업은 조폭이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니, 사시미칼 휘두른 지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밑에 딸린 식구들도 있는 ‘중간 보스’ 급이 되기는 했지만, 크게 한 방 터뜨리지 않으면 굶어죽게 생겼다. 병두가 모시는 사람은 황회장(천호진). 그에게는 박검사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회장님의 고민을 해결해드리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 병두는, 결국 손에 피를 묻힌다.

만약 여기까지라면, <비열한 거리>는 전형적인 조폭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 감독은 민호(남궁 민)라는 캐릭터를 투입시킨다. 병두의 초등학교 동창인 민호는  조폭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영화감독 지망생. 뭔가 리얼하고 ‘쎈’ 이야기를 원하던 그는 병두를 만난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병두는 친구에게 괴로운 심정으로 자신이 저지른 잔혹한 살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는 민호에 의해 그대로 영화화된다. 병두는 곤경에 빠진다.

인간은 비열하게 살다 비열하게 가는 존재?

<비열한 거리>는 한 가정과 한 조직의 ‘식구’들을 부양해야 하는 어느 젊은 가장의 이야기다. 그의 소망은 단순하다. 철거 위험 없는 집 한 칸 있었으면 좋겠고, 동생들한테 버젓한 양복 한 벌씩 입혔으면 좋겠다. 그 작은 소망이 욕망으로 변할 때, 병두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며 피비린내를 풍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유하 감독은 그 핵심에 우리 사회의 ‘조폭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은밀히 즐기는 ‘조폭의 폭력적 매력’은, 병두에 의해 생산되고 황회장에 의해 소비되며 영화감독 민호에 의해 재생산되어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이 메커니즘은, 결국은 누군가가 제거되어야만 끝을 볼 수 있으며, 절대로 해피엔딩은 맞이할 수 없는 비극의 삼각관계다.

여기서 <비열한 거리>는 슬그머니 조폭 영화의 테두리에서 빠져나온다. 이 영화는 건달의 거친 삶을 철없이 동경하거나, 조폭의 해악성을 경고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오히려 <비열한 거리>는 삶에 대한 메타포처럼 여겨진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생존을 위해 조폭이 되었고, 먹고살기 위해 배신을 하고 죄를 저지르지만 결국은 자신이 했던 것처럼 똑같이 자신도 당하고 만다는 이야기. 비열한 것은 거리가 아니라 인생이며, 그 인생은 인과응보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인 황회장은 마지막 장면에서, ‘Old and Wise’라는 노래를 부른다. 나이 들고 현명해졌을 때…. 그러나 그때까지 살기 전에 생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유 하 감독의 전작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옥상이 한 남자의 내면에 잠복하고 있던 ‘폭력 바이러스’가 눈을 뜨는 공간이라면, <비열한 거리>에서 거리는 폭력에 감염된 한 남자가 서식하는 곳이다. 그 남자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엔 어떤 연민과 반성이 뒤엉켜 있다. 자신이 달려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고 무작정 질주하는 인간의 비극. 그런데 감독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모두 그런 게 아니냐고, 모두들 그렇게 비열하게 살다가 비열하게 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정말로 그런 게 삶이라면, 이건 꽤나 가슴을 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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