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 패스가 '창궐'하고 있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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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은 뱀’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도 불리는 사이코 패스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은 오로지 로버트 헤어 박사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인 그는 전세계 연구자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사이코 패스(정신병질, psycho pathy) 판정 도구를 개발했다.

헤어 박사와 후발 연구자들에 따르면 사이코 패스는 전체 인구의 1% 정도이다. 한국 인구를 4천5백만명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45만명의 사이코 패스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된 대도시에서는 사이코 패스의 비율이 2~3배 증가한다.

인구의 1%, 중범죄자 80~90%가 사이코 패스

교정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범죄자의 15~25%는 사이코 패스이며 중범죄자 수용 시설 인원의 80~90%는 사이코 패스이다. 특히 연쇄살인범들은 거의 다 사이코 패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 사이코 패스 죄수들은 절대로 현행 교정 프로그램에 교화되지 않으며 출소하면 대부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 따라서 지금 전세계의 범죄심리학자들은 사이코 패스 판정 결과를 가석방 협의 때 적용해야 하는 가를 놓고 논쟁중이다.

사이코 패스는 타고나지만 누구나 흉악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서 색맹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코 패스는 가정에서 훌륭한 교육과 통제를 받더라도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정서를 학습할 수는 있다. 학습받은 사이코 패스는 범죄자로 타락할 위험이 훨씬 적다.

 
사이코 패스가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최악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연쇄 살인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부터 이혼이 급증해 가정이 깨지면서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10대 후반에 접어들기 시작할 무렵이다. 일본은 그보다 늦은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영철이나 정남규는 1980년대에 깨진 가정에서 자라난 사이코 패스이다. 사이코 패스들은 양극화한 사회의 슬럼가에서 창궐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영세민이 밀집한 도시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의 교사들은 충동적·폭력적이고 자기만 아는 매우 이상한 아이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고 우려한다.

사이코 패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외향적이고 달변이어서 때로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곰곰이 언행을 돌이켜보면 깊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과 정서를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정서를 원하는지 예측해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의 깊은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사이코 패스들의 행위는 성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대체로 성관계가 문란하며 성적 파트너를 수시로 갈아치운다. 2백15명을 살해한 사이코 패스 영국 의사    해럴드 시프먼은 사람을 죽이는 순간 느끼는 성적 희열을 위해 수많은 이를 살해했다. 사이코 패스는 충동적이고 쉽게 지루해하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기 힘들어 부모나 배우자에게 끝도 없이 기대는 삶을 산다. 집안 물건을 훔쳐내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집안의 망나니나 아내의 등골을 빼고 폭력을 일삼으면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대는 백수 남편들 중에 사이코 패스가 많다. 사이코 패스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악랄하고 교활하다. 그들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헤어 박사가 만든 사이코 패스 진단 도구인 PCL-R의 문항 내용을 보면 그들의 특징을 좀더 잘 알 수 있다. 피상적 매력, 과도한 자존감, 자극 추구, 병적인 거짓말, 기생적인 생활 방식,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목표 부재, 무책임, 잦은 혼인 등 모두 20개 항목에 0~2의 점수를 매겨 판단한다. 물론 판단은 전문가가 본인과의 상담은 물론 많은 자료 조사를 통해 내린다.

 
사이코 패스의 화법은 매우 흥미롭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수십 가지의 거짓말을 해대며 거짓말이 들통 나도 당황하는 법 없이 순식간에 말을 바꾼다. 10여 명의 아이를 살해한 살인마도 “전 감정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럽죠”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특히 대형 금융 사고를 일으키거나 학술 논문을 조작한 것과 같은 화이트 컬러형 사이코 패스들의 화법은 현란하기 짝이 없다. 분명히 거짓말하고 사기를 쳤다는 것이 드러나도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듯 객관화해서 말한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인류에 재앙을 가져온 많은 독재자가 화이트 컬러 사이코 패스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심리학자들이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을 조사해 데이터를 축적중이다. 다음은 우리나라 연구자들 가운데 가장 정력적으로 사이코 패스를 연구중인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이코 패스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에선 1980년대부터 급속하게 가족이 와해되기 시작했는데 이제 그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청소년  범죄자 수는 늘지 않았지만 재범률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정이 청소년들의 보호막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SOS 같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도와주곤 하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애들 중 상당수는 사이코 패스라고 보면 맞다. 생물학적 욕구만 남은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영철, 정남규도 사이코 패스인가?

그렇다. 그래도 유영철은 결혼도 했으므로 사람들과 어느 정도 소통은 가능한 사이코 패스이다. 하지만 정남규는 사람들과 어떤 소통도 불가능한 끔찍한 경우이다. 배고프면 훔치고, 성욕이 일어나면 강간을 하는 기술만 발달했으며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한다.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해서 가만히 들어봤더니 결국 성폭행하기 쉬워서 좋다는 거였다.

우리나라에서 사이코 패스에 대한 연구는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나?
헤어 박사와 공동으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정  시스템이 열악해 진전은 더딘 편이다.

우리나라 사이코 패스들이 서양의 사이코 패스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고립되고 내성적인 사람이 많다. 성적으로도 서양의 사이코 패스들보다는 훨씬 문란하지 않은 편이다. 성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문화의 영향이 클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이코 패스의 진단 기준은 서양 것과는 좀 달라야 할 것 이다.

내 배우자나 연인, 혹은 자식이 사이코 패스인 것 같으면 어떻게 하나?
사이코 패스는 고칠 수 없다. 어린아이의 경우만 교정할 수 있다. 내 아이가 의심되면 즉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하는 게 좋다. 자폐보다는 치료하기 쉽다.
사이코 패스는 격리해야 된다고 보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보호할 수도 있는 거다. 5%가 전체 범죄의 50%를 저지르고 있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데 국가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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