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나는 살아 있다”
  • 아르헨티나 · 이하빈 통신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7.3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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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악화설 일축하며 메르코수르 정상회담에 참석, 환대받아

 
지난 7월19일 저녁 아르헨티나 북부 도시 코르도바 시민들은 식당과 술집에 삼삼오오 모여 텔레비전 중계를 보았다. 행인들은 가게 유리창에 비친 텔레비전 화면을 보며 걸음을 멈춰 섰다. 마치 지역 축구 리그의 라이벌 팀인 타제레스와 벨그라노의 결승전 풍경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비친 것은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제30차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정상회담 참석차 코르도바를 방문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가 조심스레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는 광경이었다.

7월19부터 20일까지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는 메르코수르 5개국 정상회담이 열렸다. 코르도바 시민들은 정상회담 내용보다 카스트로의 출현에 더 관심을 보였다. 고령의 카스트가 건강이 악화해 정상회담에 불참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19일 개회 당일까지도 카스트로의 참석 여부가 공식 확인되지 않아 시민들의 궁금증은 커졌다.

지난 7월 초 카스트로가 30차 정상회담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코르도바 시민들은 환영했다. 피델 카스트로의 친구이자 혁명 동지였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이 지역(알타 가르시아스)이었다는 점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아르헨티나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카스트로 도착 장면을 중계하면서 카스트로 관련 뉴스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2005년 남부 관광도시 마르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 정상회담 때도 피델 카스트로가 방문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관련한 이슈에 가렸다. 하지만 올해는 피델 카스트로가 오는 8월13일로 80세 생일을 맞는다는 사실과 건강 악화 보도때문에 이번 방문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20일 회의장에 나타난 카스트로의 모습은 정작 건강 악화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장 차림의 카스트로는 앞으로 10년은 거뜬할 듯 보였다. 카스트로는 20일 중도 좌익 단체가 주최한 ‘인민 정상대회’에 참가해 3만~4만 청중 앞에서 무려 세 시간이나 연설하며 건강을 과시했다. 결국 언론과 일부 호사가들은 또다시 헛물켠 셈이 되었다. 2002년 1월 카스트로가 심장마비로 중태라고 보도되었던 다음날 아무 일도 없듯이 정무를 보았던 경우나 2004년 10월 산타클라라 대중 집회를 마치고 퇴장 도중 넘어졌지만, 곧 회복한 경우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 아무리 카스트로라도 역시 세월 앞에는 어쩔 수 없었다. 살이 찐 우고 차베스 옆에 선 그는 초라한 노인이었다. 미국을 겨냥한 반제국주의를 기조로 지역 단결을 외치는 그의 긴 연설에는 피로감이 엿보였다.

‘동생에게 권력 승계’ 시사

한 베네수엘라 기자가 카스트로에게 건강 악화설을 물었다. 카스트로는 “나는 거의 매일 죽는다"라며 소문을 일축했다. 그리고 그는 “전세계가 지금 나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백 번씩이나 나를 죽이려 했다. 쿠바 혁명을 붕괴시키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 무슨 변이 생겨도 혁명에 지장이 없도록 필요한 조처를 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대목은 친동생이자 현 국방장관 라울 카스트로를 염두해 둔 발언으로 보인다.

라울 카스트로는 1950년대 형과 함께 친미 성향의 바티스타 독재 정권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였으며 형과 마찬가지로 수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라울 카스트로는 지금 형이 의장으로 있는 국가평의회 제1부의장이다. 라울은 또 정무장관 자문위원회 부의장이자 쿠바 공산당의 부서기장이기도 하다. 그동안 형의 그늘에 가려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쿠바의 제2 실권자다. 1990년대 소련이 쿠바 지원을 중단하면서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라울 카스트로가 개방 정책을 펼쳐 위기 탈출에 공헌했다는 분석도 있다. BBC 지역 전문가는 라울 카스트로가 형보다 개방적이기는 하나 카리스마적 이미지는 없다고 평했다.

일반적으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카스트로를 강대국에 맞서는 다윗처럼 여겨 존중하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카스트로 역시 한 명의 독재자일 뿐이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동생에게 정권을 물려주는 방식을 비판한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비록 소수이지만 “독재자는 환영하지 않는다. 돌아가라”며 카스트로 방문 반대 시위를 연 시민들도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일간지 라 나시온(La Nacion)은 “철권을 휘두르는 독재자들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 세상은 없다는 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며 친족 정권 이양을 비난했다.

꼭 국제 여론을 살피지 않더라도, 피델 카스트로는 동생이 아닌 후계자도 염두에 둬야 할 듯하다. 라울 카스트로 역시 고령으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어서다. 동생 라울은  1931년생으로 올해 75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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