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본능 뒤엉킨 ‘욕망의 해방구’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8.1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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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대해수욕장은 끈적끈적한 짝짓기 장이었고, 10대들의 무한 일탈 장소였으며, 철저히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해수욕장은 벌거벗는 곳이다. 옷뿐만이 아니라 일상을 속박하는 체면이나 윤리 의식까지 벗어던지기 쉬운 곳이다. 그곳에서는 가공되지 않은 우리의 욕망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류의 역사가 끊임없이 욕망을 분출시켜나가는 과정이라면 지금의 해수욕장 풍경이야말로 우리의 멀지 않은 미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되기만 하면 해수욕장부터 달려가봐야겠다고 진작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곳에서 특히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갈 젊은이들을 관찰해보고 싶었다. 본래는 7월 말쯤 취재할 생각이었으나 장마가 길어져 한 주 늦어졌다.

8월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간의 낮과 밤을 취재했다. 잠은 낮에 잠깐씩 찜질방에서 잤다. 장소는 최근 몇 년 사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휴가지로 굳어진 강원도 강릉시 경포대해수욕장. 학원 방학 기간이어서 5일과 6일에는 피서 인파가 절정을 이루었다. 기사는 하루 낮밤에 이루어진 일인 양 압축했다

 
경포대해수욕장의 아침은 고요하다. 담배 꽁초만 점점이 흩어져 있을 뿐 백사장도 깨끗한 편이다. 다만 해수욕장의 공기 속에서는 말할 수 없이 불온한 기운이 감돈다. 술, 라면 국물, 삼겹살 기름처럼 쉽게 맡을 수 있는 냄새 말고도 여러 가지 냄새가 뒤섞여 바람이 불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이 기분 나쁜 냄새의 정체는 대체 뭘까.

경포대해수욕장에는 인명 안전 감시를 위한 망루가 열 개 있는데 5번과 6번 망루 사이를 중앙 통로라고 부른다. 해변을 마주 보고 이 중앙 통로 오른쪽으로 관공서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다. 강릉시청 민원봉사실, 동해경찰서 수상레저 통제본부, 강릉경찰서 파견 여름경찰서, 사단법인 인명구조단 등이 들어서 있다. 해수욕객의 안전은 강릉시 용역을 받은 인명구조단이, 해상·육상의 범죄 예방과 질서 유지는 해경과 경찰이 책임진다.

관공서 중에서도 야간 치안을 도맡고 있는 여름경찰서 직원들의 태도가 특히 냉소적이었다. 오전에 만난 여름경찰서 당직자에게 기자가 아침에 해변이 한적한 걸 보니 아직 강원도 수해 여파를 받는 것 같다고 말하니까 이렇게 답했다.     “이곳에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는 밤이 돼봐야 압니다. 새벽 2시가 지나면 이곳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는 동물의 왕국이 됩니다.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해변이 동물의 왕국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낮 12시쯤 되자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에서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자동차가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해변에도 파라솔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해 어느덧 빼곡해졌다. 상가 번영회에서 파라솔과, 고무 튜브를 각각 5천원씩 받고 빌려주는데 모두 기업에서 판촉물로 협찬받은 물건이니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끝도 없는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경포대해수욕장은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협소했다. 해병대 출신 대학생 등 인명구조원 50명을 배치해 해수욕객이 가슴 높이 이상 되는 깊은 곳으로는 못 들어가도록 철통 봉쇄하기 때문이다. 수영을 잘하건 못하건 예외는 없었다. 무조건 통제 표시 근처에 접근하기만 하면 호루라기를 불거나 물을 뿌리며 제지했다. 예전에는 수영에 자신 있는 사람은 앞 쪽의 바위섬까지(2백80m 정도 떨어져 있다) 헤엄쳐갈 수 있도록 허용했으나 지금은 일절 금지다. 바위섬까지 가려면 비싼 값을 내고 제트스키나 모터보트를 빌려 타야 한다.

 
해양 레저 스포츠의 묘미는 스릴과 모험이다. 일본이나 호주와 같은 해양국에서는 악어가 출몰하는 해안조차도 함부로 통제하기를 꺼린다. 해양 레저 스포츠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경포대에서 폭풍주의보가 내렸는데 외국인들이 떼 지어 윈드서핑을 하러 바다로 나가는 바람에 해경이 혼비백산해 출동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자신들을 제지하려는 해경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바다로 나아가 윈드서핑을 즐기는 게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해수욕객이 숨지면 해수욕장을 개장한 지자체에서 상당 부분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강릉시청은 인명 사고가 나면 용역비를 깎겠다고 인명구조단과 계약을 맺었다. 인명구조단으로서는 드넓은 경포해수욕장을 목욕통으로 만들어서라도 위험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멀리 나가 수영을 즐기는 해수욕객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망루는 자장면이나 피자를 배달하는 주소지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한다.

해양 스포츠 즐길 수 없는 ‘거대한 목욕탕’

그러고 보니 이곳이 바다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강에서도 제트스키나 바나나 보트 정도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이곳에는 해양 스포츠를 즐길 만한 설비나 제도가 전무했다. 해수욕객들은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쳐가며 빌린 튜브나 타고 통통거리 면서 놀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아니면 해변으로 나가 몸매 자랑이나 하든가. 말썽만 없으면 된다는 행정 편의주의가 아름답고 드넓은 바다를 한강변 수영장이나 다를 것 없이 만들었다. 모래성을 쌓거나 모래찜질을 하는 사람도 거의 볼 수 없다. 냄새 때문이리라.

 

여성들의 옷차림은 대담했다. 특히 가족이나 이성 친구와 같이 오지 않은 미혼 여성들은 중앙 통로 쪽으로 몰려들었는데 대부분 비키니 차림이었다. S라인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토플리스 차림으로 엎드려 선탠을 즐기는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일부러 요가를 하며 섹시한 자세를 취하는 그룹들도 있었다. 그들은 남성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겼다. 지난해에는 파스로 유두만 가리고 활보하는 그룹도 있었다고 한다.

강릉시가 얼마 전 이곳에 나체 해변을 만들 구상까지 했다는 게 이해가 갔다. 여성들이 현란한 비키니 차림을 뽐내는 가운데 한 떼의 남성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가슴에 ‘남자’, 등에 ‘근성’이라고 새긴 티셔츠를 입고 무슨 시위라도 하듯 거칠게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가 지자 해변의 인파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놓자 밤 문화만 발전하는 것일까. 해변에 등이 켜지자 공들여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끝도 없이 해변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은 파티에 참석한 듯 화려한 의상이었다. 짝이 없는 남녀들은 중앙 통로로, 짝이 있는 남녀들은 그 갓쪽으로 자연스럽게 갈렸다. 해경 수상레저 통제본부의 이장형 상경은 “낮에는 몸매와 얼굴을 보고, 밤에는 의상을 보고 나이와 사는 정도를 서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기자의 눈에는 모두 다 비슷한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지만 같은 젊은 세대인 그에게는 서울에 사는지 아닌지, 서울 살면 강남 출신인지 아닌지 한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즉석 짝짓기→밤새 음주·가무→모텔행

특히 중앙 통로의 젊은 여성들의 태도가 눈길을 끌었다. 그들은 줄지어 앉아서 파트너가 와주기만을 바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중앙 통로의 밝은 벤치에는 겉보기에 가장 화려한 여성들이 진을 치고 앉았다. 그러자 그 주위를 남성 그룹들이 방사선형으로 둘러싸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남성 그룹 중에 리더인 듯한 친구가 접근해 “일행 있어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신호였다. 여성 멤버들 사이에 분주하게 눈짓이 오가고 여성 리더의 입에서 “일행 없어요”라는 말이 나오면 본격적인 ‘거래’가 이루어진다.

교섭이 시작되면 주로 여성들이 질문을 했다.
“몇 살이에요?” “어디서 왔어요?” “어디서 놀 거예요?” “뭐 먹을 건데요?”

 
여성들은 주로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 해줄 수 있는지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노골적으로 “너네 돈 얼마나 갖고 왔니?”라고 물어보는 그룹도 볼 수 있었다. 얘기가 잘 진행되면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야식 메뉴판을 주고 메뉴를 선택하게 한 다음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 서둘러 술과 돗자리를 사러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대개는 해변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남자들이 묵는 모텔이나 민박집 방으로 가서 다시 술을 마시는 순이었다. 그 모든 비용을 남성들이 전담했는데 요즘 들어 된장녀 논란이 불거진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여성 그룹과 얘기를 막 끝내고 편의점으로 가고 있는 한 남성 그룹과 얘기를 나눠봤다.

기자: 얘기가 잘 된 것 같다.
남성: 어제는 허탕 치고 우리끼리 놀았는데 오늘 맘에 드는 애들을 만났다.
기자: 노는 비용은 남자들이 다 대는 건가?
남성: 우리가 놀자고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여기 오는 애들은 다 그런 걸 바라고 오는 거다. 여기는 100% 남자가 돈 내는 게 룰이다. 여자로 못 태어난 게 한이다.
기자: 돈이 많이 들겠다.
남성: 1주일 예정으로 왔는데 50만원 갖고 왔다. 25만원은 회비이고 25만원은 개인 용돈이다. 여자 애들하고 한 번 놀면 15만원 정도 든다.

여성 한 그룹이 남성들을 만나 해변으로 사라지면 다시 다른 그룹이 그 자리를 차고 앉아 남성들을 기다리는, 이런 식의 짝짓기가 중앙 통로에서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여성 그룹들은 여러 남성 그룹의 휴대폰 번호를 받아놓았다가 파트너가 맘에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갈아 치우기도 한다. 해변에서 술 마시는 그룹 중에서 시간이 지나도 여성은 여성끼리 남성은 남성끼리 앉아 있으면 십중팔구 깨지게 마련이다.

 
한쪽에서는 짝짓기에 바쁘고 한쪽에서는 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온 해변은 화약 냄새와 연기로 뒤덮였다. 망루에 올라가서 보니 1km가 넘는 해변에서 치열한 전투라도 벌어진 듯했다. 막대 폭죽을 열 개 이상 다발로 묶어 터뜨리자 귀가 멍멍하고 주변이 온통 환해질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개중에는 막대 폭죽 1백 개를 다발로 묶어 터뜨리는 그룹도 있다고 한다. 폭죽은 남성 그룹들이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통해 많게는 50만원어치나 폭죽을 사 오는 그룹도 있다고 한다.

강릉시와 상인들, 돈 위해 10대의 일탈 묵인

 
밤 12시가 지나자 해변은 거대한 술집으로 변했다. 낮에는 빈자리가 있었으나 밤에는 오히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마시고 또 마셨다. 경찰서 코앞에서 폭죽 터뜨리기와 취사, 흡연, 10대의 음주 등 온갖 금지된 행위가 벌어졌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여름경찰서 직원 세 명과 열두 명의 전경들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새벽 2시쯤 되자 토하고 인사불성이 되는 남녀가 늘어나는 등 해변은 쓰레기장이 되어갔다. 그러자 해변에 거대한 트랙터와 비치 클리너 두 대가 나타났다. 술에 취한 수많은 인파와 쓰레기 더미 사이에 불을 환히 밝히고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나이 든 아주머니들과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면서 갈퀴로 쓰레기 더미를 긁어 모아 트랙터에 실었다. 비치 클리너는 마치 벼를 수확하듯 바닥의 쓰레기들을 건져 올려 트레일러에 옮겨 담았다. 기업들이 판촉물로 나누어줬거나 편의점에서 저녁 때 산 돗자리를 챙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소매가가 4천8백원 하는, 채 마시지도 않은 맥주 페트병들과 소주병, 그리고 노점상들이 1만2천원씩 받고 파는 멀쩡한 통닭들이 쓰레기 더미에 함께 파묻혀버렸다.

다음날 분류해보니 차  열쇠만 12개가 나왔다. 사람들은 청소차를 피해 다니며 끊임없이 술을 마셨고, 동이 텄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여성들까지도 해변의 축축하고 으슥한 곳에서 몰래 쉬를 해 해변은 지린내로 가득했다.

 
이 와중에서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 한 사람은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미래가 없다”라고 기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름경찰서의 야간 당직자는 “애들 잘못이 4라면 어른 잘못이 6이다”라고 말했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강릉시나 이곳의 상인들은 대부분이 10대인 이들이 떨어뜨리고 가는 돈이 아쉬워 이들의 일탈 행위를 애써 외면하고 뒤치다꺼리를 하는 듯했고, 경찰들은 그런 현실 앞에서 절망하고 있었다. 젊은이들 또한 철저하게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들은 키도 커지고 몸매도 예뻐졌으며 옷도 잘 입지만, 결국 아름다운 해변에서도 술밖에 마실 줄 모르는 그들의 부모를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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