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의 실패한 인사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08.1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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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조선시대 당파 싸움을 촉발한 것은 이조전랑 자리를 사이에 둔 기호학파와 영남학파의 갈등이었다. 이 갈등을 시작으로 심의겸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 선비들은 서인을,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 선비들은 동인을 형성하고 각축했다. 요즘 열린우리당 안에서 이조전랑처럼 계파 갈등의 중심이 되는 자리가 있다. 바로 수석부대변인 이다.

문관 인사를 관할하는 이조전랑 자리가 재상으로 가는 요직이었다면 언론 노출이 잦은 수석부대변인 자리는 선량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당을 이끄는 당의장에게도 수석부대변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기자들과 접촉이 가장 많은 위치라서 기사 방향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면담 이후 대언론 창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한 김근태 의장은 수석부대변인 인사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

김 의장은 정동영 전 의장 사람으로 알려진 양기대(44) 수석부대변인을 의원면직하고 그 자리에 측근인 박우섭(51) 의장비서실 부실장을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의장의 이런 구상은 즉각 당내 반발을 일으켰다. “왜 청와대에서 뺨 맞고 ‘정동영계’에 분풀이를 하느냐”라는 것이었다. 특히 인사가 급작스럽게 단행되면서 정동영계 사람이라고 해서 너무 무도하게 내보낸다는 비난이 나왔다. 박부실장이 구청장 출신으로 연배도 높아서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까지 나오면서 김의장은 일단 임명을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장관 인사문제로 청와대와 맞섰던 김의장이 이번에는 인사 문제로 당내 반발이라는 ‘복병’을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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