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그 참을 수 없는 질퍽한 감정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9.0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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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감독:김해곤 주연:김승우·장진영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줄여서 <연애참>이라는 제목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이 영화는 꽤 징그럽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고는 하지만, 아니 ‘참을 수 없는’ 것은 맞을지 몰라도 ‘가벼움’은 아니다. 그렇다고 묵직하지도 않다. 마치 붓 가는 대로 그린 추상화 같은 이 영화는 꽤 매력적인 구석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쿨’하지는 않다.

영화는 가볍게 시작한다. 어머니(선우용녀)와 함께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는 영운(김승우) 앞에 어느 날 연아(장진영)라는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이른바 ‘나가요 걸’. 룸살롱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그녀는 새벽에 음식점을 찾았고, 영운에게 말한다.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 영운은 그녀가 따라주는 소주 한 잔을 ‘원샷’으로 들이켠다. 그들은 연인이 된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룸살롱에서 일하고 영운 또한 어머니와 함께 음식점을 하고 있다. 결혼 적령기라면 적령기인 두 사람. 하지만 영운에게는 어머니가 짝 지워준 수경(최보은)이라는 참하고 어린 약혼녀가 있었고, 영운은 결정해야 한다. 연아를 잊고 수경과 결혼해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갈 것인가, 4년 동안 온갖 정이 다 든 연아를 인생의 동반자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런데 영운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아니, 그는 두 가지를 모두 선택한다. 수경과 결혼한 영운은, 연아와도 꾸준히 만난다. 그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자,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연애참>은 사랑이나 결혼 같은 숭고한(?) 가치와는 조금 동떨어진, 연애나 섹스 같은 질퍽한 감정에 대한 영화다. 이 영화는 영운이 수경과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연아와 영운의 연애를 담은 전반부는 그 어떤 애정 영화보다 활기차다. 그 힘은 두 캐릭터가 지닌 원초적 욕망과 느낌에서 나온다. 그들의 행동과 해프닝들은, 아무런 여과 장치도 거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그 무엇이다.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다가도 금방 화해하고 잠자리 한 번에 다시 애정을 확인하는 그들은,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커플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감정의 결을 더욱 거칠게 만드는 주인공들은, 연아와 영운의 친구들이다. 연아의 룸살롱 동료들이 보여주는 앙상블이 과거에도 이미 영화에서 접했던 조금은 익숙한 이미지라면, 영운과 친구들이 만들어낸 ‘수컷의 공동체’는 어쩌면 이 영화로 데뷔하는 김해곤 감독(배우이며 <파이란>의 시나리오 작가)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일지도 모른다. 준용(탁재훈)이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를 아지트로 서식하는 그들은, 절대로 철들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아버지 공장의 금고에 있는 돈으로 룸살롱에 가고, 노상 방뇨하다가 걸려 경찰과 승강이 붙는 그들은 남자가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들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연애참>은 연아와 영운의 ‘투 톱’ 영화가 아니라, 영운이라는 ‘찌질’하고 우유부단한 남자의 ‘원 톱’ 영화다. 감독은 영운과 연아의 연애담에서 결국은 남자라는 성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볼 수는 없겠지만, 남성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진솔하고 때에 따라서는 반성적(?)이기까지 한 시선을 던진다는 점에서, <연애참>에는 신선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영운이 수경과 결혼하고, 그 ‘쿨’하던 연아가 갑자기 신파극의 주인공으로 전락하면서 <연애참>은 조금씩 우울해진다. 영화는 갑자기 순애보가 되고, 연아는 실연의 슬픔을 안고 떠난다. 시간이 흐른 후 영운은 다시 연아를 찾아간다. 어느 허름한 시골 단란주점의 작부가 되어 있는 연아. 그곳에 찾아간 영운은, 그녀와 말없이 조용히 시선을 나눈다. 그들은 그 지긋지긋한 연애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그들의 그 가벼웠던 연애는 꽤나 습기를 머금고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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