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가 성형수술을 한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9.08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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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늘리려 진료 영역 교체·확장하는 의원 급증…비만 치료 가장 많이 선택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뉴본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최중호 원장(37). 산부인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만 해도 그는 생명 탄생에 기여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전문의 자격을 딴 지 1년 만에 깨졌다. 분만 전문의사를 하던 그는 1년 만에 분만을 포기하고 ‘전공’을 질 성형수술로 바꾸었다. 최중호 원장은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는 데다 보험 수가가 턱없이 낮아 병원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내가 분만 의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병원에서 태어나는 신생아가 한 달에 80명가량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신생아 수가 30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분만 수가는 애완견 출산 비용밖에 안 되었다”라고 말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보험 수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영역으로 진료 과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중호 원장과 함께 수련받은 산부인과 전문의 여섯 명 중에 전통적인 개념의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이는 지금 아무도 없다. 두 사람은 중·대형급 병원에서 월급 의사로 일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진료 영역을 확장하거나 바꾸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이런 현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산부인과에서 일반의원으로 간판을 바꾼 곳이 2003년 1백31곳에서 2006년 상반기 3백4곳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산부인과 의사이기를 포기한 이들은 주로 피부․비만․성형 같은 비급여 진료 과목을 선택한다. 최중호 원장은 “지금 하고 있는 질 성형 시술도 부수적이기는 하지만 산부인과 영역이다. 삶의 질을 개선하는 시술이니 의미도 있다. 그러나 산부인과를 전공한 의사로 하여금 전통적인 산부인과 진료 영역이 아닌 부차적인 영역의 진료로 먹고 살게끔 강요하는 이 나라 의료 체계에는 불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의원 10곳 중 3곳, 진료 과목 확대

산부인과 의사들만 돈 때문에 본래의 전공 대신 다른 분야로 진료 영역을 바꾸거나 확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과·외과·가정의학과 등 건강보험 수가에 기대어야 하는 의원은 너나할 것 없이 진료 영역을 바꾸거나 확장하는 추세다.

 
특히 의약분업 이후 개원이 급증하면서 그런 추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약분업 실시 이후 2001년에만 의원이 2천1백49개, 2002년에는 2천4백64개가 늘었다. 그 이후에도 해마다 8백여 개의 의원이 새로 문을 열었다. 4년 만에 동네 의원이 6천 개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의원이 많아지면 한 의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의사들은 건강보험 수가가 적어 ‘박리다매’하는 심정으로 ‘3분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제는 한 의원에서 진료하는 환자 수마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박리다매’조차 어렵게 되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비급여 진료 과목으로 전공을 바꾸는 의원들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급여 진료는 대부분 고가이고, ‘부르는 게 값’인 진료 항목도 있어 의원 매출을 확실하게 높여준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의원급 의료 기관의 경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전공을 불문한 진료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의원 10곳 중 3곳(31%)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른 진료 과목으로 영역을 확대했다(표 참조). 진료 영역을 넓힌 의원 절반 이상(59.9%)은 ‘비만 치료’를 선택했다. 대체의학(12.0%)으로 바꾼 곳도 있었고, 성형수술(7.7%)이나 IMS 시술(근육 내 자극 치료술․6.3%)을 선택한 곳도 적지 않았다(표 참조).

전공과 관계 없이 진료 과목을 넘나드는 의사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다. 우선 숙련되지 않은 의사에게 시술받기 때문에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현행법에서 전공이 다른 의사가 성형수술을 시술하거나 피부과 진료를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이들이 진료 과목으로 성형외과·피부과를 표시하는 것 역시 의료법상 전혀 문제가 없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는 모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료 영역을 확장하거나 전공을 바꾼 의사의 경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숙련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한 산부인과 원장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피부과 진료를 추가했지만 처음에는 의료기기 사용법이나 관련 시술법을 몰라 고생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관련 학회나 의료기기 업체에서 관련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비만․피부․성형으로 영역을 확장한 의사들이 관련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은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이다. 일부 학회나 개원의협의회에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비만 치료·성형수술 등 최신 유행하는 진료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을 따로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대에서처럼 꼼꼼하게 가르치기는 애당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부르기 쉽다. 특히 최근 성형수술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비전문의의 시술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9월6일 이례적으로 “비전문의 성형외과 개원이 늘어나면서 의료 분쟁이 빈발하고 있다”라며 주의를 당부하는 보도 자료를 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분야 전문의에게 시술을 받은 뒤 부작용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강남구에는 전문의가 개원한 성형외과가 모두 2백50여 곳, 일반의가 병행 진료를 하는 곳은 1백50여 곳이 있다. 강남구 성형외과 세 개 중 한 개는 산부인과·내과·외과 전문의들이 운영하는 성형외과라는 이야기다.

‘아픈 환자’ 갈 만한 의원은 턱없이 부족해

또 피부 비만 성형 클리닉이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상술로 악용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예컨대 피부 클리닉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이용되는 메조테라피를 보자. 메조테라피는 일종의 비만 치료 주사요법이다. 그런데 지난 5월 열린 대한성형외과학회에서 메조테라피가 비만 치료에 효과가 없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고대안암병원 박승하 교수팀은 “실험 결과 메조테라피는 비만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병원들은 메조테라피를 비만 치료법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 피부․비만 클리닉 원장은 “외국에서 들여온 의료기기의 경우, 국내 환자에게서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외국 사례를 들어 국내 환자에게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하는 의원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의원들이 돈 되는 일부 진료 분야, 특히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로만 몰리다 보니 정작 아픈 사람이 다급할 때 찾는 의원은 턱없이 부족해지는 데 있다. 거리마다 의원 간판은 즐비하지만 정작 산부인과나 내과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갈 수 있는 의원은 드물다.

 
얼마 전 기자는 서울 강남에서 ‘피부과․부인과’를 간판으로 내건 한 의원에 전화를 걸었다. 부인과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부인과 검사는 하지 않으니 다른 의원에 예약하라’고 말했다. 분명히 부인과 간판을 보고 전화를 건 터이므로 기자는 다시 물었다. “진료 과목이 부인과라고 적혀 있던데, 그럼 그 의원에서는 부인을 대상으로 무슨 진료를 하나요?” 간호사는 “우리 병원에서는 성형수술과 피부과 치료를 주로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특히 서울 강남구에서는 피부과·성형외과·안과·한의원은 한 건물에도 몇 개씩 자리 잡고 있지만 정작 다급한 이유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내과·정형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강남구에 위치한 개인 병ㆍ의원은 1천8백여 곳. 이 가운데 강남구 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것은 피부과와 안과, 성형외과이다. 건강보험 수가에 의존하는 내과나 소아과, 산부인과 전통 영역 진료로는 강남에서 병원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수가만으로는 강남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서울대 의대 의료정보센터 홍승권 교수는 “의사들이 돈벌이가 잘 되는 영역으로 몰리는 것을 일방적으로 탓할 수만은 없다. 의사들이 다른 쪽에 눈을 돌리지 않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료체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내과·소아과·가정의학과처럼 환자가 아플 때 가장 먼저 찾는 1차 진료 기관이 줄어들지 않도록 하려면 건강보험 수가 외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의 의료보험 제도에서는 가벼운 질환을 많이 진료하거나 보험이 안 되는 비급여 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유리하다. 생명을 다루고 환자를 꼼꼼히 진료하는 의사는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이런 구도가 점점 굳어진다면 감기에 걸려도 대학병원을 찾아가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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