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 빠진 저가 화장품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9.2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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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승장구하던 미샤 ‘휘청’…대기업도 가세해 생존 경쟁 가속화
 
저가 화장품 시장에 ‘적조’ 경보가 내려졌다. 블루 오션으로 각광받던 저가 화장품 시장이 이제 살아남기 경쟁이 치열한 레드 오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저가 화장품 업체는 지난 2000년 초부터 싸고 다양한 품목의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화장품 업계 판도까지 흔들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장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부가가치는 줄고 경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저가 화장품 시장은 시장 진입 장벽이 낮다. 마케팅과 유통에 대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시장에 들어와 성공 신화를 만들 수 있다. 웬만해서 가격으로 경쟁하지는 않는다. 브랜드마다 워낙 싸게 제품을 내놓고 있어 가격 차별화가 어려운 탓이다. 승부는 브랜드 이미지에서 난다. 업체들은 권상우·장동건·보아·송혜교·성유리·고아라처럼 내로라하는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스타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장 힘겨워하는 곳은 ‘미샤’ 브랜드를 앞세워 저가 화장품 시장을 개척한 에이블씨엔씨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2분기 매출액이 2백5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1.5% 줄었다. 에이블씨엔씨는 올해 매출 목표를 1천1백억원(지난해 1천2백10억원)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보다 9.2% 줄어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영업 실적이다. 지난 2분기 이 회사 영업 손실은 31억원이고 순손실은 56억원이나 된다. 1분기를 합치면 상반기 영업 손실은 35억원이 넘는다. 
이와중에 일본 업체 마리퀸트와 벌인 상표권 분쟁에서도 패소했다. 일본 ‘가부시키 가이샤 마리퀸트 코스메틱스 쟈판’이 미샤 상표로 쓰이는 꽃무늬가 자사 상표와 비슷하다며 에이블씨엔씨를 상대로 낸 상품권 침해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앞으로 미샤의 꽃무늬 상표를 상품 포장이나 광고·선전문에 사용하지 못하며, 꽃무늬 상표가 붙은 물품 또한 판매할 수 없게 되었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2000년 브랜드 ‘미샤’를 출시하면서 저가 화장품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미샤는 저가 화장품의 대명사로 통했다. 인터넷 판매에 의존하던 벤처 업체 에이블씨엔씨는 2004년 매출 1천억원을 넘기면서 화장품 업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가파르게 성장한 업체가 한번 기세가 꺾이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 에이블씨엔씨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으나 넘어야 할 난관이 만만치 않다.

에이블씨엔씨가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경쟁 전략에 실패한 탓이다. 초기 성공 신화에 안주하다가 제품이나 마케팅 부문에서 차별화에 실패했다. ‘저가 화장품’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앞 다투어 쏟아지는 경쟁 제품의 신선함을 제압하지 못했다. 뒤늦게 영화배우 장동건과 가수 보아를 모델로 내세우며 반전을 노렸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양순호 에이블씨엔씨 사장은 올 초 취임하자마자 직영 매장을 정리해 3백15개였던 매장을 2백98개로 줄였다. 조직도 개편했다. 임직원 수를 30% 정리해 2백90명까지 줄였다. 상표권 분쟁으로 추락한 미샤 브랜드 이미지를 일신하고자 새 브랜드아이덴티티(BI·브랜드 상표)도 선보였다. 에이블씨엔씨는 9월28일 개점한 종로 매장에서 새 BI를 발표했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2분기 적자였던 영업 실적은 3분기에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

미샤를 시장 1위 자리에서 쫓아낸 곳은 신생업체인 더페이스샵이다. 더페이스샵은 지난 2003년 12월 혜성처럼 나타나 업계 판도를 뒤집었다. 권상우라는 일급 모델을 기용하는 한편 자연 성분이라는 제품 컨셉트와 독특한 디자인이 맞물리면서 ‘대박’이 났다.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매출 1천5백50억원으로 1백52% 성장했다. 매출 기준으로 대기업인 태평양과 LG생활건강에 이어 화장품 업계 3위에 올랐다. 올해 매출 1천9백억원, 영업이익 3백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매장 수는 국내외 5백60여 개(국내 4백30여 개·해외 1백30여 개)에 달한다. 정운호 더페이스샵 사장은 “전국 매장에서 같은 제품은 같은 값에 판매하는 브랜드 숍이라는 유통 채널을 선보이고 유통 혁신을 이뤄 싸게 제품을 공급한 것이 주효했다. 또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카피에서 볼 수 있듯이 싸지만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애썼다”라고 말했다.

 
저가 화장품 시장의 판도를 바꿀 가장 큰 변수는 태평양이다. 태평양은 이니스프리 허브스테이션과 에뛰드하우스라는 두 가지 브랜드를 내놓고 저가 화장품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고 나섰다. 태평양 자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2월16일 이니스프리 명동 직영 1호점을 연 데 이어 지난 8월 말까지 매장을 53개로 늘렸다. 역시 태평양 자회사인 에뛰드하우스도 올해 말 매장을 1백 개(현재 71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외에도 스킨푸드가 급부상하는 한편 소망화장품이 뷰티크레딧, 한불화장품이 잇츠스킨을 내놓으며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수확기’에 접어든 시장이 으레 그렇듯이 저가 화장품 시장에서도 조만간 낙오자가 생기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한 임원은 “실적과 브랜드 이미지 악화로 어려움에 처한 업체 하나가 조만간 쓰러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경우 누가 해당 업체를 인수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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