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만한 아들 없다
  • 기영노 (스포츠 평론가) ()
  • 승인 2006.09.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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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타 플레이어의 2세들, 운동 신경 뛰어나나 ‘대선수’는 못 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현대판 <홍길동전>이 아니다. 농구계 김유택·김진수 부자의 현재 상황이다.

김유택은 당대를 풍미한 국내 최고 센터였다. 2000년 울산 모비스가 국내 프로 농구 사상 처음으로 영구 결번(14번)을 지정했을 정도다. 그리고 아들 김진수(17·사우스켄트 고등학교)는 삼일중학교 시절 키가 2m가 넘었다. 현재 2백5cm다. 많은 농구인들로부터 키 2m가 넘는 선수가 기본기를 완벽하게 갖추었고 슛이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농구계를 짊어질 앞날이 창창한 선수다. 남자 농구 국가대표 최부영 감독은 지난 8월에 국내에서 열린 월드바스켓볼챌린지(WBC)에 17세 새내기 김진수를 국가 대표로 뽑기도 했다.

그러나 김유택과 김진수는 외형적으로는 남남처럼 지낸다. 김유택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씻을 수 없는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진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 아버지의 후광을 전혀 받지 못하고 성장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남자 프로 농구 안양 KT&G의 김지훈 선수는 아버지의 후광 때문에 프로 선수가 된 경우이다. 지난해 양재교육문화센터에서 있었던 2005 프로 농구 국내 신인 드래프트에서 당시 안양 SBS의 김동광 감독은 2라운드 7순위로 고려대 졸업 예정 선수였던 김지훈을 지명했다. 김지훈은 김동광 감독의 외동아들로, 국내 프로 스포츠 드래프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지명한 것은 처음이다. 당시 김동광 감독은 “오늘 이 자리가 양면의 가시방석이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지명하는 것이 어려웠음을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프로 야구에서는 지난 8월16일 열린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김동광 부자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SK 와이번스가 1라운드 5순위로 인천고등학교 1루수인 박윤 선수를 지명했다. 박윤은 SK 와이번스 박종훈 수석 코치의 아들이다. 그동안 프로 야구에는 유승안(KBO 경기운영위원)과 유원상(한화 이글스) 부자, 김진영(전 롯데 자이언츠·청보 핀토스 감독)과 김경기(전 SK 와이번스) 부자 야구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부자가 한 팀에서 뛰게 된 것은 박종훈·박윤이 처음이다.

박종훈·박윤 부자는 좌타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스타일은 다르다. 박종훈은 정교함과 날카로움을 갖춘 교타자였다. 반면 박윤은 한 방에 승부를 내는 파워 히터다. 박종훈은 1983년 OB 베어스 소속으로 프로 야구 신인왕을 수상했다. 만약 내년에 박윤이 신인왕을 차지하면 세계 프로 야구사에 유례가 없는 ‘부자 신인왕’이 탄생하게 된다.

프로 복싱은 ‘헝그리 스포츠’의 대명사여서인지 2세 선수들이 거의 없다. 4전5기의 대명사 홍수환씨의 아들 홍대호가 웰터급에서 3~4차례 경기를 치른 후 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1970년대 초 활약하던 이안사노 부자 얘기가 프로 복싱계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학사 복서로 유명했던 이안사노는 1960년 한국 웰터급 챔피언, 1965년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1966년 3월13일 일본 도쿄 고라쿠엔 홀에서 후지타 요코를 물리치고 동양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을 차지했다.

자식에게 골프 가르치는 선수 부쩍 늘어

그런데 이안사노가 1970년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한국 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도전자 이금택에게 2회 KO로 무너졌다. 그런데 당시 열두 살밖에 안 된 꼬마가 링 위로 뛰어 올라와 새롭게 챔피언이 된 이금택에게 “야, 인마 너 재지 마! 내가 어른이 되면 넌 죽어”라며 계란만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이안사노의 아들 이이다노였다. 그로부터 꼭 6년 후 이이다노는 주니어 라이트급 한국 챔피언에 올랐다. 1978년과 1979년 라이트급까지 제패했다. 그러나 자신을 복서의 길로 나서게 했던 이금택은 은퇴를 해서 직접 복수를 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는 같은 종목에서 뛰는 부자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종목을 막론하고 2세에게 골프를 시키는 선수 출신 부모가 부쩍 많아졌다.
지난 9월3일 막을 내린 신한동해 오픈 골프대회는 미국 남자프로골프투어(PGA)에서 활약하는 최경주 선수가 출전해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남자 배구 감독 김호철씨는 이탈리아 국가대표인 아들 김준(18)의 성적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추어인 김준은 첫날 무려 9오버파 81타로 최하위인 1백43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김준의 플레이를 본 국내 골프 전문가들은 “올해보다는 내년, 내년보다는 그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선수다”라고 평했다. 그러자 김감독은 매우 만족해했다.

 
1970년대 여자 배구에서 ‘나는 작은 새’라는 소리를 들으며 맹타를 휘두르던 조혜정씨는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인 조창수씨와 결혼했다. 그런데 2세 조윤희씨는 프로 골퍼로 활약하고 있다. 조윤희 선수는 어머니의 센스와 아버지의 장타력을 물려받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한국 선수 가운데는 유일하게 주부 선수로 활약하는 한희원의 아버지 한영관씨는 고려대 야구 선수 출신이다. 한영관씨는 고려대와 LG·기아 등에서 야구 선수로 활약한 손혁을 사위로 맞이하기도 했다.

프로 야구 현대 유니콘스 감독이면서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인 김재박씨의 막내아들 김기현도 프로 골퍼를 꿈꾸고 있다. 김기현은 현재 건국대 골프부에서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밖에 김용희(롯데 2군 감독), 김용철(경찰청 야구팀 감독) 이광권(현대 유니콘스 코치) 등의 2세들이 프로 골퍼를 꿈꾸며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스타 플레이어 2세들 가운데 자신의 부모보다 뛰어난 ‘청출어람’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조던·마라도나
자식 농사 시원찮네

외국 슈퍼 스타의 2세들도 대부분 아버지의 기량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농구의 신으로 불렸던 마이클 조던의 아들 제프리 조던은 농구를 한다. 그러나 그는 키가 아버지보다 무려 15cm나 작은 1백83cm. 기량도 아버지에게 훨씬 못 미친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주니어도 축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의 실력은 아니다.
프로 복싱의 대명사 무하마드 알리의 딸 라일라 알리는 미들급에서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아버지처럼 복싱을 예술로 승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불도저’ 조 프레이저 아들 마비스 프레이저 등 세계 챔피언 2세들도 권투를 하고 있지만, 아버지의 명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다만 야구에서는 사정이 좀 다르다.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배리 본즈와 신시내티 레즈의 캔 그리피 주니어가 각각 아버지 바비 본즈와 캔 그리피 시니어를 넘어서는 활약을 보이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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