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이 세상 바꾸려나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6.10.0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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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태 의원의 사형제 폐지 법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에 힘 얻어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법안은 오랫동안 ‘식은 감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15대 국회에서 유재건 의원이 발의했지만 법안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16대 국회에서는 정대철 의원이 발의했지만 역시 자동 폐기되었다. 17대 국회에서는 유인태 의원이 총대를 멨다.

유의원은 사형제 폐지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지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실제 사형 구형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형제 폐지 논의를 다시 ‘뜨거운 감자’로 만들기 위해 유의원은 동료 의원 1백75명(16대 국회에서는 1백55명 서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2004년 말 발의한 사형제 폐지에 관한 법안은 2005년 2월 법사위에 상정되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17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하반기 국회로 넘어오면서 법사위원이 많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법안심사소위 등 이미 거친 과정까지 다시 거쳐야 할 정도로 논의가 후퇴되었다. 이처럼 사형제 폐지 논의가 다시 ‘식은 감자’가 된 것은 유영철 등 연쇄살인범이 연거푸 등장하면서 국민 여론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한 편 덕분에 다시 사형제 폐지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문제가 된 영화는 바로 강동원·이나영 주연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약칭 ‘우행시’)이다. 사형수와 젊은 여교수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9월14일 개봉한 후 10여 일 만에 2백만 관객을 끌어 모으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추석 대목을 노린 영화들이 몰려나왔지만 입 소문이 좋아 흥행 열기를 이어갔다.

영화의 흥행은 사형제 폐지 논의에 큰 힘이 되었다. 마치 1990년대 초반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박태수(최민수 분)의 사형 장면이 방영된 후 사형제 폐지 여론이 일어났던 것처럼 영화 흥행 이후 폐지론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유의원이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영화 내용 속에 사형제도 폐지 논쟁을 둘러싼 몇 가지 중요한 화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개인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과정에서의 사회적 책임 문제, 오심의 문제, 범죄자의 교화 가능성 문제, 그리고 피해자 가족이 용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응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지난 9월25일 사형 폐지 운동을 이끌고 있는 또 다른 주역인 조성애 수녀와 영화를 관람하며 유의원은 임채정 국회의장을 초청했다. 유의원이 시사회에 임의장을 초청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사형제 폐지 법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 직권으로라도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유의원은 올해 정기국회를 사형제 폐지 논의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선이 있는 내년에는 정치권이 사형제와 같은 민감한 이슈를 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의원은 앰네스티에서 정한 사형 폐지의 날인 10월10일 열리는 아시아사형폐지행동네트워크 총회에서 사형제 폐지를 역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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