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미국에 할 말 할까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6.10.16 09: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 문제 등에서 워싱턴과 다른 목소리 낼 수도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 업무는 악몽이 될 것이다. 또 취임 후에도 산적한 현안이 많아 그는 업무를 익힐 시간조차 없을 것이다.” 한국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후임으로 확정된 직후 유엔 본부에서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조용한 성품에 매끄러운 일처리로 소문난 반기문 차기 총장이 유엔 내부의 반목과 부패, 그리고 각종 세계적 분쟁 등 유엔 안팎의 문제들을 잘 해결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가 9천명의 본부 직원(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엔 공무원까지 합치면 5만명에 달한다)에 연간 예산이 50억 달러에 달하는 이 거대한 국제기구를 과연 미국 등 강대국의 간섭을 받지 않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흔히 유엔 사무총장은 바티칸의 종교적 교황에 빗대어 세속적인 ‘교황’으로 비유된다. 세계 최대 국제기구의 사령탑인 만큼 세계 어디를 가도 대통령에 준하는 국빈 대우를 받는다. 누가 보아도 화려한 자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총장의 권한은 속 빈 강정이다. 유엔 사무총장의 연봉은 약 22만7천 달러로 미국 대통령의 연봉이 40만 달러인 것에 비하면 한참 밑이다. 분쟁 해결을 위해 세계를 빈번히 여행하는 자리이지만 총장 전용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오죽하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내게는 군대도 돈도 전문가도 없다. 회원국들이 어떤 일을 원치 않으면 난들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며 읍소한 적이 있다.

반장관의 앞길에는 크게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다. 하나는 21세기 시대상에 걸맞은 유엔 의 개혁 문제인데, 안보리 개편에서 평화 유지 활동 재조정, 사무국 조직 개편과 유엔 사업의 우선순위 조정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코피 아난 현 총장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국제 평화 증진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았지만 재임 말기 유엔 고위 관리들의 부패와 자신의 아들까지 연루된 이라크 식량 석유 맞교환 계획 스캔들, 나아가 유엔 평화유지군 일부 병사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일부 주둔지에서 벌인 성추행 사건 등으로 골머리를 썩였다.

“미·중의 견해차를 좁힐 유일한 인물”

문제는 반장관이 유엔의 산적한 현안을 강대국, 특히 미국의 간섭 없이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반장관이 미국의 군사 동맹인 한국 출신이며 친미파라는 점에서 향후 미국의 입김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반장관은 최근 아시아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은 유엔의 가장 중요한 회원국이다”라며 미국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반장관의 이런 발언은 전통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업무 수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반장관은 미국이 그토록 반대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열렬한 옹호자라는 점에서 사안에 따라서는 미국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폴 케네디 미국 예일 대학 교수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반장관은 국제 현안과 관련해 간섭주의자인 미국은 물론 내정불간섭 원칙을 고수해온 중국의 지지까지 덤으로 얻었다. 만일 누군가 미·중 양국의 견해차를 좁힐 수 있는 인물이 있다면 반기문만한 인물이 없을 것이다”라며 반장관의 총장직 수행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