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 모이는 등대의 다양한 ‘표정’
  • 전진삼(건축 비평가 · AQ 발행인) ()
  • 승인 2006.10.2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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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교수, <한국의 등대 건축 60선-디지털 드로잉 전>

 
이 땅에서 한국적이며 근대적 성격을 구현한 최초의 건축 작업을 꼽으라면 으레 개항장 도시의 근대 건축물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한국적이란 말뜻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일제 시대 지어진 도청이나 은행, 각국 영사관 등 관공서 건물만으로 한정해 한국 근대 건축사를 서술하기에는 우리 근대적 삶의 단편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다.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동떨어져 있지만, 등대 건축 또한 20세기 초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 등대 건축이 도입되는 배경에는 한반도를 러일전쟁의 발판으로 삼았던 일본의 야만적 의도가 짙게 배어 있다. 그런 연유 때문에 선진국에서 흔히 근대국가로 나아가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인식되곤 하는 등대 건축의 기술적·기능적·미적 특질들이 우리에게는 그렇게 인식되지 못했다.

등대 건축은 특성상 불연 재료를 써야 하기에 벽돌조, 석조, 콘크리트조로 건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파도와 바람의 힘을 견뎌내고 구조적 안정을 위해 원통형의 외부 형태를 갖추게 된다.

건축사적으로 볼 때도 등대 건축은 다른 도심의 건축물에 비해 콘크리트나 철강 등 신재료를 사용한 공학 기술이 일찌감치 사용된 분야이기도 하다. 등대 건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김종헌 교수(배재대학교 건축학부)에 따르면, 서양 건축의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등대 건축의 진화는 항상 기술적 측면에서 새로운 건축 시대의 가능성을 선도하곤 했다. 상대적으로 사람의 출입이 어려운 외딴 곳에 등대가 세워짐으로써 이같은 사실을 공유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덕도 등대 등 독특한 존재감 과시

이처럼 대중적 시선 밖에 머물러 있던 등대 건축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전시가 10월27일부터 11월2일까지 열린다. 인천 도시철도예술회관역 지하 전시장에서 개최되고 있는 ‘2006 인천건축문화제’에 초대된 건축가 박인규씨(배재대 건축학부 교수)의 <한국의 등대 건축 60선-디지털 드로잉 전>이 그것. 박교수는 수년에 걸쳐 한국의 등대 건축을 현장 조사했고, 이때 찍은 팔미도 등대·가덕도 등대 등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등대 사진 60점을 바탕으로 디지털 드로잉 작업을 완성해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인천은 1903년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세워진 곳이다. 건립 초기 팔미도 등대는 벽돌조와 석재가 혼합된 구조였으나 중간에 콘크리트조로 개량이 이루어졌다. 2003년에 팔미도 등대는 건립 100년을 맞아 인천시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하던 유엔군이 우선 탈환해야 할 첫 목표물로 삼았던 곳이 바로 팔미도 등대였다.

가덕도 등대는 중앙 주 출입구에 목재 포치(출입구 앞에 세우는 지붕)를 설치하고 처마 부분에 대한제국의 상징인 배꽃 모양의 문양을 새겨넣는 등 건축물의 외양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먼 바닷가에 홀로 서 있는 건물이지만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시기에 민족혼을 이어가고자 하는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박인규 교수는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아름답고 역사적인 등대들이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뱃길을 인도한다는 등대의 원초적 역할을 넘어서서, 시간적·장소적·물질적인 요소로서의 다양한 등대의 질감들을 표현해 우리나라 등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라고 전시 의도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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