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이 ‘우스개 버릇’이라고?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10.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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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소재 잘못 삼아 구설 올라…환자 부모들, 제소

 
서천석 박사(서울신경정신과 원장)는 지난 9월24일 KBS2TV <개그콘서트>(<개콘>)를 보다 깜짝 놀랐다.  기성 뉴스 프로그램을 패러디해 인기를 끌고 있는 새 코너 ‘버전 뉴스’의 그날 주제였던 ‘버릇 뉴스’ 때문이었다. 

뉴스를 진행하는 개그맨 두 사람과 보조 진행자 두 사람, 도합 네 사람이 제각각 버릇이라며 선보이는 동작을 보고 서박사는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뉴스를 진행하다 말고 안면 근육을 일그러뜨리거나(단순근육틱), ‘야야야야’처럼 무의미한 소리를 반복하거나(음성틱), 눈을 찡긋거리고 머리를 긁적이는(복합근육틱) 이들의 동작이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그가 보기에는 명백히 틱 장애자를 모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틱(Tics)이란 갑작스럽고 빠르게 이런 행동을 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질환을 일컫는다. 

서박사는 무엇보다 <개콘>이 이를 ‘버릇’이라 명명한 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개그맨들은 각자 틱 동작을 반복하면서도 서로에게 “버릇이 있으면 고치든가 참아야 할 것 아냐”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틱은 버릇이 아니라고 서원장은 잘라 말했다. 일반의 편견과 달리 틱은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버릇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그 동작을 반복하며 의지로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것이다(상자 기사 참조). 

그가 인터넷 <개콘> 게시판은 물론 방송위원회·청와대 신문고 등에 실명으로 된 진정서를 앞장서 올린 것도 이같은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서이다. 최근 급증한 틱 환자들을 접하면서 그는 이같은 편견에 사로잡힌 부모들이 못된 버릇을 고쳐놓겠다고 애를 ‘잡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불안한 환경에 노출되면 더 증세가 심해지는 틱 특성상 이렇게 병원을 찾게 된 아이들 중에는 도전적 반항·우울증·불안 따위 정신 장애를 동시 다발로 앓는 경우가 많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서 틱 장애가 2차 합병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개콘> 틱 장애 다룬 뒤 놀림당한 장애아 늘어

그가 동분서주하는 사이 틱 장애아를 둔 부모들도 서박사와 연대해 집단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방송사 공개 사과 및 인터넷 다시 보기(VOD)에서의 해당 코너 삭제를 요구하며 방송위원회에 불만을 접수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개콘>을 제소한 것이다. 국내 틱 관련 인터넷 카페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틱톡톡(cafe.daum.net/ticdisorders)’ 운영자 김 아무개씨(닉네임 ‘똑순이’)는 “<개콘>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개그맨 네 명이 보여준 동작은 모두 내 아들이 한때 반복하던 동작들과 정확히 일치했다”라며 자신이 나서게 된 배경을 말했다.

 ‘틱과 더불어-틱 자녀 부모 모임(cafe.daum.net/ticparents)’ 카페지기 김수연씨는 “<개콘>은 청소년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본 아이들이 생각 없이 우리 애를 놀려댈 생각을 하니 화가 치밀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천석 박사는 문제의 ‘버릇 뉴스’가 방영된 다음날 울음을 터뜨리며 병원을 찾아온 어린 틱 환자를 여럿 진료했다고 밝혔다. 개그맨들의 동작을 따라 하는 친구들 때문에 학교 가기가 싫다는 아이들이었다. 

 
보건복지부와 한양대는 최근 전국 94개 초등학교 학생 7천7백명을 대상으로 정신 건강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 학생 가운데 12.1%가 틱 장애 증상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일과성 틱이건 만성 틱이건, 한 반에 대여섯 명가량은 문제 증상을 앓고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학교 또한 틱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틱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과거에 비하면 상황이 많이 좋아졌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부모들은 말한다. 두 아들이 틱을 앓고 있다는 김현경씨는 “학기 초 미리 담임 교사에게 틱 사실을 얘기했더니 담임이 나름으로 관심을 표시한다고 ‘○○야, 오늘은 어떠니?’라고 매일 묻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다”라고 말했다. 틱의 경우 문제적 행동을 주변에서 못 본 척하고 무심히 넘겨주어야 증상이 호전되는 것이 상식인데, 교사가 이를 몰랐던 것이다.

 이들의 주장에 대해 <개콘>은 “틱 장애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김진홍 책임로듀서는 “‘버릇 뉴스’는 틱 증상을 가진 개그맨이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본인 스스로가 너무도 재미있어했고, 다른 스태프도 유쾌하게 제작에 임했다”라며 이로 인해 관련자들이 그토록 상처를 입을 줄은 몰랐다면서 당혹스러워했다. <개콘>은 이미 인터넷 시청자 게시판에 ‘담당자’ 이름으로 사과문을 게시한 상태이다.

개그콘서트 PD “틱 장애 비하 의도 없었다”

그러나 “개그는 개그로만 봐달라”는 이들의 해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수연씨는 이것이 면피성 사과문에 불과하다며 정규 방송에서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개그에 묘사된 일부 틱이, 사회 생활이 쉽지 않을 정도의 중증 틱이었는데도, 제작진이 경증 틱을 지닌 개그맨을 알리바이 삼아 내세움으로써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틱 장애자들을 피해 의식에 젖은 양 몰고 갔다는 데 더 분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논란을 보는 네티즌의 반응은 양 갈래이다. <개콘>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 네티즌은 “이해 당사자들이 너도나도 과민 반응을 보이면 개그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며 <개콘> 옹호론을 펴고 있다. 이에 서천석 박사는 “사회적 약자도 물론 개그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풍자의 칼날은 권력을 쥔 쪽을 향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한때 인기를 끈 개그 코너 ‘블랑카’도 이주 노동자를 내세웠으되 그의 입을 빌려 탐욕스러운 고용주와 한국인들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풍자함으로써 쾌감을 선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개그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는 그는 KBS가 공영 방송으로서 좀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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