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위협 이겨낸 사막의 ‘자유 언론’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0.30 09: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국 10주년 맞은 알 자지라, 아랍 미디어의 혁명 이뤄

 

올해 아시안게임 개최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며 아랍 분쟁을 중재하는 나라를 자임하는 카타르는 최근 자국에 소재한 방송사 하나 때문에 이웃 나라와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아랍 국가인 튀니지는 지난 10월25일 카타르에 주재한 모든 공관을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거의 외교 단절에 가까운 조처다.

양국 사이가 극단적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자리잡은 위성 채널 방송국 알 자지라의 방송 내용 때문이다. 튀니지 정부는 알 자지라가 튀니지 대통령 제인 멜 아비디네 벤 알리의 정적인 모세프 마르주키를 인터뷰하고 방송에 내보낸 것에 격분했다. 모세프 마르주키는 알 자지라와 가진 인터뷰에서 튀니지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알 자지라는 이전에도 튀니지 정부의 반(反) 히잡 정책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튀니지 외교부는 알 자지라 방송이 튀니지 정부에 해를 끼칠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하며 ‘적대적 캠페인’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튀니지의 공관 폐쇄 조처가 나온 다음날인 10월26일 알 자지라 방송 총책임자인 와다 칸파르는 방송에 전혀 정치적 의도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특히 알 자지라에 대한 불만을 카타르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까지 비화시킨 것에 유감을 표시했다. “우리는 카타르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기는 하지만, 카타르 정부는 방송 편집에 관여하지 못한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방송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웃 나라 통치자들과 끊임없이 갈등 겪어

카타르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아직 명확한 방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알 자지라 방송 내용이 이웃 나라 통치자들의 미움을 사서 카타르 외교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다. 카타르 외무장관 세이크 하마드 빈 자심 빈 자브르 알 타니는 알 자지라를 일컬어 “영원한 골칫거리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02년 알 자리라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을 강하게 비판하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 주재 대사를 소환한 일이 있다. 이라크 국방장관 하젬 살란은 알 자지라를 가리켜 “테러의 채널이다”라고 몰아부쳤다.

이처럼 아랍 정권들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은 알 자지라 위성 방송이 우여곡절 끝에 개국 10주년을 맞는다. 1996년 2월 설립된 알 자지라 위성방송은 1996년 11월1일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개국 1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알 자지라의 지난 10년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0월25일자 <알 자지라, 미디어 혁명>이라는 제목의 인터넷판 기사에서 ‘10년 전 알 자지라의 개국은 아랍 미디어의 혁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미디어 혁명이기도 했다’라고 평가했다. 이 기사는 ‘지난 10년간, 알 자지라는 족쇄에 묶인 아랍 세계에 자유의 목소리를 높여왔다’라고 맺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발간되는 경제 월간지 <포브스> 아랍판은 지난 10월19일 ‘가장 널리 알려진 아랍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는데, 알 자지라 위성방송이 1위를 차지했다. 독일월드컵 스폰서로 대대적인 광고를 퍼부었던 에미리트 항공사는 2위에 그쳤다. 알 자지라의 유력한 경쟁자였던 알 아라비야 위성방송은 3위였다.


알 자지라의 지난 10년을 축하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한쪽에서는 여전히 알 자지라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보수지 <AIM>은 지난 10월24일 ‘알 자지라는 부시의 죽음을 노린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어떤 미국 관료들은 이 아랍 방송국을 찾아가 미국의 견해를 홍보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은 적군에게 우리를 좀더 천천히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쏘아붙였다.
미국과 함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영국의 관료들도 알 자지라를 미워하는 사람들이다. 전 영국 내무장관 데이비드 블런킷은 지난 10월9일 영국 방송사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당시 카타르 수도 도하에 있는 알 자지라 본사를 폭격했다면 그 공격은 정당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알 자지라 방송 인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다”라는 단서를 달며 “2차 세계대전 때 ‘호 호 경(나치즘을 독려하는 방송을 했던 독일의 인기 라디오 아나운서)을 공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직 영국 장관의 말이 보도되자 알 자지라측은 즉각 “블런킷의 발언은 알 자지라에 대한 무책임한 위협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 자유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성명을 내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파문이 커지자 블런킷 측은 “방송에 오해가 있다. 장관 재임 중 블레어 총리에게 알 자지라 폭격을 조언한 적은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부시와 블레어, 알 자지라 폭격 논의”

알 자지라가 민감하게 대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실제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기 전날인 2003년 4월 미국 공군은 알 자지라의 바그다드 지사 건물을 정밀 폭격해  타리크 바그다드 특파원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미군측은 오폭이라고 밝혔지만 의도적인 공격이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 많다.
2005년 11월 영국 신문 데일리 미러는 2004년 4월16일 워싱턴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다섯 쪽짜리 대화록을 공개했는데, 이 대화록에 따르면 양국은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 자지라 본사를 폭격할 계획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쏘아 정밀 폭격을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알 자지라 취재진들은 세계 곳곳에서 수난을 겪어왔다.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알 자지라 취재진 두 명은 테러를 돕는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특파원 타이시르 알루니는 오사마 빈 라덴과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 구속되어 재판까지 받았다가 겨우 풀려났다. 카메라맨 사미 알 하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된 이후 악명 높은 미군 산하 관타나모 기지에 5년째 수감 중이다. 알 자지라취재진은 한때 이라크 취재 자체를 금지당했으며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 입국이 거부되고 있다.

그러나 알 자지라는 온갖 압박과 위협에도 아랍의 최대 위성방송사로 자리 잡았다. 한때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알 자지라의 경쟁사로 아부다비 위성방송을 띄우려 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알 자지라 방송국의 고급 인력에게 두 배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리를 옮긴 방송인들은 이내 곧 후회하며 알 자지라로 돌아왔다.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보도 내용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 자지라는 서구적 가치 기준으로 아랍을 바라본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이런 비판을 등에 업고 2003년에는 알 아라비아 위성방송이 알 자지라의 유력한 경쟁자로 등장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 소유하고 있는 알 아라비야는 사우디 왕실이라는 성역을 끝내 넘지 못했고, 이는 카타르 왕자들도 자유롭게 비판하는 알 자지라와 비교되었다.
미군도 알 자지라를 제압하기 위해 2004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알 후라’라는 경쟁 위성방송을 세웠지만,  친미 방송이라는 딱지 속에 알 자지라를 공략하는 데 실패했다. 현재 알 자지라 시청자는 6천만명이 넘는다.

11월1일 알 자지라 개국 10주년을 맞아 카타르 도하 본사에서는 조촐한 기념식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16.5m짜리 조각상 ‘자유의 벽’ 제막식도 함께 진행된다. 이라크계 캐나다인 미술가 마흐무드 알 오바이디 씨가 만든 이 조각에는 분쟁 지역을 취재하다 사망한 6백30명의 기자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 명단 가운데 2003년 사망한 알 자지라의 타리크 특파원이 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