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폭, 마카오 밤거리 누빈다
  • 마카오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11.20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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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돈 버는 ‘도박 알선업’ 놓고 조직 간 전쟁…살인 사건까지 저질러

 
중국특별행정자치구 마카오의 신덕(sintra)가는 카지노장이 밀집한 유흥가와 바로 연결되는 곳이다. 이 곳에는 한국의 검찰청에 해당하는 마카오 검찰원이 있고 정문에는 경찰이 24시간 보초를 선다. 지난 11월3일 밤, 보초를 서던 경찰은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검찰원 정문에서 채 15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한국 식당 앞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죽은 사람과 죽인 사람 모두 한국인이었다.

현지에서 이른바 ‘한국인 도박단 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살인극은 마카오 사회와 교민 사회 모두에 충격을 줬다. 마카오 최대 일간지 <오문(마카오) 일보>는 4일자와 5일자에 ‘도박 이권 다툼으로 한국인 피살’이라는 제목으로 연 이틀 1면 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교민 사회가 타격이 너무 크다. 마카오 사람들이 한국인들을 다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아이들 학교에 보내기 창피하다.” 최초로 경찰에 신고했던 한국인 식당 주인의 말이다.

열흘이 넘게 지났지만 마카오 교민들은 아직도 삼삼오오 만나면 화제가 자연스레 그 날 밤 사건 이야기로 옮기곤 했다. 실제 칼로 찌른 게 누구라는 둥, 시킨 사람은 누구라는 둥, 하는 식이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경찰 조사 결과를 종합해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피살자 배씨(50)는 3일 저녁 10시 경부터 친구 방씨 등 4명과 한국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날 밤 11시30분 경 마카오에서 카지노 롤링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이건주씨(43)가 부하 4명과 함께 식당에 찾아왔다. 평소 이건주씨와 배씨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그날 오후에도 이미 한 차례 싸워 경찰서에 다녀온 뒤였다. 욕설이 오가던 도중 이건주 부하가 칼을 꺼내 배씨 허벅지에 대고 "앞으로 행동 조심하십쇼"라며 위협했다.

이건주 일당은 평소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배씨는 욕을 하며 반항했고 서로 엉키며 싸움이 벌어졌다. 목격자에 따르면 일당 중 2명은 배씨 친구 방씨를 때려 이마가 찢어지는 중상을 입혔고. 다른 3명은 배씨를 맡았다. 2명이 배씨의 양 팔을 잡았다. 이씨 일당은 배씨의 바깥쪽 대퇴부를 3번, 안쪽 사타구니를 1번 찔렀다. 사타구니 부근 정맥이 끊기면서 피가 터져나왔다.

싸움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바닥은 피로 흥건히 젖어있었고 배씨는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수혈을 받았지만 끝내 과다출혈로 숨졌다.
살해할 의사가 있었던 것은 아닌 듯 싶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에 쓰인 등산용 칼의 날은 유리테이프로 감겨져 끝만 3cm가량 나와있었다.

경찰은 가해자 일당 5명 가운데 현장에서 도망치던 김아무개씨(34)을 잡았다. 나머지 4명은 다음날 새벽 2시 배를 타고 홍콩으로 도망쳤다. 구속된 김씨는 마카오 경찰 조사에서 다 자기가 한 일이라며 책임을 덮어쓰려고 했다. 하지만 마카오 경찰과 한국 당국은 실제 범행을 지시한 배후는 따로 있다고 본다. 롤링 조직의 총책격인 이건주씨다.

왜 이건주씨 일당이 같은 교포인 배씨에게 그런 짓을 했을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교민들은 말을 아꼈으나, 마카오 현지인, 지역 언론인 등을 포함한 현지 취재를 통해 마카오 한국인 조직 실태와 갈등 구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건주, 한국계 도박 알선 시장 거의 평정

이건주(63년생)씨는 마카오 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건달로 알려진 사람이다. 광주 송정리파 멤버라고 하는데, 한국 경찰이 관리하는 송정리파 명단에는 없다. 이씨는 2004년 한국 경찰에 구속되었을 때는 서방파 조직원이라고 보도되었다.

이씨가 데리고 다니는 조직원(식구)는 약 30명 가량 된다. 마카오 전체를 놓고 보면 큰 세력은 아니지만 채 200명이 안되는 교민 수에 비하면 많은 숫자다. 최근 필리핀에서 ‘동생’(조직에서 자신보다 아래 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데려왔다고 한다. 필리핀 세부 카지노장이 환치기 단속으로 활동이 어려워져서 마카오로 몰려왔다는 말도 있다. 마카오에서 도박 롤링일을 한지 15년이 넘는 이건주씨는 2004년 이후부터 난립하던 마카오 내 한국인 군소 롤링 조직을 흡수 통합해 자기 밑으로 끌어들이는 ‘통일’ 작업을 해 왔다. 살인 사건 발생 직전까지 거의 한국계 마카오 롤링 시장을 평정한 단계였다.

롤링 조직이란 일종의 도박 알선 조직을 말한다. 한국인 관광객을 카지노장에 데려가 도박을 시키는 대가로 카지노 업체로부터 커미션을 받는 사람들이다. 카지노 업체는 롤링 조직에게 브이아이피 룸 일부를 렌트해 주는 대신 거액을 베팅하는 큰 손을 모을 수 있어서 서로 좋다. 대개 손님이 베팅하는 액수의 1.3%를 롤링 조직이 가져간다. 1.3%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수십억대의 돈이 돌고 돌다보면, 모두가 돈을 잃는 사이에 수수료만 눈덩이 처럼 불어간다. 한국계 카지노 롤링 조직의 연간 매출이 50억원~2백억 원대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카지노장 1층에서 기웃거리는 어수룩한 관광객을 롤링 조직원이 찾아 유혹해 위층 브이아이피 룸으로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 장사가 되는 것은 직접 한국에서 물주를 찾아 마카오로 데려오는 것이다. 이 경우 롤링 조직이 물주의 비행기 값, 호텔 체제비까지 부담하며 극진히 대접한다. 심지어 항구에서 카지노장까지 헬리콥터를 동원해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2002년 마카오 정부가 외국인의 카지노 투자를 허용하면서부터 마카오 카지노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를 틈타 롤링 조직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 전에는 이건주 조직을 비롯해 3~5개파가 나름의 신사협정으로 시장을 나누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2002년 이후에는 계파가 없이 롤링 사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건주 조직은 자신의 허락 없이 롤링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가 카지노 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 구좌를 자기 것을 이용하라고 요구했다.

 
카지노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는 속칭 ‘구좌’라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영주권이 있는 이건주씨는 자신의 구좌가 있었다. 과거 롤링 조직 중에는 한국인 물주를 통해 나온 수수료를 중국인 구좌를 통해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건주씨는 왜 중국인 좋은 일 시키냐며 자신의 ‘통일 사업’을 정당화시켰다. 이건주씨는 자기 구좌를 이용한 다른 조직에게 배당금 90%를 돌려줬다.

수수료를 받는 것 자체는 합법이라 사법 당국이 제재할 방법이 없다. 한국 검찰은 2004년 10월 이씨를 체포했을 때 외국환 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시켰다. 당시 이씨는, 강모씨(42), 주씨(46세)등과 함께 수백억대 원정도박단을 알선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이씨가 챙긴 롤링 수수료는 20% 가까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마카오 카지노 매출, 라스베이거스 추월

이건주 일당에게 목숨을 잃은 배씨(50)는 부동산,건설업을 하는 돈많은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초에 마카오에 살기 시작했는데 그 전에도 사업 관계로 자주 왔다고 한다. 배씨도 한 때 롤링 사업을 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롤링보다는 건설·부동산 사업에 더 관심 많았고, 여러 큰  거래 계약을 앞두고 있었다.

배씨와 이씨는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였는데 배씨가 나이가 7살이 많았기 했기 때문에, 그는 이씨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배씨가 한 때 롤링 일을 했을 때도 이씨 구좌를 이용한 적은 없었다. 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사적인 감정 다툼도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마카오에서 거의 ‘왕’ 행세를 하는 이씨를 향해 배씨는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곤 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인 11월3일, 배씨는 자신의 지인을 <랜드마크> 카지노 브아이피 룸에데려갔는데 거기서 이씨 일당과 만나 한 번 시비가 붙어 경찰서까지 가서 화해 조건으로 풀려났다.

2002년 이래 카지노 전담반을 따로 꾸리고 있는 마카오 경찰은 사건을 신속히 수사하고 있다. 살해 현장에서 김모씨(34)를 체포한 마카오 경찰은 달아난 이건주씨를 포함해 방모(26), 김모(26), 또다른 김모(26)씨 등 4명을 인터폴에 수배했다. 한국은 홍콩과 올해 10월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었지만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마카오 최대 일간지 <어문일보> 기자 라이 홍씨는 이번 사건의 원인으로 “마카오 시장이 커지면서 이권을 노린 외국인들의 진출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현재 마카오는 교민의 표현 대로라면 천지개벽을 하고 있는 중이다. 수십 년 동안 마카오 카지노 사업을 스탠리 호()가 독점했던 시절의 최대 카지노는 리스보아였다. 하지만 지금 리스보아 카지노는 3위권에도 들지 못한다. 라스베가스를 비롯한 미국 카지노 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고 일어나면 전보다 더 큰 새 카지노가 세워진다” 한 교민의 평이다.

 
마카오는 미국 라스베가스 카지노 산업 양대 산맥의 대리 경쟁장이 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라스베가스 샌즈 카지노로 유명한 샐던 아델슨(72)이다. <포브스> 조사에서 미국 최고 부호 3위에 오른 그는 2004년 같은 이름의 샌즈 카지노를 마카오에 세웠다. 샐던 아델슨의 오련 경쟁자인 카지노 사업가 스티븐 윈(64)는 올해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윈 카지노를 오픈했다.

한국에서 이건주 빈자리 채울 조직 올 듯

2007년 7월 마카오 타이파 섬에 베네치아 리조트를 오픈하는데 베네치아 리조트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마카오 카지노의 절반에 해당하는 크기다. 베네치아 리조트는 카지노 좌석이 3천개, 호텔 객실은 6만개에 이른다. 2005년 5월까지 마카오 전체 카지노 좌석은 1450석이었는데,  2007년에 3570석, 2009년에 4370석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은 강원랜드와 파라다이스를 합쳐도 2백석 남짓에 불과하다.
레저 산업 분석 잡지인 <글로발리시스>에 따르면 마카오 카지노 시장 규모는 2006년 매출액 6조8천억원으로 라스베거스 6조6천억원을 제칠 예정이다. 지난 9월 한달 매출액이 5억76백만달러(5천7백60억원)로 지난해보다 37% 늘어났다.

직접 마카오 카지노 지대를 돌아다녀보면 라스베가스 자본이 운영하는 카지노가 과거 스탠리 호(85)의 카지노에 비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탠리 호 시절 최대 카지노인 리스보아 카지노는 마치 도박굴 같은 칙칙한 분위기를 준다. 2002년 기자가 탐방했을 때와 현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미국 자본이 운영하는 카지노는 높은 천당에 넓고 트인 공간을 기본으로 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카지노 주변에 이벤트도 많이 연다. 윈 카지노 호텔 앞에서는 초대형 분수 쇼를 불꽃쇼를 15분 간격으로 펼치고 있었다. 홍콩 자본으로 지난 10월 문을 연 갤럭시 카지노 장에서는 대형 프로젝션 화면 앞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며 콘서트 분위기를 연출시켰다. 그전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마카오 경기는 언제나 좋았지만 지금은 호경기 중에서도 호경기다.” 마카오에서 부동산 중개소 <뚠페이>를 운영하는 조선족 중국인 진젠씨는 “2년 전부터 한국인들이 부쩍 많아졌다.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도 많다. 어제도 한국인이 6백만불(홍콩달러)에 집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마카오 시내 곳곳에는 카지노와 아파트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유입 인구는 늘어나는데 땅은 한정되어 있으니 부동산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 마카오 정부는 간척사업도 벌이고 있다. 배씨가 건설업에 관심을 보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2002년까지 마카오에 한국인 식당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올해 9월 문을 연 식당을 포함해 다섯 개나 된다. 그 만큼 한국인 유입이 많아져다는 뜻이다. 마카오의 부흥으로 강원랜드도 간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마카오 현지에서 “내가 얼마전까지 강원랜드에서 일 좀 하다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엇다.

살인 사건으로 마카오 경찰 당국이 수사에 나서면서 이건주파는 흔들리고 있다. 구치소에 수감중인 김씨는 처음에는 다 자기가 한 일이라며 죄를 뒤집어 쓰려 했지만, 최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마카오 한인 롤링 조직이 와해되기보다는, 이건주가 떠난 빈자리를 다른 조직이 와서 채우며 명맥을 이을 가능성이 더 높다. 한인 식당가에는 이건주 ‘식구‘들의 얼굴이 곧잘 보이곤 했다. 한 눈에 주먹 계통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필리핀에서 왔다”라며 사업이야기를 나누는 풍경도 쉽게 볼 수 있다.

10월15일 마카오 카를로스 광장 한국인 식당 앞에 대형 승합차가 서더니 한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청년들 15명 가량이 내렸다. 이들은 짧은 머리에 검은색 양복을 입고 표정 없는 얼굴로 ’보스‘로 보이는 사람에게 “형님“이라며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서열에 맞게 줄지어 식당 2층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조폭 영화 속 풍경 같았다. ’형님‘들을 위해 ’막내’ 몇 명은 식당 문 앞에서 경호를 섰다. 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떠나자 식당 주인은 ”저런 사람들이 길 막고 있으면 장사 안 되는데...“라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이들의 마카오 진출이 지난 3일 살인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형님’이 경호를 원한 이유는 사건 이후 안전을 생각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올 한해 한국 사회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바다이야기> 파문이었다. 정부가 단속을 벌이면서 국내 도박 시장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마카오는 딴 세상 이야기다. 지난 11월15일 밤 마카오 풍경은 유난히 화려했다. 제53회 세계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대회 전야제와 함께 축하 폭죽이 하늘을 울렸다. 떨어지는 불꽃은 올해 신축된 카지노 호텔 빌딩의 LED조명과 어울려 장관을 이뤘다. 마카오 카지노가 번창 일로를 걷는 한, 마카오행 비행기를 끊는 한국 조직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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