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감추고 숨겨놓은 ‘천혜의 요새’
  •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6.11.27 10: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일의 선택] 현암사

 
2년 전만 해도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여행을 많이 했다. 그런데 여행할 때마다 묘한 인연을 느끼곤 했다. 충북 청원군, 대청호 뒤에 있는 현암사(懸巖寺)를 찾게 된 것도 매우 우연이었다.

옛 수몰 지역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문의마을과 청남대, 대청호 등을 둘러보고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청남대로 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현암사라는 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대청호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찔한 위치에 그 절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올라가니 8부능선쯤에 절의 요사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과연 눈앞에 장관이 펼쳐졌다. 대청호의 푸른 물이 마치 발밑에서 일렁이는 듯했다.

문득,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이곳의 지세가 궁금해졌다. 젊은 스님에게 설명을 청하니 그 답이 걸작이다. “현암사를 매달고 있는 이 산 이름이 구룡산인데, 속리산을 좌청룡, 계룡산을 우백호, 전라도 식장산을 남주작으로 거느리고 있는 천혜의 요새, 천장비지(天藏秘地;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기는 곳)의 지세이다”
신라 때 고승 원효 대사가 아홉 갈래의 물줄기가 모여드는 산이라 하여 구룡산(九龍山)이라 명명했다는 것,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대륙을 치는 형세라 하여 이 산의 기운을 꺾으려 하였으나 풍운조화가 일어 겨우 목숨만 건저 돌아갔다는 설화 등도 함께 전해주었다.

특히 그의 얘기 중 ‘좌속리 우계룡의 한가운데 구룡산이 있다’는 대목에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한반도의 지세를 인체에 비유해, 상단전에 백두·묘향, 중단전에 금강·설악,  하단전에 속리·계룡이 버티고 있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속리·계룡의 한복판에 구룡이 또 있었다니. 하단전은 바로 신장 방광이며 오행상 수(水) 기운에 속하고 구룡은 바로 그 수기가 극에 이른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효 대사도 바로 이곳을 한반도의 하단전으로 본 것인가.

 
원효 대사의 그 다음 예언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1천년 후 이 산 앞에 세 개의 호수가 생겨 왕(王)자의 형상이 되면 임금이 거처하게 되리라.” 1980년 정부의 4대강 유역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대청호에 물이 차 용호·미호·황호라는 세 개의 호수가 만들어졌고, 거의 동시에 대통령 하계 별장인 청남대가 지근거리에 들어섰다.

나에게는 한반도의 하단전에 수기를 뜻하는 물이 들어찼다는 점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결국은 이때부터 메마른 이땅의 지세에 수기가 들어서 수승화강의 생명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곳이야말로 이 땅의 수기가 모여드는 집결처이자 출발점인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이곳을 ‘남구룡(南九龍)’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