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덧칠’을 벗겨내다
  • 표정훈(출판 평론가) ()
  • 승인 2006.12.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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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새빨간 미술의 고백> 반이정 지음·<월간미술> 펴냄

 
오래 전 죽은 미술가들이 남긴 고전적 작품이 아니라, 동시대를 호흡하는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최근작을 만나고 싶다. 작품의 미학적 성과를 관념적 용어로 칭찬하는 글보다는, 작가의 창의력과 아이디어에 주목하는 글을 읽고 싶다. 예술 작품의 어떤 권위 같은 것에 주눅들지 않고 ‘사물로서의 작품’을 사뭇 냉담하게 바라보고 싶다. 피카소와 워홀 이후 현대 미술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고 싶다. 이런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책이 반이정의 <새빨간 미술의 고백>이다.

우리가 바로 지금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불친절하고 낯선 현대 미술 작품들의 다섯 가지 속성이 이 책의 얼개를 이룬다. 패러디(온고지신으로 거듭나는 예술의 생명력), 아름다운 예술에 도전하는 사회 비판적인 예술, 거품을 허무는 경량화된 예술, 미술관을 등지고 부피와 충격으로 승부를 건 옥외 예술, 장르 간 교차와 미디어 친화적 미술.

이 가운데 경량화된 예술이란 무엇일까? 폐물을 활용한 작품을 내놓거나,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흔적마저 남지 않는 일회용 미술로 유희를 즐기는 것이다. 이런 작가들은 예술품을 영구 보존 가능한 큰 덩어리로 간주하지 않으며, 일시적인 미학적 충격 자체에서 예술의 존재 가치를 찾는다. 이것은 예술가와 예술품에 대해 대중이 품고 있는 필요 이상의 경외심과 도식화된 감상 문화에 대한 경종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김영진의 ‘싸이클롭스’(1996)는 안경알이 달랑 하나 달린 안경(?)이다. 그 안경알도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사실상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나 뜻밖의 쓸모가 있으니 외눈박이 거인 싸이클롭스(키클롭스)가 쓰면 제격이다. 이 안경 아닌 안경은 ‘외눈 거인을 위한 배려’임과 동시에 ‘상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소외 받은 상상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사회 비판적인 예술로 분류돼 있는 박불똥의 ‘코화카염콜병라’(1988)는 또 어떤가? 코카콜라 병에 성조기 헝겊을 꽂은 이 화염병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점화된 한 개의 화염병은 고작 차량 한 대를 전소시킬까 말까지만, 성조기가 꽂힌 콜라병의 미학적 파괴력은 그 이상입니다. 시사성을 배신하지 않는 정치적 예술품은 아름답지는 않을지언정, 꽤나 철학적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대 미술, 이거 별 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정말 별거네.’ ‘인상파 거장전 같은 전시회말고 뭐 더 재미있는 전시회는 없나? 한 번 가보고 싶다.’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기만 해도 예술 문턱에 다다를 수 있겠다.’ 바로 여기에 수많은 다른 예술 도서들을 뛰어넘은 이 책의 미덕이 있다.

추천인 :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전진삼 (건축비평가 <AQ> 발행인) 정준호 (음악 칼럼니스트) 표정훈 (출판평론가)

 

예술가의 삶을 다룬 평전도 여럿 추천되었다. <단원 김홍도>(솔 펴냄), <레니 리펜슈탈>(마티 펴냄), <루트비히 판 베토벤>(한길아트 펴냄) 등이다. <레니 리펜슈탈>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추천한 음악 칼럼니스트 정준호씨는 “전자는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던 예술가의 금지된 열정에 대한 꼼꼼한 보고서이고, 후자는 베토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그 어떤 책보다 가장 결정적인 전기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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