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책/인문, 사회 서평과 박스 기사
  •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 승인 2006.12.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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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인문, 사회 서평^

#인문 : <건국의 정치> 김영수 지음/이학사
필자 :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건국의 정치>는 고려왕조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에 이르는, 약 40여 년간에 걸친 전환기에 대한 정치사상 연구서다. 그 부제인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속에 이 책의 독서지침이 또렷이 들어있다. 요컨대 조선의 건국과정을 ‘문명화 과정’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제1장 제목인 ‘고려의 가을’에서 문득 호이징하의 문명연구서 <중세의 가을>을 연상하게 되는 것도, 그런 독법 때문이리라.
한국정치사상 연구자인 저자에게 8백 쪽의 방대한 분량이 충당될 만큼 이 시기가 중요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여말선초는 한국 정치사상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었다. 왜냐하면 정치와 종교가 혼재되어 있던 사유에서 정치 그 자체를 성찰하고, 정치를 중심으로 다른 모든 사유를 재구성하고자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말선초는 진정한 한국 정치사상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의 건국은 “고려시대의 자연적 연속이나 중국정치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재성찰을 통한 인위적 산물”이었다고 짚는다.
그러면 조선이 이루고자 한 문명은 무엇인가. 저자는 주저 없이 조선의 문명성의 핵은 ‘소통’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공론’으로 표현되는 의사의 소통이, 폭력이나 금력 또는 신탁에 의한 ‘야만의 정치’와 구별되는 뚜렷한 기준이다. 이런 점에서 성리학은 그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여말의 절망적 혼란상황 속에서 미래의 비전을 모색하던 선진적 정치인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선택되고, 가공된, 문명화 전략의 도구였다.
이 방대한 책 속에는 다양한 사이(間)들이 촘촘히 겹쳐져 있다. 마치 꽃등심의 마블링처럼, 다양한 ‘사이들’이 글 읽는 맛을 더하는 찰진 기름 역할을 한다. 유교사상과 도참사상의 사이, 정치와 운명의 사이, 권력(마키아벨리)과 도덕(공자)의 사이 등등. 그렇다면 이 책의 지형도를 다양한 지식들이 부채살처럼 펼쳐지다가 정치학적 렌즈의 초점 위로 수렴되는 양상으로 묘사할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고려말기의 정치 구도를 서술하기 위해 도참사상과 지리설, 샤머니즘과 불교사상에 대한 서술이 펼쳐지고, 조선의 건국과정을 논하기 위해선 공자와 맹자, 그리고 주자의 사상에 대한 깊은 논의가 전개된다. 그 사이 오늘날 독자들에게 ‘인간의 운명과 정치적 모색과정’을 설득하기 위해 또 서양의 정치철학과 문학적 지식이 적절하게 개입한다.
이처럼 다양한 학문들을 횡단하는, 넓되 치밀한 글쓰기 덕택으로 6백여년 전, 격변기 속에서 명멸한 인간들의 욕망과 절망, 그리고 꿈을 대하드라마처럼 즐길 수 있게 된다. 그 와중에 우리는 ‘과연 정치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좋은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의 장으로 자연스럽게 초대된다. 이 점이야말로 이 시대를 다룬 다른 역사서들과 이 책이 구별되는 점이다.


#사회 : <침묵과 열광: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강양구·김병수·한재각 지음/후마니타스
필자 : 강유원(서평가, 철학박사)

민주주의를 지키고 더 나아가 발전시키는 일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 치명적인 위협들 때문일 것이다. 그 위협 중의 하나는 하루 하루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버거워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는 아예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는 대중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위협이라기 보다는 민주적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겨난 결과에 해당한다. 민주주의가 단순히 '누구나 한 표'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고, 그것에는 당연히 한국에 살고 있는 주민 -- 이건 말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뭔가 자격조건이 필요해 보이는 '시민'이 아니다 -- 이라면 누구나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과 그것의 실천이 포함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사태들에서는 거의 항상 대다수의 주민들이 우롱당하며, 무시되며, 배신당한다. 그러한 우롱, 무시, 배신의 범인들은 이른바 지식 엘리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자 사회의 치명적인 독이다.
7년 동안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터져버린 황우석 사태는 한국의 지식 엘리트들이 벌일 수 있는, 그리하여 이 사회를 아주 철저한 비민주적 야만 국가로 전락시킬 수 있는 온갖 악행을 총망라하여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과학기술동맹"이라 부르는, 정부, 정치, 사회, 경제, 학계에 걸쳐 자리잡은 배웠다는 자들은 서로의 비리는 침묵으로 감싸주면서,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면서 타인의 육체를 갈취하고 주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비로 서로의 뱃가죽에 기름칠을 해주었다. 그리고 대중은 그런 이들이 펼쳐 보이는 "마술" -- 그 자신 정치를 마술처럼 하고 있는 대통령은 "이것은 생명공학이 아니라 마술"이라 하였다 -- 에 열광하였다. '과학자가 거짓말을 할 리가 있나', '과학은 좋은 것 아닌가'... 한번도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이런 순진한 믿음이 그러한 열광의 뿌리에 자리잡고 있다. 대중을 뜯어먹는 이는 지식 엘리트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 엘리트는 자본의 앞잡이에 불과할 수도 있다. 황우석 사태의 또다른 핵심 주역은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자에게 "우리 회장님"이라 불리는 이 등이 지배하는 영리의료 법인들이다. 이것이 의료시장화로 구체화되면 자본은 인간의 몸뚱아리 속까지도 자본 식민지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야망에 불타는 한 과학자가 한국과 세계를 상대로 벌인 한판의 사기극으로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지식 엘리트, 거대 자본, 지식 관료가 굳고 손을 맞잡고 아주 공들여 민주주의를 파괴한 반민주적 폭거로 보아야 옳다. 아주 걱정스러운 것은 이러한 폭거가 미시적 차원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의책/인문, 사회 박스^
^본문 40행^

올해 인문 출판 분야의 주목할 흐름으로 한국 현대사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을 들 수 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은 이른바 ‘뉴라이트판 역사 인식’을 선보이며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동철 교수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으며, 그 기원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재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이 책을 평했다. <근대를 다시 읽는다>(역사비평사)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진보 성향 학자들의 응답이다. 두 책 모두 1, 2권 합쳐서 1천5백 쪽 가까이 되는 대작이다.
‘고문의 한국 현대사’라는 부제가 붙은 <야만시대의 기록>(역사비평사)도 특기할 만하다.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박원순은 이 책에서 ‘인류의 불의의 유산’인 고문이 한국 현대사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꼼꼼하게 파헤쳤다. 이 책 역시 전 3권, 1천6백 쪽에 이른다.
전 15권, 2백자 원고지 2만매 분량의 <한국 현대사 산책>(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도 대작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강유원씨가 추천한 <한국전쟁>(정병준 지음, 돌베개)은, 국내 역사학자가 쓴 본격 한국전쟁 연구서로 꼽힌다. 이욱연 교수가 추천한 <우방과 제국-한미 관계의 두 신화>(박태균 지음, 창비)와 윤해동 교수가 추천한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공제욱·정근식 엮음, 문화과학사)도 기억할 만하다.
한·미 FTA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국내 사회과학 출판 분야의 현안이었다.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와 송기호의 <한미 FTA의 마지노선>(개마고원) 등이 이 문제에 집중했다.
구춘권 교수는 최장집 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후마니타스)를 주목했고, 박명림 교수는 <리영희 저작집>(한길사)의 출간에 의미를 부여했다. 신광영 교수는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부키)과, 번역서로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21세기 북스) 등을 추천했다.
안철흥 기자 ahn@sisapress.com


추천인 : 강유원(서평가, 철학박사) 이동철(용인대 교수·중국학) 이욱연(서강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윤해동(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한국사)
구춘권(영남대 교수·정치학) 박명림(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배병삼(영산대 교수·정치학) 신광영(중앙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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