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싸이보그지만 괜찮아>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12.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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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신세계정신병원에 영군(임수정)이라는 환자가 들어온다. 영군은 할머니의 틀니를 끼고 기계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할머니를 끌고 간 앰뷸런스의 ‘하얀맨’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일순(정지훈)은 타인의 것을 훔친다. 그는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안티 소셜(anti social)’이 되었다. 음식을 거부하는 영군에게 일순은 무엇인가를 먹이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박찬욱 감독 자신의 말에 의하면 “과거의 내 영화 같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한 영화”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이하 <싸이보그>)는, 그러나 과거의 박찬욱 영화를 상당 부분 연상시킨다. 영군과 일순의 현재는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나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이영애)처럼 항상 과거에 얽매여 있고, 지속된 유괴나 납치의 모티프 또한 반복된다. 감금방과 교도소는 정신병원으로 치환되었고, 촬영과 음악과 미술과 조명과 의상 스태프들 또한 박찬욱 감독과 꾸준히 손발을 맞추었던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싸이보그>가 뭔가 다르다면, 그건 이 영화가 밤이 아닌 낮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전의 박찬욱 감독 작품들이 주로 야행성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 정서와 톤에서 주행성에 가깝다. 임수정과 정지훈(비)이라는 청춘 스타의 조합은 이 영화를 한층 더 밝게 하며, 그들의 조금은 과장되고 양식화된 연기는 어쩌면 <싸이보그>를 ‘12세 관람가’의 영화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싸이보그>에서 박찬욱 감독이 보여주는 영화적 유희다. 그는 장르적 관습과 경계 사이를 빠져나가며, 판타지인가 싶으면 현실로 돌아오고 현실인가 싶으면 판타지로 달아난다. 싸이보그, 아니 사이보그라는 존재는 그런 면에서 상징적이다. 사실 영화 속에서 사이보그는 언제나 자신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하거나 아예 자신을 인간이라고 여기지만, <싸이보그>의 영군(임수정)은 반대다. 그녀는 사이보그가 아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고 형광등이나 자판기와의 대화를 시도하며 식사 대신 건전지

 
충전으로 에너지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사이보그라는 SF 캐릭터는 <싸이보그>에서 코미디가 되며, 바로 이 ‘장르 유희’는 이 영화를 좀더 깊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 감독은 이 영화가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하고, 어떤 장면은 유혈이 낭자한 액션 영화이며, 비극적 가족 드라마의 느낌을 줄 때도 있다. 대사는 그 내용과 어조에서 퍽 비현실적이며. 음악은 장면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언밸런스 효과를 낸다.
영화의 ‘사물’들이 드러내는 느낌의 독특함은 <싸이보그>의 톤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앤틱’이거나 ‘팬시’인 그 사물들엔 ‘리얼리티’는 없다. 어쩌면 이것은 박찬욱 영화를 가로지르는 키워드일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는 현실 세계로부터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 기존의 영화나 아이콘으로부터 참조된 ‘텍스트에 대한 텍스트’다. 다양한 문화적(혹은 인문학적) 요소들은 그의 영화에서 굴절되고 변형되어 하나의 균질한 이야기와 이미지 덩어리로 정련된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감독 혹은 연금술사이며, 뭔가를 주장하기보다는 마술사처럼 관객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길 원한다.

<싸이보그>는 그냥 재미를 위한 영화다. 아니,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항상 그랬고 이번 영화는 그 의도가 좀더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이 영화를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어쩌면 이 영화를 박찬욱 감독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신인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싸이보그>를 보라. 꽤 신선하고 그저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장’(?) 박찬욱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이 영화는 난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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