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묻힌 ‘지식 윤리’
  • 신광영(중앙대 교수·사회학과) ()
  • 승인 2006.12.1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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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사회의 변화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은 보급된 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PC 통신을 대체하는 새로운 인터넷은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놓았고, 생각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이제 신문 매체보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뉴스와 정보를 얻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가히 신문 매체의 위기라고 불릴 정도로 종이 신문을 읽는 독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종이 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다. 활자 매체가 전달하는 제한된 뉴스와 정보보다 훨씬 다양하고, 자신의 요구에 맞는 많은 뉴스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이 요즘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의 취향에 더 맞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다양한 개인들이 만들어놓은 블로그에서 전문적인 정보도 흡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서 국제 문제나 외국 문화와 관련해 전문 연구자를 능가하는 ‘아마추어 전문가들’도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지식과 정보의 생산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던 전통적 권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음을 함의한다. 인터넷을 통해서 공유하는 지식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사회 변화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새로운 문제를 낳고 있다. 인터넷 이용이 학생들의 일상생활이 되면서 지식 윤리 문제가 떠올랐다. 인터넷을 통해서 이용하는 지식과 정보는 주로 복사와 내려받기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모든 학생들이 자료를 복사하고 또 내려받아서 정보를 활용한다. 복사와 내려받기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대의 문화 코드가 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세대는 자신들도 모르게 ‘표절’을 생활화하게 되었다.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과제를 수행한다. 복사와 내려받기를 해서 얻은 자료를 그대로 이용하거나 짜깁기해서 과제물을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자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자료를 자신의 것처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익숙해진 인터넷 문화가 대학생들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복사와 내려받기’가 낳은 부작용들

 최근 표절이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미래 세대는 표절이 습관화된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다. 최근 이러한 습관을 가진 학생들이 외국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서 똑같은 습관을 보이다가, 엄청난 시련을 겪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표절은 제적당할 수 있는 중대한 비윤리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문장 전체를 정확한 인용도 없이 자신이 쓴 것처럼 사용하는 경우, 명백한 표절로 인정되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하물며 복사와 내려받기를 통해서 통째로 다른 사람의 자료와 글을 자신의 것처럼 쓰는 경우, 퇴학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위를 받은 경우에도 학위가 취소된다. 더 나아가 지적 재산권 위반으로 형법 적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올해, 유난히 학계의 연구 윤리가 문제가 되었다. 황우석 교수 사건과 김병준 교수 사건을 계기로 한국 학계의 연구 윤리가 화제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한 문제는 미래 세대의 문제이다. 너무나 빠르게 확산되는 인터넷 문화 속에서 새로운 세대의 지식 윤리는 완전히 실종되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만연되어 있는 복사와 내려받기를 통한 글쓰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머지않아 표절 공화국이 될 것이다.

 이제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 세계 1위만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현재 새로운 세대가 지니고 있는 인터넷 문화의 문제를 직시하고, 지식 윤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연말에 떠들썩했던 한국 학계의 사건들만 되돌아볼 것이 아니라, 이미 새로운 세대의 지식 윤리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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