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장고 ‘햇볕’에 몸던지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12.18 09: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거침없는 행보로 남북 문제·여당 진로에 영향력 발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 분야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 ‘후광’이라는 아호답게, 김 전 대통령은 퇴임 뒤에 더 빛났다. 재임 기간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김 전 대통령의 평화를 향한 일관된 여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지난 한 해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당찬 걸음을 내디뎠다.

연초부터 김 전 대통령은 방북 의지를 불태웠다. 지난 1월1일 그는 동교동 자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을 권유한 만큼 건강이 좋으면 갔다 오겠다”라고 말했다. 남북장관회담과 두 차례 실무 접촉 끝에 6월27일 방북 일정이 잡히면서 2차 방북은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면서 방북은 무산되었다.

방북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 전 대통령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지난 1년 동안 열다섯 차례 강연을 했고, 내·외신 언론과는 열일곱 번 인터뷰를 가졌다. 특히 10월9일 북한 핵실험 이후 집중되었다. 청와대 오찬(10월11일), 전남대 강연(10월11일), 뉴스위크 인터뷰(10월13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10월14일), 세계지식포럼 축사(10월18일), 서울대 강연(10월19일), AP통신 인터뷰(10월21일), 목포방문(10월28~29일) 등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올해 82세, 1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는 김 전 대통령에게는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런데도 김 전 대통령은 일정을 소화했다. 이미 다른 주제로 잡힌 강연도 남북 문제로 바꾸어 진행했다. 잇단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대북 강경론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실 북한 핵실험 사태는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이 바뀔 만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마저 대북 포용 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할 만큼 회의론이 커져갔다. 웬만한 내공을 지니지 않고서는 대북 포용 정책의 지속을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럴 때 김 전 대통령이 균형추 역할을 해준 것이다.

나아가 김 전 대통령은 핵실험 사태 이전부터 미국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며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북한은 대화를 간절히 바라는데, 미국 네오콘이 마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치듯 북한을 몰아붙이고 있다”라며 북·미 직접 대화를 주장했다. 그가 이렇게 작심한 듯 직접화법으로 발언을 쏟아낸 것은 절박함 때문으로 풀이된다. “만만한 게 햇볕 정책이냐”라는 말처럼 그로서는 자신의 브랜드인 햇볕 정책이 폄하되는 것을 두고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권 주자들, 동교동행 더 분주해질 듯

이런 왕성한 활동에 자극을 받아 김영삼·김종필 씨까지 회동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3김 정치 부활’이라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강한 부정에도 정치권에서는 상황 자체가 정치 개입을 초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김 전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다. 10월9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분당이 여당의 비극이다. 산토끼를 잡으려다가 집토끼를 놓친 격이다”라며 분당 원죄론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그날 터진 북한 핵실험에 가리기는 했지만, 열린우리당 안에서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일으킨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통합신당을 염두에 둔 의원들에게 호응을 얻은 그의 발언은 나중에 통합신당론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현실적 영향력 때문이다.

지난 10월2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8년 만에 목포를 방문했다. 방명록에 이순신 장군의 글인 ‘무호남무국가’를 썼다. 그가 쓴 이 글을 빗대면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무김대중 무호남’이 유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 건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을 보더라도 그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고 전 총리는 호남에서 지지율이 높았다. 그런데 남북 문제와 관련해 김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고, 상대적으로 한나라당과 유사한 대북 정책을 주장했다. 이후 호남에서 그의 지지율이 뚝 떨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햇볕 정책에 대한 비판을 원인으로 꼽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이후 ‘식물 대통령’으로 남는 데 반해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래서 정치의 해가 시작되는 내년, 대권 주자들은 그의 후광을 받기 위해 동교동을 더 자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 외에 임기 단축 발언으로 또 한 번 파문을 일으킨 노무현 대통령, ‘오풍’에 힘입어 벼락시장이 된 오세훈 서울시장, 아파트 반값 법안을 만든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 등도 올해의 인물 후보로 거론되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