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 사후 쿠바 어디로 갈 것인가
  • 로스앤젤레스 진창욱 편집위원 ()
  • 승인 2007.01.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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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라울 집권 확실...공산주의 체제 유지할 듯

 
'마귀 할머니’가 퍼스트 레이디로 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쿠바 국민에게 불행하게도 그런 염려가 사실로 나타날 것 같다. 지난해 7월부터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제1부통령과 국방장관을 겸임하고 있는 동생 라울 카스트로(75)가 가장 강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울의 부인 빌마 에스핀 여사는 쿠바 혁명에서 주요 역할을 한 여걸이자 현재 쿠바 여성연맹 총재이며, 쿠바 공산당 정치국원이면서 중앙당 위원을 맡고 있는 거물 정치인이기도 하다. 에스핀 여사는 쿠바 국민에게는 잔소리 많고 무서운 ‘마귀 할멈’으로 통한다.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은 여든 살 생일 잔치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난해 7월 입원했고, 올해 초 장출혈 악화로 세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 경과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 직무는 첫 수술을 받기 전, 동생 라울 부통령에게 잠정 위임되었다. 이후 쿠바는 사실상 라울의 통치 아래 놓여 있다. 지난주 아바나를 방문해 카스트로를 문병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그는 생명 투쟁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카스트로의 병세가 비관적이라는 시사였다.


민주 정부 등장할 가능성 ‘희박’


카스트로 이후 쿠바의 변화 시나리오는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는 라울에 의한 형제 권력 상속, 둘째는 쿠바 군부의 정권 장악, 셋째는 민주 정부 등장이다. 이중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라울의 후계 상속이고, 가장 가능성이 작은 것은 민주 정부 등장이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영국의 BBC 방송과 더 가디언, 옵서버 등은  쿠바 내 반공산 시위와 정국 혼란 및 이로 인한 민주화 운동의 태동 가능성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 취재를 했으나 결론은 조용한 권력 승계로 모아졌다.

 
미국 의회 보고서나 AEI(아메리카 엔터프라이스 인스티튜트)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들 보고서는 그같은 ‘실망스러운’ 결과가 예상되는 것은 집권 47년 동안 이어진 카스트로의 철저한 반대파 숙청과 강력한 탄압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쿠바에는 현재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진 세력이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들어 떠오르고 있는 반 카스트로 민주화 단체는 아직 큰일을 해낼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바 군부의 정권 장악도 가능성이 크다. 라울이 ‘혁명 영웅’인 형의 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고 그로 인한 리더십 공백으로 정국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국 혼란이 격해지면 군부가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미국 의회 보고서는 이같은 군부의 전면 등장은 결국 라울의 후계 구도와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현직 국방장관으로 군부 내 최고 실력자인 라울은 군부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실권자로 올라서게 된다는 것이다.
라울은 형 카스트로와 함께 1959년 쿠바 혁명에서 핵심 역할을 한 투사였으며, 항상 형 곁에서 공산 정부를 지탱해온 쿠바 독재정권의 제2인자다. 라울은 젊은 시절 공산주의 청년 단체에 가입해 사회주의 운동에 열성적이었으며, 중남미 혁명가 체 게바라를 쿠바로 초청해 카스트로와의 역사적 만남을 주선했다.
라울의 권력 승계는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혁명의 연장으로 해석된다. 쿠바 전문가들은 라울에게는 카스트로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쿠바에 대변혁을 가져올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가 경제 개혁에 관심을 갖는 것에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라울은 1990년대 옛 소련이 몰락하면서 불어닥친 쿠바의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시장경제 제도 도입에 앞장섰다. 당시 쿠바 국가 재정 3분의 1을 지탱해준 동지이자 형제국이었던 옛 소련으로부터 지원이 갑작스레 끊어지자 쿠바 전국이 기아 상태에 이르렀다. 라울은 국민의 식량과 생필품 공급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카스트로에게 건의해 부분적 시장경제 제도 도입을 시도했다.
라울은 중국식 경제 개혁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방식이 쿠바의 공산주의 체제 유지와 경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믿는 것이다. 라울은 중국을 방문해 벤치마킹하고 쿠바의 경제난을 해결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랜드 연구소 등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라울의 이같은 시도도 최근 들어 시들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 체제 유지라는 내부 반발에 라울이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라울 집권 원하지 않는 미국의 선택은?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 장래는 이같은 쿠바 국내 문제가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나 쿠바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미국의 태도도 주요 변수이다. 미국은 카스트로 형제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라울이 권력을 승계하는 한 미국과 쿠바 간에 대화가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마이애미 등 플로리다 주에 집중한, 100만명에 달하는 쿠바 난민과 난민 단체들은 미국 정부가 카스트로 형제를 돕는 어떠한 일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피해 조국을 버린 쿠바인들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쿠바 난민 출신의 단합된 표의 위력을 잘 알고 있어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2004년부터 쿠바 민주화 방안을 마련하고 카스트로 이후에 대비하고 있다. 미국의 기본 입장은 아바나에 자유 선거에 의한 자유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다양한 방법의 쿠바 개입 또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놓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쿠바 민주화 전환 방안 마지막 항에 8천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놓았다. 그러나 이 예산의 사용 방법이나 사용 이유는 비밀에 부쳐져 있다. 쿠바 정보 당국은 이를 미국의 제2의 피그스 만 작전, 즉 대쿠바 무력 침공 계획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피그스 만 작전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난민을 앞세워 시도했던 쿠바 침공 작전을 말한다. 그러나 카스트로가 지금 당장 사망하더라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손발이 묶여 있는 미국이 금방 피그스 만으로 시선을 돌릴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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