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 누구 위한 애드벌룬인가
  • 오윤환(자유기고가) ()
  • 승인 2007.03.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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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발언 '속뜻' 놓고 설왕설래...한명숙 총리, 유시민 장관에 '눈길'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정치 대통령’이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눈치다. 지난 2월27일 인터넷 매체와의 공동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를 좀 아는 사람이 대통령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마치 자신은 정치력이 부족한 대통령이기 때문에 다음에는 ‘정치 대통령’이 나왔으면 하고 여기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노대통령만큼 정치 성향이 짙은 대통령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치 9단’이라지만, 정치 9단을 뛰어넘는 노대통령의 현란한 정치 공학도 만만치 않다. 자신이 열린우리당 지지를 공개 호소하다 탄핵 도마에 오른 첫 대통령이면서도 탄핵 사태 직후 총선에서 단번에 국회 의석을 역전시킨 마술과 같은 능력, 각료가 국회에서 불신임당해도 버티는 배짱이 프로 정치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나라당을 상대로 ‘대연정’을 불쑥 제의한 것과, 임기를 1년 앞두고 대통령 연임제 개헌 카드를 꺼내든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노대통령이 스스로 정치력이 부족한 양 “다음 대통령은 정치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했으니 다소 어리둥절하다. 노대통령이 심중에 둔 차기 대통령 자격을 덜컥 털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국민에게 ‘정치 대통령’의 등장을 예고한 뒤 마음속에 두고 있는 ‘정치 대통령 후보’를 선보이겠다는 생각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경제’를 앞세워 높은 지지도로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과, 여권이 목을 매는 정운찬 전 총장에 대한 거부감의 표출일 수도 있다.


유시민 장관에게 당적 보유 허용한 까닭


 
그렇다면 ‘정치 대통령감’은 누구일까? 한나라당에 이명박 전 시장,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지사가 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정동영 전 당의장, 김근태 전 당의장, 한명숙 총리, 김혁규 의원,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정치 대통령감을 염두에 두었다면 여권 인물이거나 그 주변 인사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에 대해 내각에 입각시켜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라고 토로했다. 김두관 전 장관과 김혁규 의원은 영남 출신이지만 경륜이 짧거나, 한나라당 탈당으로 철새 시비가 있다. 본선에 이들이 나가면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약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남는 것은 한총리와 유장관 두 명이다. 한총리는 최근 부쩍 후보감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대통령이 “최상의 총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 ‘통합형 후보’라는 칭찬이 모아진다. 그러나 한총리는 한나라당 박 전 대표가 후보가 되면 그 대항마의 성격이 강하다. 박 전 대표가 유신 시절 청와대에서 호의호식한 반면, 한총리와 남편은 감옥에 드나들며 고통받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유장관의 경우에는 상당수 국민이 “유장관이 대선 후보라는 것이 상상이나 되느냐” 하는 반응이다. 보건복지부장관에 임명될 때, 열린우리당 안에서 들끓은 반발만으로도 그의 대중적 지지 기반은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노대통령이 정치 대통령을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정치를 좀 잘 알고, 그리고 가치 지향이 분명하고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부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말은 유장관에게 딱 들어맞는다. 개혁 정당을 만들어 원내 진출에 성공했고, 대선 때는 마이너리티 후보였던 노대통령을 지원한 일등 공신이고, 열린우리당 개혁을 주창했으며, 지금 보건복지부장관으로 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을 개혁하는 ‘가치 지향이 분명하고 정책적 대안이 분명한 사람’이 바로 유장관 아니냐는 얘기다.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를 놓고 행자부장관을 모질게 몰아붙이는 것도 유장관이다. 개혁 의지 과시가 그의 장기다. 적어도 노대통령 눈에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더구나 노대통령은 한총리를 당으로 돌려보내면서도 유장관과 이재정 통일부장관, 이상수 노동부장관 등에게는 당적 보유를 허용했다. 누가 보아도 유장관에 대한 배려가 돋보인다. 유장관과 열린우리당 간의 ‘끈’을 이어주려는 배려이다. 반면 박원순 변호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등을 ‘정치 대통령감’으로 보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자신이 미는 후보,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의지 뚜렷


노대통령의 의중이 이렇다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후보들은 헛물을 켜야 할지 모른다. 노대통령이 비록 열린우리당은 탈당했지만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를 무시한 채, 열린우리당과의 연결 고리를 부여잡고 재집권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를 화두로 하는 이명박 전 시장과 정운찬 전 총장은 아예 눈 밖에 났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이 전 시장에 대해서는 “한반도 대운하가 우리 현실에 맞는 것이냐. 경인운하는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당하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그것과 다르다”라고 일축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를 함께 거론하며 “역사가 퇴행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스럽다”라고도 했다. 손 전 지사는 “남의 양어장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정치인”으로 노대통령에 의해 규정지어졌다.
노대통령이 ‘정치 대통령’으로 누구를 점지할지 애매하지만 자신이 미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만은 강해 보인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면서 던진 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대통령은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져, (열린우리당에서) 시끄러워서 당적을 정리한다”라고 했다. 원치 않았던 탈당이라는 것이다. 또 탈당도 아니고 ‘당적 정리’라고 표현했다.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데 억지로 떠밀려서 나간다는 투다. 여당을 탈당했으면서도 노대통령은 중립 내각 요구에 “중립 내각은 아닌 척하는 시대, 공작으로 정치하던 시대의 유산이다. 초당적 국정 운영에 대해 옛날부터 거부감을 갖고 있다. 왜 우리만 없는 말을 만들어 자꾸 ‘초당적으로 하라’ 하느냐”라고 반발했다. 뒤집어 말하면 대선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십분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어느 외국에서도 초당적 정치 행위를 말하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유세도 하고 그런다”라는 말에서는 스스로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는 투지가 읽힌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했지만 노대통령이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에서, 나아가 대선에서 손을 뗄 것이라고 누가 보겠는가. 그래도 이해가 쉽지 않다면 “당적 정리는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성공하기 바란다. 언젠가 여러분과 다시 함께 어깨를 같이하게 되기를 기대한다”라는 표현을 되새겨보라.


‘유시민 후보’에 당내 거부감 적지 않아


열린우리당에 대한 노대통령의 미련과 애착은 당적 정리에 즈음해 당원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저는 비록 지금 당적을 정리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성공을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애초에 가졌던 국민 통합과 새로운 정치라는 창당 정신이 온전히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당원 여러분께서 치열하게 노력해주실 것으로 믿습니다’라는 내용이다. 대통령이 특정 정당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말한 것이다. 노대통령의 애절한 집착이 더 이상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노대통령의 ‘정치 대통령 만들기’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에서부터 노대통령의 집요한 스토킹을 떨쳐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광원 의원은 “노대통령 탈당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라고 했다. 그의 의심은 친노 진영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계획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당내 비노-반노 의원 사이에서는 “노대통령은 탈당하되 유시민 등 친노 핵심들은 당에 두었다가 남북 관계 급진전 등으로 지지율이 회복되면 유장관 등을 대선 주자로 투입해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을 보인다.
그래서 나오는 것이 제2차 열린우리당 집단 탈당이다. 친노 세력들이 열린우리당을 기반으로 재집권을 노릴 것이고, 그렇다면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들이다. 탈당한 천정배 의원 등이 “곧 집단 추가 탈당이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 것은 노대통령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몸짓으로 보인다. 한광원 의원이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이들이 한나라당을 99% 집권시켜주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아닌가”라고 물은 것은 유장관의 ‘정치 대통령 후보’ 탈바꿈에 대한 단호한 거부감이다.
노대통령의 ‘정치 대통령’ 만들기는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노대통령이 당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통령이 차기 선거에서 여당 후보에 도움이 될 만큼 국민의 지지가 높아야 하는데 저는 역량이 부족하여 그렇지 못했다’라고 한계를 자인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노대통령은 자기 스스로도 재집권에 대한 갈망과 어느 정도의 자신감, 그러나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자괴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혼합된 상태일지 모른다. 열린우리당을 떠나면서도 “앞으로 국민들에게도 쓴소리하겠다”라거나 대통령의 임기 후 활동에 대해 “나는 대통령을 그만두고 난 뒤 평생을 내 행위의 정당성을 평가하고, 변론할 것은 변론하고, 고백할 것은 고백할 것”이라고 한 것은 노대통령 특유의 다층적인 심리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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