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시대에 말 거는 '미친' 선조들
  • 조철(출판 기획자) ()
  • 승인 2007.03.1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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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조선 후기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 변동 고찰

 
3년 전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 하여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의 4자성어를 앞세우고 ‘미친 놈’ 바람을 일으켰던 국문학자 정민 교수. 그가 다시 한번 조선 시대의 ‘미친 놈’들을 연구한 결과물을 내고 현대를 사는 한국인들에게 시대를 뛰어넘는 사유를 하도록 권한다.
3년 전의 저작 <미쳐야 미친다>는 ‘벽(癖)’에 들린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낸 책은 18세기 조선의 문화를 고찰하면서 당시의 지식인들에게서 발견한 지식 패러다임의 변화와 문화 변동을 다룬 한 권의 문화사다. 정교수는 10년을 연구해온 내용을 재배치하고 오류를 잡아 정리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정의한다. 그 연구는 옛것을 바로 아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재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데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정교수는 18세기를 한반도 문화사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시기라고 말한다. 대중의 언어로 고전의 사유를 부활시킨 작품으로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게 된 정교수가 지난 10여 년간 박지원·이덕무·박제가 등을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그는 이 시기를 ‘발견의 시대’로 규정한다. 지식·자아·글쓰기·감각·취미 등이 새롭게 구성된 ‘새로운 지식’의 발견 시대였다는 것이다.
중국을 통해 들어온 구미의 과학 문명은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을 들쑤셨다. 세계화·정보화 시대라 말하는 지금과 대비시켜 볼 수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 정교수는 엄청난 정보가 소나기 퍼붓듯 쏟아진 현상에 마주한 조선의 지식인들의 삶을 파헤쳤다.
정보 처리 방식과 정보의 유용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바뀐 점에 주목한 정교수는 당시의 물적 토대 변화와 맞물려 새로이 출현한 지식인들의 행적을 뒤쫓았다.


과거와 현재 ‘정보화 시대’ 닮은꼴


 
18세기는 조선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특별한 시기였다. 유럽의 계몽주의 학자들이 중세의 억압에서 벗어나 지식을 재배치하고 백과전서 같은 저작에 몰입하고 있을 때, 조선의 지식인들도 주자학 일변의 문화 흐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경영하려고 애썼다.
18세기 중반 이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생활 패턴도 주목할 만하게 변화했다. 외부 환경의 변화는 제도의 모순과 갈등하는 지식인들에게 의식의 전환을 주문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문화 환경이 변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관이 등장하는데, 이 시기 지식인들의 의식을 강렬하게 지배한 변화의 축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타난다. 첫째, ‘도(道)’를 추구하던 가치 지향이 ‘진실’을 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둘째, ‘옛날’로 향하던 가치 지향이 ‘지금’으로 선회했다. 추구해야 할 이상적 가치가 과거에 있다고 믿었던 퇴행적 역사관은 힘을 잃었다. 셋째, ‘저기’에 대한 관심이 ‘여기’를 향한 관심으로 바뀌었다. 즉 중국을 기준으로 삼던 사고는 조선 중심의 사고로 변모한다. 이러한 변화는 겉으로 보아 사소하지만 의미는 크다.
사람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해간 반면 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더 보수화되어갔다. 제도는 새로운 가치관을 포용할 여유가 없었고, 지식인들은 변화를 포용하지 못하는 제도의 억압을 답답해했다. 이 시기 지식인들에게서 감지되는 자의식의 변화는 이러한 갈등의 결과인 것이다.
정쟁으로 분화된 지식인 집단은 내적 결속을 다지며 문화적 교류를 강화했고, 당시 활발한 도시 문화를 배경으로 청나라 문물의 수입과 출판 문화 보급 등 제반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흥 소비적 형태를 띤 문화 활동이 활성화되었고, 금기시했던 골동품·서화 수집이나 원예 같은 것들에 심취하는 애호가들이 늘었다. 각종 문집 속에 수록된 원예 관련 언급이나 기록들을 보면 이 시기에 이러한 분위기가 얼마나 널리 확산되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다.
편집광적인 정리벽과 종류를 가리지 않는 수집벽, 사소한 사물에까지 미친 애호벽은 동지적 결속 아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정조가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사정의 칼날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으리만큼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 격차는 크게 벌어져, 지방의 지식인들에게 서울 문화계의 이런 풍조는 그저 해괴한 망국의 조짐으로밖에 비쳐지지 않았다.
정교수의 저작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라면 18세기 ‘벽(癖)’ 예찬론에 눈길이 갈 것이다. 일종의 마니아 예찬론이다. 무언가에 미친다는 뜻의 ‘벽’이라는 말은 이 시기 지식인의 한 경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박제가는 “벽이 없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또 ‘치(癡)’, 즉 바보 멍청이를 자처하고 나서는 경향도 생겨났다. 관습적 기준에서 볼 때 비정상적으로 미친 ‘벽’이 사회적 통념으로는 ‘치’로 인식되었다.
이들은 미쳤다거나 바보 같다는 말을 오히려 명예롭게 여겼다. 미치지도 못하고 그럭저럭 욕 안 먹고 사는 것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근대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지식·정보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꾼 그들로서는 삶의 목표 또한 궤도 수정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 책에는 이전의 저작 <미쳐야 미친다> 등과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또 한번 우려먹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교수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듯 계속되는 연구의 선상에서 재배치하고 첨삭한 것으로 보아주는 것이 옳겠다. 


<동다기> 전문 등 최초 발굴해 수록


이 책에는 새로 발굴한 자료도 소개하고 있다. 한국 원예 문화사에서 손꼽을 만한 저작인 <화암수록(花庵髓錄)>의 작자를 유박으로 확정하고 그 자료 가치를 소개한다. 또한 일부 내용만 전해지던 <동다기(東茶記)> <기다(記茶)> 전문을 발굴해 그 내용과 함께 작자가 이덕리(李德履)임을 최초로 밝혔다. <동다기>는 차 문화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소중한 자료이다.
이 책에 소개된 18세기 지식인들의 행적은 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이 18세기 조선 지식인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는 그때의 ‘지금 여기’와 현재의 ‘지금 여기’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 닮은꼴을 비교해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난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당시 지식인들의 ‘실용’적인 면을 변호하면서, 단순히 고전이나 오래된 유물을 들춰내 분석한 내용을 넘어선다. 책 중간 중간 지은이는 과거 지식인들의 행태에서 현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 것인지 같이 고민하고 반성하자고 권한다. 꼭 집어 말을 하지 않아도 당시 지식인들의 열정에서 무엇을 깨쳐야 할지 알아채게 만드는 것은 정교수의 재능이 아닐까? 책은 그래서 고전처럼 생각하고 펼쳐든 일반인조차 18세기의 이야기에 매료되게 한다. 고전을 왜 살펴야 하는지,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이 책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하면서도 책에서 강조한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선조의 말이 귓가에 맴돌도록.
“그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치기나 해보았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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