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이냐, 빅딜이냐 '잔인한 여름'의 승부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3.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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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빅3, 경선 시기와 투표인 수 놓고 '양보 없는 전쟁'

 

한나라당이 ‘6월’과 ‘9월’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캠프들도 출렁이고 있다. 대선 후보 경선 시기를 6월 또는 7월로 할 것이냐, 아니면 9월로 할 것이냐를 놓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이 한 치 양보도 없이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나라당 유력 주자에게 맞설 여권 후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나라당 후보=대통령 당선’이라는 분위기가 짙다. 심지어 한나라당이 분열되더라도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당선될 것이라는 기가 막힌 조사 결과도 있다. 한나라당 유력 주자들이 각자 유리한 경선 시기와 방식에 집착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마치 당을 깰 것같이 으르렁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월 대 9월, 4만명 대 20만명 맞서


따라서 후보 경선 시기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한나라당은 6월과 9월 사이 당이 쪼개지는 빅뱅의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경선 룰 때문에 한나라당은 ‘만년 야당’의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대선 후보 경선 시기에 관한 한나라당 당규는 이미 정해져 있다. 2007년 6월, 4만명 대의원 등의 투표를 거쳐 대선 후보를 뽑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박근혜 대표 시절, 대선 유력 주자들이 동의한 가운데 합의된 내용이다. 물론 당시에도 논란은 있었다. 박 전 대표가 현직 대표로 원내 우위 구조를 이용하기 위해 ‘6월 조기 경선’을 밀어붙였다는 것이 당시 이 전 시장측의 불만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이 전 시장이 부동의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는 거의 모든 조사에서 2위인 박 전 대표를 더블스코어 차이로 누르고 있다. 여권 후보 누구와 가상 대결을 벌여도 ‘어린애 손목 비틀기’다. 따라서 지지율이 요동치기 전에 후보로 등극해야 한다. 그래야 12월 대선까지 완주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찬씨 등이 거칠게 자신의 과거를 캐는 것도 부담스럽다. 후보 검증 파문 이후 지지도가 하락하는 등 조정 국면에 접어든 것도 불안하다. 그래서 ‘조기 경선’이 이 전 시장의 마지노선이다. 지지율이 높을 때 후보 자리를 차지하자는 계산이다.
박 전 대표측도 다급하기는 마찬가지다. 당 대표였을 때만 해도 지금과 달랐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직후 실시된 국회의원 총선에서 1백21석의 의석을 확보해냈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한나라당을 지켰다. 대표로 있는 동안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선 등에서 전승의 전과를 거두었다. 한나라당 현역 의원과 대의원, 당원들이 박 전 대표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선출직 치고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주 테러를 당한 뒤 보였던 의연한 태도와 위기 관리 능력, 그리고 대전시장 선거에서 이끌어낸 대역전극은 박 전 대표의 주가를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
이때만 해도 이 전 시장은 박 전 대표 지지율을 한참 올려다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 박 전 대표의 실책이다. 대선 후보 경선의 공정 관리를 위해 당 대표 자리를 내놓음과 동시에 얼굴 상처 치료를 위한 휴식이 길어지면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장 경선을 실시하면 이 전 시장에게 더블스코어로 참패할지 모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널려 있다.

 
‘당심’ 조사에서 박 전 대표가 앞서기도


 
최근에는 대의원들의 지지 성향을 드러내는 ‘당심’도 이 전 시장 쪽으로 기울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여러 리서치 기관에서 나왔다. 다급한 김에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효과보다는 ‘폭로의 배후에 박 전 대표가 있다’는 의심만 샀다. 이 지경에 ‘조기 경선’을 수용하기가 힘든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간에 복잡한 함수가 생겨났다. 손학규 전 지사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일단 박 전 대표는 ‘현행 당론 고수’를 표면에 내세운다. 당원 50%와 일반 국민 50%의 투표로 후보를 뽑으면 ‘당심에서 자신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일보와 미디어리서치의 3월8~10일 조사 결과를 보자. ‘가상 한나라당 후보 경선’ 결과 민심에서는 이 전 시장이 22% 포인트 차로 크게 앞섰고, 대의원(당심) 투표 성향에서는 접전 속에서 박 전 대표가 1.4% 포인트 차로 이 전 시장을 눌렀다. 박 전 대표가 ‘위기 탈출’의 기회를 ‘당심’에서 찾는 배경이 이런 구도에 있다. ‘6월, 4만명 투표인단’에 의한 후보 선출을 주장하는 박 전 대표의 계산은 그가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인 까닭도 있지만, 해볼 만하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4만명 투표인단에는 절반이 당원이다. 일반 국민 투표인단의 투표율은 당원들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당원만 확실하게 묶어두면 해볼 만하다고 믿는 근거이다. 만약 이 전 시장의 주장대로 투표인단을 확대하려면 경선 시기를 아예 9월로 미루자는 복안을 내놓고 있다. 불리한 민심을 역전시키기 위한 시간을 벌자는 의도다.
이 전 시장측의 입장은 박 전 대표측의 주장을 뒤집으면 읽힌다. 박 전 대표에게 호의적인 투표인단에 일반 국민을 대거 참여시켜 농도를 희석시키자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마실 꿀에 물을 섞어 맛을 떨어뜨리자는 계산이다. “경선 시기를 늦추자”라고 아우성쳤던 이 전 시장측의 지난해 태도와 비교하면 현재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그 배경에는 ‘지지율’이라는 마약이 도사리고 있다.
아무리 대권에 눈이 멀었다 하더라도, 먼저 당을 깼다는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해 절충하고 협상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한나라당 경선준비위원회(위원장 김수한 전 국회의장)는 당초 ‘9월, 20만명’ 선으로 중재안의 가닥을 잡았었다. 경선을 늦추기를 바라는 박 전 대표와 손 전 지사측의 입장과, 대의원을 확대하자는 이 전 시장측의 주장을 절충한 것이다.
그러자 이 전 시장측이 발끈하고 나섰다. 그래서 나온 것이 ‘7월, 20만명’이라는 기묘한 타협안이다. 경선준비위원들이 투표한 결과 6 대 5로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 전 대표와 손 전 지사가 들고 일어났다. 박 전 대표는 “대선 주자의 유불리를 따져 당헌·당규를 고치려는 접근 방식은 공당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특정 후보가) 공천을 미끼로 줄을 세운다는 얘기가 들린다. 대선을 앞두고 구태로 돌아가는 조짐이 있어서도 안 되고, 용납도 하지 않겠다”라고 공격했다.


박근혜·손학규, ‘7월 20만명’ 절충안에 발끈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이 전 시장이 소속 의원들은 물론 경선준비위원들까지 줄을 세웠다는 식으로 들린다. 손 전 지사는 아예 경선준비위 활동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후보 경선 보이콧을 예고한 것과 통한다. 뿐만 아니다. 손 전 지사는 김종인 의원이 이끄는 외곽 모임에 참석했다. 이 모임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시민 후보’로 띄우기 위한 조직이다. 손 전 지사가 당 밖으로 한 발짝 나간 모양새다. 손 전 지사는 원희룡·고진화 의원과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경선준비위원회의 경선 방식 논란은 경준위에 대한 공정성 시비에 기름을 부었다. 경선 시기 절충에 앞서 경준위는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 시비를 ‘무혐의’로 결론내렸다.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위증 교사와 범인 해외 도피를 위한 거액 지원 의혹 등과 관련한 정인봉 변호사와 김유택씨의 폭로에 대해 이 전 시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 때문에 경준위가 대안으로 제시한 ‘7월, 20만명’은 이 전 시장의 입김에 굴복한 것이라는 손가락질이 끊이지 않는다. 김수한 위원장 등이 이 전 시장 편에 가세했다는 등 이 전 시장측 사람들의 경준위 침투 의혹까지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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