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03 10: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조 출연자들, 저임금·고위험·인격 무시 등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엑스트라’로 동원되는 보조 출연자들의 불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촬영 도중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반면 이에 대한 예방책이 없고 출연에 대한 보수도 적절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보조 출연자 문제는 지난 2월 KBS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에 피실험자로 출연했던 김 아무개씨(55)가 촬영 다음날 갑자기 사망하면서 크게 불거졌다. 사인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씨의 유가족은 KBS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김씨 유가족의 변호를 맡은 김형동 한국노총 변호사는 “지난 3월27일, KBS측에 김씨의 사망으로 인한 손해배상금 9천여 만원을 지불해달라고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라고 밝혔다.
김변호사는 “김씨를 KBS에 소개해준 보조 출연자 소개업체인 ‘한국예술’측과 KBS를 모두 상대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려 했으나, 단순히 소개시켜준 것과 사망 원인 간의 인과 관계를 유추해볼 때 한국예술측에 소송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단 아래 KBS측에만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말했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진은 김씨가 KBS 출연 당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김씨의 사망과 프로그램 실험과는 직접적 상관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제작진이 공개한 김씨의 최근 촬영일지에 따르면, 김씨는 1월5일부터 <생로병사의 비밀> 촬영 전날인 2월12일까지 열아홉 차례 MBC 드라마 <주몽>에 보조 출연했다. 김씨는 2월13일 오후 6시부터 14일 오전 11시까지 밤샘 촬영을 했으며, 촬영 종료 다음날인 15일 서울 여의도 MBC 본사 로비에서 쓰러져 숨졌다.
방송 관계자들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보다도 드라마 촬영장에서 사고가 더욱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조 출연자가 많이 동원되는 사극은 전투 장면 등 위험한 상황이 많아 사고 발생 확률이 높다.
얼마 전 종영한 <주몽>에 보조 출연을 했다는 오명환씨(53·가명)는 “<주몽>은 마지막 촬영 때까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촬영 날에는 비가 왔는데 들판에서 전투 장면을 촬영하던 중에 옆의 보조 출연자가 넘어지면서 다쳤다. 그는 허리를 다쳐 몸을 가누지 못했는데도 제작진은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1km나 떨어진 세트장으로 이동시키라고만 지시했다. 다친 사람을 차에 태워주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씨는 “당시 부상자는 혼자 걷지도 못해 동료들이 부축해 옮겼는데도 연방 괜찮다라는 말만 했다. 그는 소개업체에 찍혀 그나마 일자리를 잃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라고 덧붙였다.
보조 출연자들이 다치거나 죽게 되는 사고가 발생해도 적절한 치료비나 보상금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극 프로그램의 보조 출연을 두 달 정도 하다가 그만두었다는 문 아무개씨는 “촬영을 하다 보면 질서 유지를 위해 통제가 필요하겠지만, 새파랗게 젊은 진행요원이 50대 보조 출연자에게 반말과 욕설을 퍼붓기 일쑤이다. 심하다 싶어 따지면 ‘몇 지부에서 나왔어?’라면서 면전에 대고 망신을 준다”라고 말했다.
‘지부’란 보조 출연자가 속한 인력 소개업체가 구분해놓은 팀 단위를 말한다. 회사마다 1~10개 지부로 나누어지는데 1개 지부에는 보조 출연자가 2백여 명 소속된다.
산이나 들에서 진행되는 야외 촬영에 나가본 보조 출연자들은 “용변 볼 장소가 마땅치 않아 가장 힘들다. 세트장은 큰돈을 들여 지으면서 보조 출연자들이 사용할 간이 화장실조차 준비하지 않는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보조 출연자들은 “평일 하루 기본 일당이 3만7천원 정도인데 촬영 전과 후에 모여서 차로 이동하는 5~10시간은 제외된다”라고 말했다.
보조 출연자들은 “식대는 일당과 별도로 4천5백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하지만 촬영 현장의 형편상 주먹밥이나 김밥으로 때우는 경우가 흔해 우리들로서는 불만스러울 때가 많다”라고 불평했다.
지방 촬영을 갈 때는 보통 촬영 전날 밤 11시30분께 모여서 관광버스로 현장까지 이동한 후 새벽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주역들의 스케줄에 의해 촬영 계획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하루 중 유일한 한 끼 식사를 4~5시가 되어서야 하게 되는 일도 잦다.
‘쥐꼬리 출연료’도 다 받지 못하고…
이민우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1시간 최저 임금이 3천4백80원이다. 그런데 TV 방송의 보조 출연자들이 받는 금액은 1시간당 평균 3천83원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라고 지적했다. 보조 출연자들은 또 소개업체들이 방송국으로부터 돈을 받아 보조 출연자들에게 지급하는 과정에서 과다한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아래 표 참조).
보조 출연자들은 “최종 지급되는 일당에서 다시 몇 천원을 떼어내는 업체마저 있다. 횡포가 너무 심하다”라고 했다.
보조 출연자들의 또 다른 불만은 소개업체들이 출연료를 바로 지급하지 않고 지급 날짜를 미룬다는 것이다. 보통 보조 출연자의 출연료는 두 달 뒤에나 정산을 해준다. 월초에 출연한 사람은 두 달 후에나 받게 되는 것이다. 생계형 보조 출연자가 힘겨운 이유이다.
보조 출연자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십중팔구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말이 인력 소개업체 관계자들로부터 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열악한 환경의 한편으로 보조 출연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보조 출연자들의 태도도 문제이다. 하다가 힘들면 떠나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보편화되어 있다. 
지난해에는 보조출연자노동조합(위원장 문계순)이 결성되었다. 조합측은 얼마 전 보조 출연자 파견업체 가운데 ‘빅3’라고 할 수 있는 한국예술·태양기획·월드캐스팅 등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파견 근로자인 보조 출연자들의 권익과 근로 조건 개선을 위해 교섭을 벌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 군데 중 어느 곳도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다.
문계순 위원장은 “인력 공급업체들이 교섭을 회피한다면 불법 노동 행위로 간주해 고발 등 조처를 할 것이다. 보조 출연자 김씨 사망을 계기로 보조 출연자들의 피해 사례 등을 조사해 개선을 꾀하겠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