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덪에 갇힌 17인의 몸부림
  • JES 제공 ()
  • 승인 2007.04.0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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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는 관객과 기 싸움을 벌인다. 시간적·공간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매체 속성상 ‘본전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웃음과 감동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간판도 서둘러 내리게 된다. 관객과의 기 싸움에서 패하는 것이다. 반면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이나 허를 찌르는 상황이 나오면 관객을 압도하며 수작이라는 평을 듣는다.
<극락도 살인사건>(김한민 감독) 같은 미스터리 추리극이라면 이같은 상황은 더 흥미로워진다. 기획 단계부터 이미 관객과의 두뇌 싸움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극락도 살인사건>은 몇 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마지막 반전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매력 포인트가 부족한 탓이다. 각 신을 연결하는 이음새도 헐거운 편이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승부처라 할 수 있는,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팽팽함이 아쉽다.
단편 <갈치괴담>으로 눈길을 끈 김한민 감독은 매 신에서는 정교한 연출을 시도했지만 다음 장면, 혹은 그 다음 장면과의 연결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신인의 한계를 드러냈다. 리드미컬한 속도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 정도의 계산은 했어야 하지 않을까.


조연들의 다양한 캐릭터가 관전 포인트


 
고립과 단절을 상징하는 키워드인 섬은 추리극이라는 장르와 궁합이 잘 맞는 장소다. 이곳의 섬 주민 17명이 잇따라 실종되고, 끔찍한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된다는 설정 역시 흥미진진하다. 가깝게는 차승원·박용우 주연 <혈의 누>와 흡사하고, 멀리는 추리소설의 대명사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이 연상된다.
마라토너 임춘애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던 1986년. 실종 사건 수사를 위해 두 형사가 극락도에 오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그곳. 김노인의 칠순 잔치 다음날, 송전 기사 두 명의 시체가 발견된다. 화투판에 있던 덕수(권명환)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지만 살인은 끊이지 않고 평화롭던 마을은 순식간에 무서운 섬으로 변한다.
섬 주민 전원이 용의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는 상황. 보건소장 제우성(박해일)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살인 사건 퍼즐을 맞추어보지만 범인은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는다.
<극락도 살인사건>의 관전 포인트는 주연들보다 김인문·최주봉·성지루·안내상 등 마을 주민으로 나온 조연들의 다양한 캐릭터에 있다. 순박해 보이는 그들이 실은 험악한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 본심을 드러내게 된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저마다 음모를 갖고 있는 주민 중 특히 포상에 눈이 먼 이장 역의 ‘쿠웨이트 박’ 최주봉은 중견 배우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반면 비밀의 키를 쥔 여선생 장귀남 역의 박솔미는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좋은 배역을 보란 듯 소화하지 못할 때 영화는 외줄을 타게 된다.
연쇄 살인은 극적 갈등이 고조되는 점층법 효과를 노리는 대표적인 설정. 하지만 장면이 전환되는 지점마다 흐름이 툭툭 끊기다 보니 줄거리만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이다.
감독이 어릴 때 들었다는 12명의 주민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는 섬 이야기가 모티프가 되었다. 경남 통영시 욕지도에서 촬영할 때 실족사한 여행객 시체가 발견되어 배우와 스태프들이 간단한 제를 올리며 명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4월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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