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부르는 감리, 바로 세워라"
  • 유근원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4.23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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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감리자 횡포 지나치다" 불만의 소리 높아...일부는 공사비 편취도

 

건설 현장이 시끄럽다. ‘건설 현장의 파수꾼’인 감리자의 횡포가 지나치다는 시공사의 불만 때문이다. 감리자가 시공사로부터 ‘잘 봐달라’는 조건으로 금품을 받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 되었다. 감리자가 현장소장과 결탁해 수십 억원을 편취한 비리도 드러났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 건축 현장. 현장소장 정 아무개씨(47)와 감리자 이 아무개씨(62) 사이에 논쟁이 오갔다. 철근을 결속하는 과정에서 이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교차 부위는 빠짐없이 묶어야 한다는 감리자의 요구에 대해 현장소장은 걸러 묶어도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결국 현장소장은 감리자의 요구를 따랐다. 감리자의 지시를 듣지 않으면 공사가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장소장 정씨는 “도면상 철근은 단단히 결속하라고만 되어 있다. 정확히 어떻게 묶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감리자가 현장에서 판단하기 나름이다. 감리자에게 ‘기름칠’을 안 해주면 이런 문제는 공사 기간 내내 생긴다”라고 말했다.
감리 제도는 지난 1994년 정부가 부실 공사를 추방할 목적으로 도입했다. 성수대교 붕괴와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겪으면서 이 제도가 굳혀졌다. 그 후 13년이 지났어도 감리자의 권한을 마땅히 통제하는 적절한 방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변질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난해까지 현장소장을 지낸 김영출씨(54)는 “공사하면서 땅을 파다 보면 암반이 나오거나 민원이 발생해 수억원 이상 깨질 수 있다. 1백만∼2백만원만 쓰면 감리자의 동의를 얻고 설계를 바꿔 쉽게 처리할 수 있는데 왜 쓰지 않겠느냐. 기초 콘크리트 타설 작업같이 중요한 공종이 있는 날은 감리자와 현장소장이 함께 소주를 마시러 가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지방의 한 감리회사에 다니는 복민수씨(58·가명)는 “감리회사 선정을 시·도·구청에서 입찰제로 하면서부터 건설 현장이 좀더 투명해졌다. 하지만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감리회사를 선정하다 보니 10년 사이 감리자 월급이 낮아졌다. 10년 전에는 감리자의 하루 인건비가 25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리단장 월급이 2백만원 아래인 회사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건설감리협회측은 “감리회사의 평균 월급은 알 수 없다. 공공 건설 감리를 맡고 있는 우리 협회 회원사의 평균 일급은 수석 감리자가 25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민간 건설 감리자들의 월급은 파악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건설 업체 일각에서는 감리자가 현장에서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는 것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들은 “다른 공정은 자재 사용량이 뻔해서 쉽지 않지만 기초 공사의 경우 감리자와 현장소장이 결탁해 자재 구입비를 부풀려 신고하고 공사 금액도 편취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15일. 강원지방경찰청 수사과는 건설 업체 현장소장 이 아무개씨(50)와 감리자 정 아무개씨(56)를 구속했다. 국도 38호선 삼척~미로 구간 확·포장 공사를 하면서 공사비를 빼돌린 혐의 때문이다. 국도 공사 과정에서 정씨와 이씨는 서로 짜고 국토관리청을 속여 공사비 50억원을 빼돌렸다. 이들은 지난 1999년 4월부터 당초 설계된 것보다 4분의 1을 축소해 공사한 뒤 9차례에 걸쳐 검측 조서와 기성 조사 결과를 허위로 작성했다.


“분양 원가 높이는 요인” 주장도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측에 접수된 제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국가에서 발주한 공사의 경우 감사원이 정기 감사를 하거나 민관 합동 건설감리검수단을 통해 해당 감리회사를 감시·감독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민간 공사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민간 건설 분야에서 감리회사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존재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사 시작 전에 관할 시·도지사는 입찰을 통해 감리회사를 지정한다. 한 번 선정된 감리회사는 어떤 제재도 받지 않는다. 만약에 감리회사가 사소한 규정을 따져 물어 공사를 중단시키면 시공사는 꼼짝없이 공사를 멈춰야 한다. 지연된 기간만큼 손해는 당연히 시공사가 본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감리회사측은 “일방적인 주장이다. 감리회사는 관할 시·도 지청의 부실 벌점제로 평가를 받는다. 벌점을 받은 감리회사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발주 공사 참여에 제한을 받는다. 준공 후에 감사 평가서를 통해 검증하는 제도도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한 현장소장은 “감리자가 자신들이 찍어줄 준공검사 필증과 시공사가 평가하는 감사 평가서를 맞교환하자고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사 평가서에 불만 사항을 적을 수 있겠는가”라고 불평했다.
그동안 대다수 시공사는 감리자의 횡포나 현장소장과의 결탁 비리가 밝혀져도 내부에서만 처리하고 조용히 덮어왔다. 그러나 신안건설산업은 이같은 건설업계의 불문율을 단호하게 깼다. 신안건설산업은 ㅎ건축사무소와 현장소장 박 아무개씨(48) 등을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회사측은 “인천 서구 원당동 신안실크밸리 아파트에 대한 감리를 맡은 ㅎ건축사무소를 고발했다. 감리자가 현장소장과 결탁해 날조된 자재 검사부 서식을 감리 보고서에 첨부하는 방식으로 공사 대금을 편취했다. 전문 건설 업체에게 현장 조사를 의뢰한 결과 자재가 실제보다 3~4배 이상 부풀려서 납품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설명했다.
신안건설산업의 인천 원당동 아파트 건설 감리를 맡았던 ㅎ건축사무소는 “감리자는 자재의 물량보다는 품질을 위주로 감독한다. 감리 보고서에 기록된 물량은 송장을 기준으로 해 작성된 것이다. 또 신안측이 송장을 위조했다고 주장하는데, 최근 레미콘 업체는 자재 출하시 데이터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슈퍼 프린트’로 출력하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우경선 신안건설산업 회장은 “전문가가 계산하면 공사 자재 투입량을 3%의 오차 범위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레미콘 회사에 확인해보니 슈퍼 프린트도 조작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에는 자재 납품업체도 관여했다. 공사 현장을 관리·감독해야 할 감리자가 현장 관계자와 결탁해 공사 대금을 편취하는 행위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감리자의 횡포에 대해 청와대에 민원도 낼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감리 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의무 사항이 독소 조항으로 바뀐 것이다. 감리 제도는 감리회사가 한 번 정해지면 시공사는 그 감리회사와 함께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 예외란 없다. 일부 감리자는 거꾸로 이를 무기로 삼아 시공사를 좌지우지한다.
감리 제도 탓에 시공사와 감리회사 간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면서 분양 원가만 높아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입주자들만 높은 분양가를 부담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건설 업계는 “정부의 분양 원가 공개 정책과 맞물려 있는 불합리한 감리 제도를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주건협)측은 “분양 원가를 낮추기 위해 감리 대상 13개 공종(공사의 종류)에 대한 감리비 지급 기준 요율 인하가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협회측은 “특히 조경·가구·유리·타일·도장·도배·주방용구·잡공사·위생기구 공사 등 9개 공종은 부수적인 마감 공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반인의 육안으로도 충분히 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감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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