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사 ‘최악의 적자’ 대형극장 '짭짤한 흑자'
  • 이재명 편집위원 ()
  • 승인 2007.05.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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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 희비쌍곡선…군소 극장 휴·폐업 잇달아

 
영화계에 그려진 희비쌍곡선이 날이 갈수록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영화를 만들거나 배급하는 영화사들은 최악의 적자 늪에 빠져 허덕이는 반면, 영화를 받아다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대형 극장들은 온갖 반칙을 일삼으며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다. 극장가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영화계 최대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주)(이하 CJ)는 지난해 4월10일 회사 분할 방식에 의해 독립한 이후 8개월여 동안에 1천1백83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2백6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3년 연속 적자를 보아온 CJ는 올 들어서도 상당한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J는 올 초 2007년도 사업 전략을 발표하면서 “한국 영화에 투자 위축이란 없다”라며 올 한해 최소 20편, 8백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영화산업의 불황이 의외로 심각한 데다, 올해 기대작인 <화려한 휴가>의 개봉이 계속 늦어지는 등 상황은 여전히 나쁜 편이다.
(주)미디어플렉스는 지난해 8백84억원의 매출과 38억원의 순익을 올렸으나 매출은 전년 대비 4%, 순익은 62%가 각각 감소한 데 이어 올 들어 1~3월 사이에만 30억원 적자로 전환되어 일부 증권사로부터 적정 주가를 하향 조정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주)시네마서비스는 지난해 <왕의 남자> 등 히트작을 냈는데도 7백16억원의 매출에 85억원의 적자를 보았다. (주)프라임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매출액(3백72억원)보다도 많은 3백81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해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 올해 들어서도 적자 행진이 이어져 1~3월에만 5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2005년 대규모 적자를 냈던 (주)태원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3백15억원 매출에 14억원 흑자로 돌아섰으나 올 1~3월에 다시 5천여 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제작·배급사들, 2006년에 1천억원 적자


 
영화사청어람(주)은 지난해 전년 대비 32.6%가 급증한 2백3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매출액의 3분의 1이 넘는 77억원의 큰 순익을 올렸다. 청어람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여러 작품을 올리지 않고 <괴물> 한 편에만 사활을 걸었던 것이 적중했다. 한국 영화사상 최대인 1천3백만명의 관객이 몰리면서 대박이 터졌다”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지난 2006년 한 해 제작·배급 부문에서 업체들이 낸 총 적자 규모가 1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산업정책연구소 김현정 연구원은 “영화사들이 무척 힘든 상황이지만 그동안의 급성장에 따른 조정이라고 보면 감내해야 하는 과정이다. 사업 합리화를 통해 다시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대다수 영화 제작·배급사들이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는 것과 달리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 등을 운영하는 대형 극장 업체들은 대규모 이익을 올리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CJ그룹 계열의 CJ CGV는 지난해 2천7백20억원 매출에 2백2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올 들어서도 1~3월 사이에 매출 7백4억원, 순익 15억원을 기록했다.
롯데쇼핑(주)의 사업부로 되어 있는 롯데시네마는 지난해 매출이 1천3백76억원으로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순이익도 매출액의 10% 안팎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합상영관이 스크린 3분의 2 장악


 
(주)메가박스는 지난해 1천91억원 매출에 8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주)프리머스 시네마는 지난해 4백83억원의 매출에 3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들 대형 극장과는 달리 개인이 운영하는 군소 극장들은 경영난에 허덕이며 휴·폐업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이미 오스카·면목·중화·동일·계림·금성·노벨·연흥·성남·그랜드시네마·녹색극장 등 1960~70년대 명절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극장들이 사라지거나 대형 극장들에 넘어갔다.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경기도에서만 2003년 이후 수십 개의 극장이 문을 닫았다. 광주시에서는 수십 년간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태평극장과 아시아극장이 2000년대 들어 폐업한 것을 시발로 계림극장·현대극장·신동아극장·아카데미극장·성도극장 등이 휴·폐업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극장 수는 2001년 3백44개였던 것이 2006년 현재 3백6개로 38개가 줄었다. 전체 스크린 수는 같은 기간 8백18개에서 1천8백47개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가운데 CGV·프리머스·롯데시네마·메가박스·씨너스 등 5개 복합상영관 체인이 가지고 있는 극장은 1백49개, 스크린은 1천1백31개로 집계되었다. 결국 극장 수로는 3분의 1, 스크린 수로는 3분의 2가 대기업 계열 복합상영관의 손에 장악된 현실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극장협회는 지난해 이동통신사의 멤버십 카드 영화 할인 서비스를 폐지시킨 데 이어 최근 신용카드사 연합체인 여신금융협회에 공문을 보내 신용카드사들의 영화 할인 서비스 폐지·축소를 요구했다.
 
서울시극장협회 최백순 상무는 “신용카드사들이 카드 회원들에게 영화 관람시 과다한 할인 혜택을 줌으로써 카드사와 제휴한 극장과 제휴하지 않은 극장들 사이에 불균형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 관객들 사이에 정상적인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인식마저 뿌리 내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군소 극장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형 극장 업체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고 있다.
극장 업계 2위인 롯데시네마는 최근“스크린 수를 지속적으로 늘려 2009년 말까지 80개관 6백30개를 확보함으로써 극장 업계 1위에 올라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시네마는 5월 중순 현재 38개 극장 2백93개 스크린을 확보하고 있다. 업계 1위인 CGV의 43개관, 3백43개 스크린에 40여 개 차이로 간격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 수 기준 업계 3위인 프리머스는 40개관 2백80개 스크린, 4위 메가박스는 19개관 1백55개 스크린을 갖고 있다.
한편 대기업 계열사인 대형 극장들의 부당 행위가 심각하다는 불만과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대형 극장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CJ·롯데·오리온 그룹 계열의 영화 관련 회사와 미디어플렉스·메가박스 등이다. 지난해 국회 정무위의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대형 극장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각종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영화산업을 공정한 경쟁 유도가 필요한 산업으로 꼽은 바 있다.

 
CJ, 영화 이어 향락 산업 진출


 
공정거래위원회의 칼날 속에서도 CJ는 영화 분야 매출을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빈축을 사고 있다. CJ는 최근 다른 계열사가 팔고 있는 ‘인삼유 한뿌리’ 박스마다 CGV 극장에서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는 ‘한뿌리 영화상품권’을 사은품으로 끼워주고 있다.
또 음악·오락 채널을 운영하는 CJ그룹 계열 엠넷미디어가 서울 강남의 호텔 나이트클럽 지분을 인수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져‘대기업이 유흥·향락 산업에까지 손을 대서야 되겠느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 영화계 인사는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 삼아 시장을 교란해대는 바람에 군소 극장들의 경쟁력은 전무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공정거래 차원에서 엄정한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화려한 휴가는 화려하지 못했다
5·18 민주화운동 다룬 대작, 5·18 넘겨 7월에 개봉…“CJ가 정치적 이유로 연기” 소문

영화 <화려한 휴가>가 화려하지 않게 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로 2007년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개봉이 당초 예정했던 ‘상반기’를 넘기고 작품의 소재가 된 ‘5월18일’마저 넘겼기 때문이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측은 ‘7월26일 개봉’을 밝히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영화가에서는 CJ측이 정치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월 개봉이 자칫 5·18 기념행사 등에 영향을 미쳐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5·18을 일으킨 신군부 세력이 박정희 유신 정권을 계승했다는 배경을 설명하면서 5·18과는 직접 관련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등장시키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대선 출마를 겨냥하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다른 대선 후보들의 이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CJ측이 영화 개봉 시기를 5·18을 피해 늦췄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2005년 개봉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경우 정치적 논란과 소송에 휘말리면서 CJ측이 자체 복합상영관인 CJ CGV에 영화 배급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이같은 항간의 소문에 대해 CJ측은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이 회사 이상무 홍보팀장은 “올해 영화계가 불황이어서 성수기인 여름방학에 맞춰 개봉하기로 방침을 바꿨다”라고 설명했다. 3월과 4월이 전통적으로 극장가의 비수기인 데다 5월 들어 <스파이더맨 3>가 관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기 때문에 7월이 가장 좋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이팀장은 “27년 전 특정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영화가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상황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평범한 광주 시민들이 전두환 신군부 계엄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시민군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제작비만 100억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안성기·이준기·김상경 등 톱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당시 현장인 광주시 금남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작사는 지난해 11월 말 촬영을 마치고 현재 마무리 작업도 끝내놓은 상태이다. 어쨌든 3년 연속 영화 부문에서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CJ는 <화려한 휴가>의 개봉 지연으로 인해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는 국산 영화들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그놈 목소리>가 3백25만명, <1번가의 기적>이 2백74만명을 기록한 정도이다. 지난해 <왕의 남자>가 1천2백30만명, <투사부일체>가 6백11만명을 끌어들인 것을 비롯해 <태풍>(4백9만명), <음란서생>(2백58만명) 등 2백만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이 9개였던 데 비하면 초라한 셈이다. 임권택 작품의 100번째 작품 <천년학>도 13만명에 불과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반면 외국 영화는 기세가 등등하다. <스파이더맨 3>가 개봉 보름 만인 5월15일 현재 4백만명을 돌파하는 등 3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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