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흙 지키는 '마지막 농부'들
  • 유근원 ()
  • 승인 2007.05.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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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불구불 논두렁 사이로 모내기를 하기 위해 대놓은 물줄기가 시냇물을 이룬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는 우렁이가 산다. 요란하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강원도 산골마을도, 전라남도 땅끝 마을의 이야기도 아니다. 바로 서울특별시의 논 풍경이다.
서울 강서구의 공항로를 따라 김포공항 방향으로 차를 달리면 수km에 걸쳐 평평한 논이 펼쳐진다. 서울에서 마지막 남은 대규모 벼농사 지역으로 알려진 마곡지구이다.
지난 5월20일 아침, 방화동 길훈아파트 옆 논에서 모내기 준비에 분주한 유예환씨(54)를 만났다. “요즘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논에 물이 많이 찼다. 도랑을 터놓고 물이  빠지길 기다려야 모내기를 할 수 있다.” 물꼬를 트는 사이 논 가운데 백로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서울에서 백로를 보기란 쉽지 않다. 이 맛에 농사짓는다. 평생을 벼농사만 지었다. 죽을 때까지 벼농사만 할 생각이다.”
이번 모내기가 유씨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과 가양동 일대의 마곡지구는 이미 택지 개발 지역으로 확정되었다.
“땅 주인들은 개발되기만을 기다린다. 2백 평에 쌀 한 가마니를 주는 조건으로 농사를 지어왔는데 임대료가 많이 올라 더 이상은 어렵다.”
마곡지구에는 임대농이 많다. 유씨는 서울 마곡지구와 인천 등에서 논밭을 임대해 총 1만5천 평 규모의 논농사를 짓는다. 마곡지구 3천 평에서 나는 쌀의 수익은 서울 지역 농촌지도자 모임의 회비로 쓴다.
“3천 평의 쌀농사면 8백만원 정도는 벌 수 있다. 임대료로 이미 3백만원이 들었지만 올가을이면 충분한 회비를 모을 것이다.”
요즘 모내기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이앙기 한 대만 쓰면 3천 평 논에 모를 내는 일은 한나절로 족하다.
새참이 나왔다. 유씨와 친구들이 둘러앉아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며 농사짓는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씨의 친구 이민복씨(53)는 “새벽에 일하러 나오면 세상이 고요하다.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그 기분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마곡지구, 서울 시민들의 하루치 쌀 생산


 

유씨 후배 문용식씨(49)는 “여긴 서울이지만 서울이 아니다. 공기도 도심과 다르고 온도 차이도 많이 난다. 농사를 짓다 보면 일기예보에서 발표한 서울 지역 온도와 달라 당황할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유씨는 “일하다 힘들면 눈을 감고 벼가 익은 황금 들판을 생각한다. 수확할 때 기분을 생각하면 당장 힘든 것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집안은 4백여 년 전부터 대대로 여기에서 농사를 지었다. 고향을 등지는 것이 싫었다. 가끔 서울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것에 회의를 느낀다. 논을 갖고 있던 친구들은 땅을 처분하고 이미 수백억원대의 부자가 됐다. 손바닥만한 자기 땅 하나 없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일은 서러운 일이다”라고 푸념했다.
이에 문씨가 거들고 나섰다. “정부에서 ‘쌀 소득 보전 직불제’를 실시하면서 땅 주인들만 혜택을 받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쌀값 보상금은 정작 땅 주인들에게 돌아간다. 이럴 바에야 현금이 아닌 비료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지주가 소작농에게 돌려줄 가능성이 높다.”
유씨도 “비료 냄새 때문에 아파트 주민으로부터 민원이 들어온다. 정부에서 환경을 감안해 유기 비료를 지원하면 좋겠다”라고 거들었다.
그가 어렸을 때 마곡지구는 김포공항이 들어서기 전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김포평야는 마곡지구가 시발점이었다. 아직도 서울시에서 생산되는 쌀의 96%가 마곡지구에서 나온다. 서울의 쌀농사 현황은 총면적 5백11ha에 쌀 생산량은 2천3백78t이다. 1천여 만명에 이르는 서울 시민의 하루치 쌀이 여기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복순 농업기술센터 지도사(61)는 “서울 마곡지구는 한강 주변의 부드러운 토사가 쌓여 조성된 김포평야의 일부로서 쌀농사에 적합한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쌀은 ‘경복궁쌀’이라는 브랜드로 팔린다”라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봉화산 기슭. 배 과수에 좋은 곳으로 꼽힌다. 우선 토질이 좋다. 모래가 많이 섞인 토양이라 물 빠짐이 좋아 배가 자라기에 적합하다. 일조량도 풍부하다. 이곳에서 나는 먹골배가 유달리 수분이 많고 달콤한 이유이다. ‘먹골배’는 배의 품종 명칭이 아니다. 묵동의 옛 지명인 ‘먹골리’에서 유래했다. 묵동 주변의 과수원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졌다.
6호선 화랑대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묵1동 대명교회 옆. 도심 가운데 아직 과수원이 남아 있다.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과수원인 셈이다. 중랑구 구립도서관 근방으로 아파트숲 사이를 가로지르면 3천 평 남짓의 과수원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원조 먹골배가 자란다.

 
서울 토박이 농부 정현호씨(53)는 줄곧 먹골배를 키웠다. 정씨는 나무만 보고 곧바로 품종을 알아맞혀 ‘배’ 박사로 통한다.
정씨는 “이곳이 과수원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개발 불가능한 공원 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땅 소유자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지 평당 1천원의 싼 임대료로 계속 세를 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1년에 약 4만5천 개의 배를 생산한다. 맛이 달다는 소문 덕에 정씨가 내놓은 배는 따는 즉시 팔린다. 백화점에서도 납품해달라는 요청이 오지만 물량이 부족하다. 정씨가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면서 계속 과수 농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와의 직거래 비중이 매우 높아 수입이 짭짤했기 때문이다. “직판이니까 재미가 있다. 안 그러면 땅값이 계속 뛰는데 누가 농사를 짓겠는가?”
이곳에서 땅을 갖고 과수원을 하던 정씨의 친구들은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다. 땅이 없던 정씨는 10년 전부터 공원 지역을 임대해 아예 직판을 목적으로 계획 농사를 하고 있다. 7년 전부터는 100%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 농약도 적게 쓰고 햇볕을 많이 받게 해주면 맛이 더 좋아진다고 한다. 그는 “일반 배의 평균 당도가 11브릭스(Brix· 물 100g에 녹아 있는 당분)인데 우리 배는 14까지 나온다”라고 자랑했다.
정씨는 과수원에 12개 품종의 배나무를 골고루 심었다. 품종에 따라 수확기가 달라 8월 중순부터 10월 말까지 지속해서 배를 출하할 수 있다. 특히 8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약 보름 사이에 나오는 청실배는 희소성이 크다. 크지는 않지만 과육이 부드럽고 달아 인기가 높다.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배즙은 따로 만들어 판다. 정씨의 아내 정희복씨(50)가 만드는 배즙도 인기이다.
그는 농사짓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정씨의 아이들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농부라는 사실을 창피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를 돕는다. 그들도 이제는 배 농사에서는 기술자가 다 되었다.
그는 서울에서의 과수원 농사에 만족한다. 그는 “먹고 살 만하다. 몸 건강하고 부부 금실도 좋다. 농사짓고 아이들 교육 환경도 좋아 걱정이 없다”라고 말했다.
농사는 삶에 여유를 준다. 돈 때문만은 아니다. 배가 익었을 때쯤 사람들이 몰래 따가는 서리쯤은 아예 20%의 유실률에 포함시켜놓았다. 그는 농사 외에는 다른 일을 생각할 겨를도, 또 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쌈 채소 재배하는 데는 서울이 최고”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심정은 어떨까?
강남구 율현동에서 채소 농장 ‘e그린 영농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서상환씨(53)는 최근 들어 착잡한 마음을 가눌 수 없다. 얼마 전 농장 입구 주차장이 평당 3백60만원에 팔렸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30만원에 거래되던 땅이다. 그동안 수경 재배를 하느라 시설물에 투자한 돈만 2억여 원이 넘는다.
‘그 돈으로 땅을 샀더라면….’ 이제 와 후회막급이다. 당장은 인근 서울공항 때문에 개발이 제한되어 있어 임대료가 낮은 편이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땅 이야기를 꺼내면 아예 귀를 막는다. 간혹 그가 흔들릴 때면 오히려 아내가 나선다. 아내는 “당신 덕에 지금껏 잘 먹고 살아왔지 않은가? 아이들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다”라며 남편을 위로한다. 서씨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느라 허리 디스크까지 얻은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서씨는 1만 평의 땅을 임대해서 7종의 쌈 채소를 키운다. 모두 수경 재배 방식이다. 수경 재배는 흙이 필요 없다. 식물의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녹인 배양액만으로 채소를 재배한다. 수경 재배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채소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병충해 예방도 수월하다. 서울에서의 쌈 채소 농사는 나름으로 경쟁력이 있다. 쌈 채소에서는 신선도가 생명인데, 코앞의 가락시장을 끼고 있는 강남구 율현동은 신선한 채소를 빨리 공급할 수 있는 적지이다. 하지만 서울의 대기오염이 심해 친환경 유기농 재배는 불가능하다. 그가 수경 재배를 고집하는 것은, 서울에서 가장 깨끗한 쌈 채소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품질은 대형마트에서 검증했다. 서씨는 이마트 매장 10곳에 쌈 채소를 직접 납품한다. 한 매장당 판매 직원 2명을 두고 농장 일꾼까지 합치면 직원 수만 50명에 이른다. 서씨가 쌈 채소로 이만큼의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말 못할 고생이 있었다.
서씨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12년 전이다. 그는 원래 홈 인테리어 사업가였다. “부도를 맞고 남은 돈 3백만원으로 채소 농사에 뛰어들었다. 흙 없이 물로 채소를 키우는 수경 재배를 처음 봤는데 너무 신기해서 ‘바로 이거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최근 차로 15분 거리인 수서에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비닐로 지은 움막에서 잠을 잔다. 아직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요즘 ‘베이비 채소’를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베이비 채소는 새싹과는 개념이 다르다. 베이비 채소는 맛이 부드럽고 한마디로 영양덩어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조만간 그는 베이비 채소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채소를 보면 자식 같은 기분이 든다. 때로는 채소들이 주인의 발소리를 알아듣는 것 같다. 한때는 더 잘 크라고 음악을 틀어주기도 했다”라며 웃음 지었다.
화훼 농장·매장에서 연 6억~7억원 수입

 
서울 서초구 우면동 ‘꽃을 든 남자’ 류병승씨(53)는 30년째 꽃을 가꿔온 화훼 농부이다. 이곳에서 류씨와 농사를 짓던 친구들은 땅값이 폭등해서 이미 갑부가 되었다. 하지만 땅을 팔아 돈을 많이 번 친구들도 꽃 속에 묻혀 사는 류씨를 부러워한다. 류씨는 “처음에는 채소 농사를 했다. 채소보다는 화훼가 수익이 훨씬 좋아서 바꿨다. 농장에서는 주로 철쭉류를 키운다. 이 분야는 우면동에 있는 농장들이 전국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땅값 상승에 따른 임대료와 시설 투자 비용이 늘어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매장도 직접 운영하고 있다. 그는 농장에서 1억원의 수입을 올리고 매장에서는 한 해 5억~6억원을 번다.
그는 “아직도 우면동에는 땅 소유자가 직접 화훼 농사를 짓는 경우가 있지만 소수이다. 화훼 농사는 악착같이 일을 해야 하는데 땅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땅을 임대해 농사를 짓는 사람과 경쟁이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의 화훼 농사는 제법 쏠쏠한 재미가 있다. 판로가 많아 수익도 지방에 비해 안정적인 편이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그것만은 뜻대로 안 된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곡지구에서 벼농사를 짓는 유예환씨, 묵동에서 과수원을 하는 정현호씨, 강남에서 채소를 키우는 서상환씨, 우면동에서 꽃을 가꾸는 류병승씨는 모두 서울의 마지막 농부들이다. 이들은 농사짓는 법에 나름 도가 통해서 그런지 가정도 평안하게 이끌고 있다. 자식 농사도 모두 성공한 편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땅의 힘을 믿어서인지 넉넉한 마음에 고집스러움이 묻어난다.
대부분은 태어나면서 농사를 배우고 그것을 평생 천직으로 알아왔다. 서울에서의 농사는 앞으로 수년 내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서울 일대 개발 제한이 대부분 해제되었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논밭은 아파트숲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들은 조만간 땅을 내주고 시골로 내려가야 할 때가 왔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들의 농심(農心)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울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선가 나타나 숨을 고르고 나서 다시 땅을 고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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