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은 내가 진두 지휘하겠다"
  • 김 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6.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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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내 사람' 으로 여권 후보 단일화 노려... 한나라당과 1 대 1구도 겨냥

 
"내 나이는 대통령을 한 번 더해도 될 나이”라고 말했을 때 이미 단초는 드러났다. 지난 5월 얘기다. 그때는 단순히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아쉬움에 농담 삼아 한 얘기로 들렸다. 그러나 아니었다. 지난 6월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에서의 ‘말 폭탄’과 ‘4시간 원맨쇼’는 “누구도 말리지 마라. 12월 대선은 내가 진두 지휘하겠다”라는, 안팎을 향한 선언이었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이게 좀 끔찍하다”라는 말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이나 박근혜 전 대표를 비난하고,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을 향해 “사람 잘못 본 것 같다”라고 가시 돋치게 말한 것은 양념에 불과하다. 2백자 원고지 4백장 분량의 연설에 담긴 내용은 ‘반한나라당 구도’를 만들고, 범여권 후보를 ‘단일화’해 “한나라당을 깨부수자”는 것이다. 오기와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 범여권 후보 역시 자신과 염색체가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노대통령의 12월 대선 솔루션은 두말할 것 없이 여권 후보 단일화다. 노대통령은 “대통합을 위해 노력하되 그것만 믿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후보 단일화를 병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빠른 시일 안에 통합이 되지 않으면, 후보를 내세워서 대세 경쟁을 하고 대통합과 후보 단일화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 좀더 안전한 전략”이라고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범여권이 하나같이 대통합을 외치니 동조하는 척하면서도 속내는 후보 단일화에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노대통령은 참여정부 포럼 연설에서 “그때보다 (나의) 지지율이 조금 올랐으니 다시 와서 줄 서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힘주어 했다. 건성으로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얘기이다. 그러나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지지율이 올랐다’는 것은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자신의 국정 지지도가 30%대로 상승했다는 얘기이다. 또 ‘그때’는 노대통령 지지도가 10%대, 심지어 한 자릿수로 추락해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가 일어난 때를 말한다. “다시 와서 줄 서야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은, 이제 국정 지지도도 높아졌으니 분산된 범여권이 내 뒤에, 열린우리당에 다시 줄 서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이다. ‘후보 단일화’ 주체와 중심이 누구며, 누가 단일 후보가 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단초이다. ‘노무현의 후보’로 막판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생각이자 자신감이다.
그러나 돌아가는 모양새는 노대통령 의중과 사뭇 다르다. 당장 중도통합개혁신당이 민주당과 통합해 통합민주당이라는 40여 석의 중량급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었다. 민주당은 정동영·김근태·이해찬·한명숙·유시민 등을 ‘참여정부 국정 실패 책임자’로 딱지 붙인 세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리고 나무랐어도 박상천 민주당 대표는 살생부를 여전히 움켜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집단 탈당을 유도하고 있다. 이미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던 유선호 의원이 합류했다. 통합민주당은 수십 명의 열린우리당 의원이 곧 귀순할 것이라고 큰소리 친다. 근거도 있다. 대통령 선거는 차치하고 내년 4월 총선 때 호남에서 살아남으려면 통합민주당에 가야만 하는 그 지역 출신 의원들이 바로 대상이다. 노대통령은 자신을 ‘세계적 대통령’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사태는 여의치 않다.


 
‘비난의 잔치’에서 친노 세력만 무사
노대통령 핵심 측근인 이광재 의원은 “단일화 방식은 과거처럼 정당은 그대로 있으면서 연대했던 DJP 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같은 후보 단일화, 3당 합당 같은 다양한 방식이 될 수 있다”라고 후보 단일화 구도를 풀어 설명했다. 이의원이 든 예처럼 지금 범여권은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으로 양분된 것도 모자라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도 들썩이고 있다. 여차하면 여권이 3분될 판이다.
이들 중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은 노대통령의 계속된 공격으로 반노·비노로 돌아선 처지이다. 친노로 구분되는 문희상 전 의장이 이들과 열린우리당, 노대통령 사이를 연결하려고 하겠지만, 노대통령과 두 사람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했다. 이들이 노대통령이나 친노 세력을 끼워줄 리 만무하다. 김 전 의장은 아예 노대통령의 선거 막판 후보 단일화 전략에 대해 “대선은 어려워졌으니까 총선에서라도 살아남자는 생각이 가득하다”라고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이 신당을 추진한다 해도 열린우리당 내 추종 세력의 근거지는 없다는 단언이다. 김 전 의장은 “막판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주장은 공수표가 될 것”이라며 세계적 대통령을 자처한 노대통령을 조롱했다. 노대통령은 1997년과 2002년 후보 단일화의 단꿈을 꾸고 있을지 모르지만, 1987년 대선 때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이 각각 출마해 정권을 군부 세력에 헌상한 역사도 잊지 말라는 충고가 담겨 있다.
노대통령 주도의 범여권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노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야 유력 대선 주자들을 싸잡아 매도하고, 한나라당 집권을 “끔찍하다”라고 했겠는가. 또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나 선거법에 개의치 않는 언행이 어떻게 가능할까?
노대통령의 참여정부 포럼 연설은 12월 대선을 미리 보는 듯하다.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도 당했다. “열린우리당이 제대로 했다면 참여정부 포럼을 왜 만들었겠느냐”라고 했다.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 심지어 민주개혁 진영까지 매도했다. 무능하고 세태에 영합한다는 것이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노대통령 자신과 참여정부 포럼, 노사모를 제외한 누구도 노대통령이 날리는 비판의 화살을 피해갈 수 없다. 이해찬·한명숙·유시민·김혁규 같은 친노 세력만 ‘비난의 잔치’에서 무사했다. 이들 중 누군가 ‘노무현의 후보’로 떠오를 것이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도 온존했다. ‘정치적 사부’라는 식의 칭송이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가 참여정부의 모델이라는 찬사도 늘어났다.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과 한나라당 간의 1 대 1 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 세력의 당면 과제는 대선에서 1 대 1의 구도를 만드는 것이다. 후보 단일화를 추진해야 한다”라는 것이 노대통령 언급이자 전략이다. 박상천-김한길의 통합민주당이나 정동영·김근태가 꾸릴 제3지대 신당, 그 어느 존재도 한나라당의 맞상대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겠다는 노대통령 구상은 무엇인가? 일단 ‘4시간 원맨쇼’로 노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범여권 제정파, 민노당까지 무시하면서 한나라당과 1 대 1의 각을 세우고 그 한가운데 좌정하는 데 성공했다. 노대통령의 사자후가 터져나오자 전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연단에서 손을 앞으로 내미는 사진은 노대통령의 말마따나 “매일 얻어맞고 지내다 할 말 다하니 참 시원하다”라는 표정 그대로다. 흥미로운 것은 노대통령으로부터 더할 수 없이 모욕을 당한 한나라당의 표정이다. 일단 초기에는 거의 자지러지는 모습으로 보였다. “우리나라 대통령 주치의를 정신과 전문의로 바꿔야 할 것 같다”(이명박 전 시장측 정두언 의원) “국민에게 손가락질받는 대통령 말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박근혜 전 대표측 최경환 의원)라는 코멘트가 나왔다.
한편으로는 노대통령이 선거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오자 ‘불감청 고소원’이라는 반응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진영의 격렬한 반응도 노대통령과 대립각을 극대화해 손해날 것이 없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반한나라당 전선 전면에서 범여권을 주도하려는 노대통령의 노림수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전선을 간결하게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이 “한나라당이 가장 원하는 것이 노대통령과의 대립 구도”라며 “반노 전선이 가장 쉬운 필승 구도이며, 노대통령의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에 대한 거친 공격이 오히려 그들을 살려줄 우려가 있다”라고 꼬집고 “제발 조용히 계시는 것이 도와주는 것임을 아시기 바란다”라고 했다.
노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구상은 덧셈이 골격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범여권의 유동성은 뺄셈이 강하다. 정동영·김근태 두 사람이 민주당으로부터 ‘영입 부적격자’로 낙인 찍힘으로써 열린우리당을 떠나지 못할 것으로 여겨왔으나, 문희상 전 의장까지 업고 탈당할 태세이다. 탈당에는 많게는 50여 명의 의원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열린우리당은 50여 석의 제3 또는 4당으로 전락한다. 노대통령이 큰소리친 ‘후보 단일화’를 주동할 힘이 사라진다. 소속 의원이 더 빠져나가 유시민·김두관 등 소수 ‘친노 세력의 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상상까지 해야 할 처지다.


“심판이 작전 펴고 공도 차겠다는 것”
노대통령이 후보 단일화를 입에 올리고부터 참평포럼과 노사모의 활동이 부쩍 활발해진 것도 범여권 재편 움직임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연설 도중 무려 100여 회나 박수 치고 연호하고 민중가요를 부른 참평포럼 참석자들과 노사모들의 움직임 역시 만만치 않다. 참평포럼은 회비까지 갹출하며 전국 조직화에 나선 지 오래이다. ‘1회원 1명 손잡고 오기’ 운동도 병행 중이다. 호루라기만 불면 당장 전국 정당이 가능할 정도이다. 노사모도 총회에 노대통령을 초청할 계획이다. 노대통령의 스타일로 보아,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1대 1 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총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노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든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의 약점을 공격할지 모른다.
노대통령은 “참여정부 평가포럼이라면 노사모에 다 들어가는 것이고 참평포럼도 노사모로 통합되는 과정으로 갈 수 있지 않으냐”고 아예 이 둘을 동일시했다. 만약 후보 단일화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면, 범여권 통합 과정에서 친노 진영이 배제될 경우 이들을 정치 세력화하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정치 세력화’란 두말할 것도 없이 내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온존히 지켜, 최악의 경우 야당이 된다 해도 ‘노무현 스쿨’은 정치 현장에 남겨놓겠다는 의도라는 얘기이다. 김근태 전 의장이 노대통령의 후보 단일화 구상을 “대통령 선거보다 총선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다. 총선에서라도 살아남자는 생각이 가득하다”라고 퍼부은 독설이 맞을지 두고 볼 일이다.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6월 항쟁 20주년을 맞아 그 당시 주역이었던 40~54세를 대상으로 디오피니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역대 정부 중 노무현 정부가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정부가 100점 만점에 55.1점으로 1위, 김영삼 정부는 46.4점으로 2위다. 군사 정부의 연장선상이던 노태우 정부가 100점 만점에 43.1점을 받은 데 비해, 노무현 정부는 41.8점으로 최하위이다.
지금 대한민국 대선은 정상이 아니다. 대선을 6개월 남기고 대선 주자가 아닌 현직 대통령이 선거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온 것이다. 심판인 현직 대통령이 볼을 차고 수비하고 작전을 지휘하는 기괴한 현상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누가 패권자가 되고, 패배자가 되고가 아니라 선거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선거법 위반 논란까지 몰고 온 노대통령의 참평포럼 발언은 국민들을 당혹케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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