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동교동 '한랭전선'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8 09: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대통령은 대선 후보 단일봐, DJ는 민주당 중심 대통합 원해 '삐걱'

 

노무현 대통령에게 매우 불쾌한 일이 벌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인 박지원씨가 노대통령을 “밤 10시 이후 청와대에서 인터넷이나 하는 대통령”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는 연세대 행정대학원 대통령학 과정 공개 특강에서 “대통령은 저녁 10시 이후가 중요한데 DJ는 9시 뉴스를 시청하고 10시부터는 신문과 각종 보고서를 탐독했다. 반면  YS는 특정인과 대화를 나눴고, 노대통령은 인터넷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라고 비꼬았다. 덧붙여 “충고하는 언론과 각종 보고서를 대하면 바른 국정이 가능할 텐데, 인터넷에서 악플이라도 읽으면 스스로 화나는 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박지원씨는 참여정부 임기 내내 감방을 드나들었다. 대북 불법 송금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비자금 등과 관련해 4년여를 감방에서 보냈다. “노무현 정권 4년 반이 박지원 징역 4년 반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 그의 노대통령 비판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DJ가 누구이고 박실장이 누구인가? 실과 바늘이다. 박실장의 독설이 설왕설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DJ의 사활을 건 승부처인 ‘범여권 대통합’이 노대통령의 잇단 정치 개입으로 혼선을 빚는 데 대한 대리 비판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연말 대선을 앞둔 범여권 재편과 관련해 노대통령과 DJ의 행보는 확실히 다르다. 노대통령은 범여권 대통합이라는 대세를 따르겠다면서도, ‘지역주의는 안 된다’라는 대의를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DJ에게는 대의가 아닌 실리가 더 중요하다. ‘충청-호남’을 고리로 범여권이 똘똘 뭉쳐서 사생결단을 해서라도 한나라당 집권을 막으라는 것이다. 또 노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후보 단일화에서 찾는 반면, DJ는 대통합에서 찾는다. 그것은 각각 열린우리당 존속과 열린우리당 해체의 다른 말이다. DJ의 대통합이 성사되면 노대통령으로서는 큰 낭패이다. 이미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중도개혁 통합신당이 민주당과 합당에 합의해 ‘소통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초·재선 의원 16명도 당을 떠났다. 당 밖의 제3지대에서 정치 결사체를 만들어 대통합을 꾀한다는 명분이다. 탈당파들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잔류가 가장 확실한 인사는 ‘리틀 노무현’으로 불리는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유시민 전 복지부장관 등이다. 창당 주역인 신기남 의원 역시 잔류파다. 그러나 선관위 결정에 도전하고, 기자실에 못질을 하겠다는 노대통령이 국민적 반감을 사고 지지도마저 추락하면서 친노계까지 고립감이 심화되고 있다. 그것은 친노 세력까지도 열린우리당 잔류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게도 대선은 차치하고 내년 총선이 발등의 불이다. 금배지를 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언제 열린우리당을 버리고 떠날지 모른다. 지금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앞에는 엄청난 시련이 놓여 있다. 이해찬 전 총리가 후보 단일화파와 대통합파 간 가교 역할을 자임하지만 역부족이다.


 
열린우리당 붕괴 배후에 DJ 있다?
열린우리당 붕괴 배후에 DJ가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든다. DJ는 열린우리당 초·재선 의원 16명이 탈당을 단행한 6월8일 “범여권 단일화 조짐들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에 대한 긍정 평가다. 같은 시각 노대통령은 “회사가 부도도 나지 않았는데, 잠시 자금 유동성이 부족하다고 탈당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했다. DJ는 여기에 기름까지 부었다. 6월13일 SBS TV 대담에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라고 한 것이다. “현 정부(노대통령)는 민주당이 당선시킨 대통령”이라는 말도 했다. 열린우리당을 사수한 채, 열린우리당 후보로 단일화하겠다는 노대통령 구상에 대한 정면 거부이다.
두 사람의 대선 전략은 내년 총선 전략과 맞닿는다. 노대통령은 대통합 자체를 퇴로 없는 ‘외통수 총선 전략’으로 간주한다. “당 통합은 본디 총선 전략인데, 왜 대선 전략으로 나왔는지 모를 일”이라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대통합이 지역당으로 나타날 경우는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노대통령이 DJ를 겉으로는 대통합을 말하지만 내심으로 대선에서 지더라도 내년 총선에서 ‘호남당’으로 건재해, 호남 싹쓸이를 바탕으로 ‘DJ 친위대’를 만들겠다는 속셈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면 노대통령은 낭패이다. 영남은 한나라당, 호남은 ‘도로 민주당’이 점거하면 노대통령 세력은 발붙일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퇴임 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보호막이 사라질지 모른다.
노대통령이 대통합의 문을 차단한 것은 아니다. 또 DJ도 처음에는 후보 단일화를 하라고 채근한 적이 있다. 따라서 대통합이나 후보 단일화가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보면 속단이다. 두 사람은 결코 정권을 호락호락 넘겨줄 사람이 아니다. 노대통령은 “대통합에 반대하지 않는다. 대통합을 위해 노력하되 그것만 믿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후보 단일화를 병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 “대선에서 1 대 1 구도를 만들어야 하며, 대선을 앞두고 당을 합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1997년과 2002년에는 당을 합치지 않고 그냥 단일화해서 선거에 승리했다”라고 말했다. 현실을 꿰뚫은 분석이다.
이미 범여권은 소통합과 대통합 추진 세력, 그리고 열린우리당 3파로 나뉘었다. 소통합이 성사되었다고 하지만, 민주당의 45억원 부채라는 걸림돌에 걸려 실제 합당은 지연되고 있다. 합당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정당이 이 부채도 함께 승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아도 당 대 당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여기에 각자 독자 후보라도 옹립하는 날이면 대통합은 ‘틀렸다’고 보아야 한다.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독자 후보를 내면 50억원이라는 국고가 지원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노대통령 판단은 전적으로 옳다.
DJ도 한편으로는 노대통령과 친노를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주개혁 세력에 대통합은 절대적인 명제이다. 대통합을 이루는 데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배제됨이 없이 모두 하나로 모여 통합을 이뤄야 한다”라는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를 만나 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후보 단일화보다 대통합에 힘쓸 때”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6·10 항쟁 기념사에서 “1987년 이후 숙제로 남아 있는 지역주의 정치, 기회주의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수구 세력에게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활시켜서는 안 될 것이며, 기회주의를 용납해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도로 민주당은 NO”라는 주장이다. 답답한 것은 현재의 여권 상황으로는 DJ식 대통합도 노무현식 후보 단일화도 모두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