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세력, 천덕꾸러기 신세
  • 이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18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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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종군' 김근태 · 열린우리당 탈당파 · 민주당이 '왕따'시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이것은 뉴스가 아니다. 그의 불출마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지지도가 너무 낮아서다. 진짜 뉴스는 그의 입에서 범여권 주자들의 이름이 줄줄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전 의장, 천정배·김혁규 의원, 손학규 전 지사, 문국현 사장 등 7명이다. 이들에게 “국민 경선의 장에서 경쟁해달라”고 당부했다. 자기는 불출마의 독배를 마시겠으니 나머지 대선 주자 7명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평화개혁 세력의 단일 후보를 뽑아 한나라당과 대적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끝내 흘러나오지 않은 이름들이 있다. 이미 출마를 선언했거나 출마 의지를 밝힌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 김원웅·신기남·유시민 의원, 김병준 대통령정책특보 등이다. 이른바 ‘골수 친노 후보들’이다. 언급을 하지 않아서 의미가 있는 언중유골이다. 이들은 대선 후보감도 아니고, 경선에 나와서도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가 단단히 틀어진 것이다. “(김근태 등을) 내각에 입각시켰지만 욕만 실컷 먹었다” “사람 잘못 봤다”라고 자신을 향해 쏘아붙인 노대통령에 대한 앙갚음일지 모른다.
김 전 의장의 ‘오픈 프라이머리 엔트리 심사’는 김병준·유시민·신기남 세 사람이 대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직후이다. 김특보는 김 전 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날인 6월11일 “이번 대선이든 총선이든 어떤 형태로든 선거와 관련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유의원도 이틀 전 자신의 지지 모임 홈페이지에 “적절한 때 ‘좋은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선 후보 경선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기남 의원도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갖고 대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근태 전 의장은 자신만 독배를 마신 게 아니라 좌우로 돌린 것이다. 범여권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김 전 의장이 친노 세력을 위해서만은 밀알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 천명이다.
이해찬·한명숙·김혁규 의원 등도 ‘노무현 사람’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이 빠진 경선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들이 빠지면 대통합이라는 이름에도 걸맞지 않고 흥행성도 떨어진다. 자칫 이들 가운데 일부가 경선에서 배제되어 그중 한 사람이 ‘노무현 후보’로 독자 출마라도 하면 범여권은 자멸할지 모른다. 김의장의 ‘계산된 발언’은 이들을 ‘노무현의 남자’ 대열에서 이탈시키기 위한 고단수 노림수가 아닐까? 이해찬·한명숙·김혁규가 빠진 열린우리당을 상상해보라.
김 전 의장의 노대통령에 대한 ‘화풀이’는 계속되었다. 그는 “참여정부 임기가 반년 남았다. 안정적 국정 마무리가 중요한 시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미래는 미래를 담당할 사람들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하지 말라는 충고이다.
노대통령에게 불유쾌한 소식이 최근 많아졌다. 김근태 전 의장뿐 아니라 도처에서 “친노는 안 된다”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제3지대 신설 합당’에 동의하기는 했다. 신설 합당 방안이란 열린우리당 해체 없이 제3지대 신당에 흡수되는 방식이다. 점점 고립되는 친노파들을 물 먹이지 않고 그들과 끝까지 함께하기 위한 구상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희망일 뿐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민주당 대통합파 등이 제3지대 신당에 친노 그룹 참여를 극구 꺼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해체를 통한 제3지대 통합론을 강조해온 정대철계와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 및 민주당 대통합파 김효석·이낙연 의원 등은 친노파 동참에 반대한다.
친노 세력도 자신들을 기피하는 당 밖의 기류를 인지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파가 신설 합당 외 제3지대 통합에는 반대하며, 독자 노선을 고수하겠다고 나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신기남 의원은 “대통합이 어렵다면 (열린우리당) 독자 후보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각자 독자 후보를 내고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하자는 것이다. 김형주 의원은 “이해찬·한명숙·김혁규 등 유력 후보의 탈당은 없다”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근태 전 의장에 대한 응수이다.

 

 
노대통령,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 강력
그러나 한 전 총리 등 일부는 노대통령과 일정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김의원 주장대로 이들이 열린우리당에 남아 있을지 미지수다. 열린우리당이 연대 대상으로 꼽는 시민사회 세력의 ‘통합번영 미래구상’도 열린우리당과 손잡는 데 부정적이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비전과 정책에 동의하는 정치인들이 백의종군의 자세로 들어와야 한다”라고 거리를 두었다. 미래구상과 손잡으려면 열린우리당에서 나와 개별적으로 들어오라는 통보이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는 분명하다. 말을 이리저리 바꾸지만 범여권 대통합은 ‘지역주의 회귀’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선 전면에 나서 ‘노무현의 남자’를 후보로 만들고 정권을 다시 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범여권 전체로부터 문전박대당하는 처량한 신세. 친노파에 대한 범여권의 왕따를 자초한 측면이 많다. 노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앞장서 ‘참여정부 평가포럼’(참평포럼)을 만들고, 전국 조직화를 서두르며, 노사모와의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12월 대선과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왜소화될 경우 참평포럼을 접목시켜 당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것이 반노·비노 세력들의 시각이다. 김근태·정동영 전 의장이 참평포럼 해체를 주장한 것도 이들이 범여권 대통합의 걸림돌이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측도 참평포럼에 대해 연말 대선이 아니라, 내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친노 세력의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이다.
청와대 내부가 이미 ‘대선 모드’로 들어갔고, 정치권 출신 직원들을 대상으로 ‘언제 그만둘 것인가’를 조사했다는 설도 나돈다. 일각에서는 “정치를 하려면 과감히 나가서 텃밭을 일궈야 한다”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한다. 김병준 특보가 노대통령과의 교감을 전제로 대선 또는 내년 총선에서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 그 예다. 이제 범여권 대통합은 친노와 반노의 생존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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