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비트는 ‘X파일’ 막춤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6.25 09: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박 이어 박근혜 캠프에도 ‘굉음’…‘여권 인사 개입설’까지 나와

 
헌정사상 16번 대통령을 뽑았다. 이번 12월 대선은 제17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이다. 몇 차례의 ‘체육관 선거’가 있었지만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치곤 적지 않은 대통령 직접선거 경험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을 보면 난장도 이런 난장이 없다. 현직 대통령이 뛰어들어 야당 대선 후보들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청와대와 야당 후보가 고소·맞고소하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 같다. 이 모두 ‘현재의 권력’인 청와대와 현직 대통령이 선거판에 똬리를 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대선판 흔들기 시도는 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경고’로 제동이 걸렸다. 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벌써 네 번째 옐로 카드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선관위 경고 정도로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최측근 안희정씨는 “노대통령은 왕”이라고 표현했다. 노대통령은 이미 말 몇 마디로 고건·정운찬·김근태 등 대선 주자를 주저앉힌 바 있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 대표는 지난 6월14일 “홍준표·원희룡·고진화라면 몰라도 박근혜·이명박이 대선 후보가 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라고 큰소리쳤다. “그런 중요한 자료들을 우리가 갖고 있다”라고도 했다. 범여권이 보유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X파일’ 존재를 암시한 것이다. “자료가 매우 중요하며 대단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손님을 끌었다. X파일 공개 시기도 “한나라당 후보로 뽑힐 때까지 밝혀지지 않으면 우리당 후보가 선정된 이후 당 대 당 토론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나라당 후보 교체가 불가능한 단계에 폭로해 판을 뒤엎겠다는 얘기다.
장원내대표의 ‘이·박 X파일’ 암시가 나오자마자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에 대한 의혹 제기도 속도가 붙었다. 이명박 후보는 재산, 박근혜 후보는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가 의혹의 대상이다. 이 정도로도 두 후보는 자지러질 듯한 반응이다.
‘이명박 죽이기’ X파일이 선을 보이는 듯하더니 박근혜 후보 쪽으로 불길이 옮아붙는 양상이다. 그것도 여러 상상을 자극하는 최태민 목사, 또는 그 가족과 박후보 간의 관계이다. ‘부적절한 관계’를 연상시키도록 짜여 있다. 주간지에 어울릴 만한 내용이다.


 
월간지들 ‘박근혜-최태민 목사 의혹’ 집중 보도
월간 <신동아> 7월호는 “여당 내 한 인사가 전두환 정권 시절 박근혜 의혹을 조사한 것이라는 국가안전기획부 보고서를 <신동아>에 전했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후속 보도’를 주문했다는 것이다. <신동아>는 6월호에서 ‘박근혜 X파일’의 일부를 보도한 바 있다. 최목사와 박후보 사이를 상세히 보도하는 내용이다. 최목사가 ‘대자마마’로 불린 사이비 종교인이었고, 이름도 다섯 개나 되며, 온갖 비리를 저질러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강원도로 쫓겨갔거나, 구금되었었다는 내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최목사에 관한 내용을 보고받고 박후보와 격리시켰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한마디로 사이비 종교인에게 박후보가 정신없이 빠졌다는 뉘앙스로 읽히는 기사다. 또 신기수 전 경남기업 회장이 1979년 10·26 이후 당시 전두환 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박후보에게 서울 성북동 자택을 지어주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그런데 <신동아>에 따르면 “여당 인사는 이 중 성북동 자택 부분에 대해 ‘보도된 내용보다 훨씬 더 깊은 내막이 있다’면서 후속 보도를 주문했다”라고 한다. 이른바 박후보 X파일 ‘속편’에 해당되는 셈이다.
<신동아>는 ‘여당 내 한 인사’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여당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노대통령이 탈당하기 전까지는 열린우리당이 ‘여당’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열린우리당을 ‘여당’으로 통칭하곤 한다. 그렇다면 이 인사는 열린우리당 인사라는 얘기가 된다. 범여권의 핵심이다. <신동아>는 박근혜·신기수 간의 의혹을 기술하는 과정에서 ‘백원우 열린우리당 의원에 따르면 신씨는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던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의 이사도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의원의 비서관은 ‘관련 재단의 자료들을 일일이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도대체 뭘 암시하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월간조선> 7월호도 박후보 X파일을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마찬가지로 최태민 목사와 얽힌 스토리들이다. 요지는 박후보를 만나기 전까지 다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살던 최목사가 박후보를 만난 뒤 승승장구하며 엄청난 부를 쌓았고, 그 가족들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최씨 가족들이 모여 사는 동네 한복판에 박후보의 삼성동 저택이 자리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정도면 대충 뭘 말하려는 것인지 알 만하다.
최씨에 관한 기록을 들여다보면 더 엽기적이다. 그는 다섯 번 결혼했고, 한때 승려였으며, 사이비 기독교인 영생교 교주가 되었다가 1975년부터 어머니를 잃은 박후보와 인연이 맺어지게 되었다고 전했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아는 얘기다. 그러나 1994년 사망한 최씨의 다섯째 딸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시가 1백50억원 상당의 지하 2층·지상 7층 규모의 빌딩을 갖고 있고, 이 다섯째 딸의 남편이 박후보의 보좌관이던 정 아무개씨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기사 내용이 간단치 않다는 느낌을 준다. 다섯째 딸은 이 밖에도 1995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1백평 규모의 대지를 매입했고 여기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다가구 주택(19세대)을 지었다가 6년 전 팔았다고 한다. 매각 당시 시가는 30억원 정도.
또 최씨의 여섯째 딸 부부는 강남구 청담동에 대지 1백76평을 사들여 지하 4층·지상 9층짜리 1백50억원 상당의 빌딩을 신축했다. 1970년대 최씨를 아는 인사는 최씨가 박후보와 인연을 맺기 전 “불광동의 쓰러져가는 단칸방에 전화기도 없이 살고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박후보가 이사장으로 있던 대구 영남학원(영남대학교 소유) 이사로 최씨의 다섯째 부인과 그 부인의 전 남편 사이에 난 아들 조 아무개씨가 선임되어 있었다고 한다.
최목사의 자녀들 중 상당수가 박후보 집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는 내용에 들어가면 정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박후보 쪽에서는 “언론사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라는 대답이 고작이다. ‘모르고 있었는데 언론이 보도해서 알았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최목사의 다섯째 딸 남편은 박후보의 보좌관을 지냈다. 지금도 사조직을 이끌고 박후보를 돕는다는 것이 박후보 주변의 얘기다. 박후보는 이같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최목사는)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후 힘들었을 때 내가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감쌌다. 최목사를 음해하는 데 대해서는 “천벌을 받으려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라고 발끈하기도 했다.
박후보와 최목사 사이의 관계도 궁금하지만 ‘박후보 X파일’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박후보 역시 범여권의 사정거리에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특히 ‘여당 내 인사’가 X파일을 들고 돌아다니며 ‘후속 보도’를 종용한 것이 사실이라면 상황은 만만치 않다. 박후보를 노리는 매체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X파일과) 우리와는 무관하다”라며 펄쩍 뛰었다.
노대통령이 지난 6월19일 국무회의에서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에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국회에 제출하라”고 지시했을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노대통령은 “후보 유불리에 구애받지 말고 정부 보유 자료를 모두 공개하라. 대통령의 명령”이라고 못박기까지 했다. 뭔가 일이 벌어지기는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명박 괴롭히는 ‘BBK-김경준’ 의혹
이틀 뒤 이명박 후보와 BBK 간의 관련 여부에 관한 법무부·금감위·금감원 자료가 국회와 열린우리당에 제출되었다. 골자는 이 전 시장이 2001년 4월 김경준씨와 동업해 만든 LK이뱅크를 떠나기 5개월 전부터 김경준씨의 주가 조작이 시작되었으며, 주가 조작에 이 전 시장이 회장을 맡고 있던 LK이뱅크 계좌가 사용되었다는 내용이다. 또 김경준씨가 횡령한 회사 자금 3백84억원 가운데 1백84억원이 이 전 시장과 연관이 있는 (주)다스·심텍, 오리엔스 등 국내 계좌로 흘러들어갔다는 문건이 포함되었다. 열린우리당이 펄펄 뛰었음은 물론이다. 이후보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타난 현상만 놓고 보면 노대통령이 꼭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후보 관련 자료를 공표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의 비난은 신랄하다. 김경준씨가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인 2001년 7월 말부터 같은 해 12월 중순까지 횡령한 옵셔널벤처스 회사 자금 3백84억원 가운데 2백억원가량이 10개의 국내 계좌로 송금된 점을 근거로 이 전 시장의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면서 “김씨의 돈을 송금받은 수신자 중 국내 법인은 다스(이명박 후보 맏형 이상은씨 회사), 심텍(이명박 후보 고대 후배 회사), 오리엔스(이명박 후보 대학 동문 회사) 등 BBK에 투자한 기업들이며, 이들의 공통점은 이 전 시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주가 조작 당시 이후보는 혐의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이후보가 BBK와 관련해 “결백하다”라고 말해온 근거도 바로 금감원 발표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보는 김경준씨가 횡령한 돈 3백84억원 가운데 1백84억원을 왜 이명박 후보 관련 인사들의 국내 계좌로 입금했는지 명백한 반박을 하지 못해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보아야 한다.
BBK 자료는 이후보가 “한반도 대운하 연구 보고서를 청와대가 변조했다”라며 거세게 몰아붙이는 가운데 나왔다. 건교부의 횡설수설도 변조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부동산 전매 의혹과 위장 전입으로 코너에 몰렸던 이후보로서는 모처럼 호재가 굴러들어온 셈이다. 내친 김에 청와대를 아예 ‘정치공작소’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대선 구도를 노무현 대 이명박 구도로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음직하다. 이후보 대변인인 진수희 의원은 “안희정씨나 전해철 민정수석 등 청와대 몇몇 비서관들이 퇴근하고 공덕동에 있는 참여정부평가포럼에 가서 이런 작업(이명박 죽이기)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제보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진의원은 “청와대는 안희정·전해철씨 등 노대통령 핵심 측근들로 ‘이명박 죽이기 특별대책팀’을 구성해 배후에서 각종 공작을 기획 조정하고 있다”라는 논평도 발표했다. 이후보도 열린우리당의 이후보 위장 전입 의혹 폭로가 잇따르자 “친노 그룹이 국회의원도 접할 수 없는 정보로 계속 나를 공격하고 있다” “청와대 누군가가 개입됐다고 본다”라며 청와대를 배후로 지목했다. 대운하 보고서 변조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후보 진영까지 겨냥해 “권력측과 박후보측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라고 퍼부은 것은 망외의 소득이다. 아예 대운하 보고서 조작 의혹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도 추진할 기세이다. 열린우리당이 BBK 주가 조작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는 데 대한 응수이다.

 
이명박·박근혜 X파일은 이미 햇빛 속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맛보기에 불과하다. ‘X파일의 진수’가 터져나올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두 진영의 전략은 엇박자다. 대운하 보고서 조작 의혹이 제기되자 이후보측은 청와대를 물고 늘어지면서도 박후보측을 비난했다. “여권과 (이명박 죽이기)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라는 비난이 그것이다. 박후보측이 이른바 37쪽짜리 대운하 보고서를 토대로 이후보를 몰아세운 데 대한 보복이다.
그러나 야당 입장에서 주적은 어디까지나 범여권이다. 같은 야당 후보끼리가 아니다. 더 한심한 쪽은 박후보 진영. 대선 대결 구도가 청와대 대 이명박으로 구축되면서 박후보 진영은 외곽으로 밀려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이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불붙기 시작한 시점에 대운하 보고서 의혹이 불거짐으로써 그 열기가 식는 것도 불만이다. 이후보가 각종 의혹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보고서 의혹 때문에 자기네가 희생당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홍사덕 선대본부장이 “노대통령은 이후보를 돕는 백기사”라고 했을까.
박후보측은 범여권의 ‘이명박 죽이기’ 공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이다. 청와대를 비난하자니 이후보를 돕는 꼴이 되고, 가만 있자니 범여권의 ‘후보 검증’ 칼날이 자신들에게도 꽂힐 것이 분명해서다. 이후보 못지않게 외곽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박후보로서는 검찰의 이후보 ‘산악회’ 조직 압수 수색을 강 건너 불 바라보듯 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입을 다물고 있다. 이후보 진영의 이재오 의원이 여권 내 인사가 <신동아>에 박후보 X파일을 제공했다는 보도와 관련해  “<신동아>에 안기부 자료를 넘긴 여권 인사를 찾아라. 시중에 안기부 보고서, 국정원 보고서가 나돌고 있다”라고 박후보 편을 들고 나선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박후보 진영의 김재원 공동대변인은 “야당 집권을 허용하지 않기 위한 집권 세력의 총공격이 시작됐다는 조짐이 드러난 만큼 양대 주자가 공동 전선을 펼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이·박 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이후보측이 “여권과 박근혜 캠프가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라고 비난한 데 대해 “상대방을 향해 역공작을 펴는 것은 자멸의 길”이라고 반박했다. 홍사덕 본부장도 “경선에서 지게 되니 핏발 세우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박근혜 캠프 쪽의 고민이 담겨 있다. 이후보 쪽은 청와대·박근혜를 동시에 쓰러뜨리려는 반면, 박후보 쪽은 일단 이후보 쪽을 공격 타깃으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노대통령과 싸우면 ‘표가 쏟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전전긍긍이다. 이후보를 죽이자니 청와대가 활개치는 것을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고, 가만히 있자니 ‘이명박 대 노무현’ 선거가 되어 자칫 이후보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어서다.
아직까지 박후보 진영에서 이후보측과 공동 전선을 펴겠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와 이후보 간 싸움을 지켜보는 단계이다. 청와대는 이후보만의 적이 아니라 이-박 공동의 적이다. 만약 박후보 쪽이 “청와대는 ‘이명박 죽이기’를 중단하라. 우리는 집권 세력의 ‘김대업식 폭로’로부터 모든 한나라당 후보를 지키겠다”라고 나선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그래도 집권 세력은 끊임없이 X파일을 흘릴 테고, 언론은 집요하게 추적할 것이다. 이래서 박후보 진영은 전략 부재라는 평을 받는 것이 아닐까?  교통연구원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뿐만 아니라, 박근혜 후보의 ‘열차 페리’도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즉각 한나라당은 ‘신종 관권 선거’라며 공격하고 나섰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