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확성기 잡고 언론은 마스크 써라?
  •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
  • 승인 2007.06.2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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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에서 텔레비전이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친 최초의 선거는 1960년 케네디 대 닉슨의 대결이었다. 이때 케네디는 TV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철저히 준비한 반면 닉슨은 그렇지 못했다. 후보끼리의 첫 번째 TV 토론이 있던 날 케네디는 신경 써서 분장을 했다. 그러나 닉슨은 기본 화장만 하고 토론에 들어갔다. 게다가 닉슨은 부근에서 연설을 마친 뒤 급히 방송사에 들어와 토론 내내 땀을 뻘뻘 흘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등 자신 없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라디오로 토론을 들은 대다수 국민들은 닉슨이 케네디보다 잘했다고 했지만 TV를 지켜본 사람들은 케네디가 나았다고 평가했다. 결국 TV를 잘 이용한 케네디가 초기의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젊음과 패기의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TV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장 잘 연출한 사람은 단연 노무현 대통령이다. 주지하듯이 노대통령이 전국적으로 이목을 받은 것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1988년 5공화국 관련 국회 청문회였다. 그는 청문회가 열리는 동안 당시 국내 최대 재벌 총수였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몰아붙였고, 명패를 집어던지며 “전두환 살인마!”라고 외친 덕에 스타 정치인이 된 것이다. 지난 대선 레이스 중에는 기타를 치면서 눈물을 흘리는 TV 광고를 통해 탈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였다. 그렇게 해서 그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노대통령은 재직 기간 내내 역대 대통령 중 누구보다도 많은 TV 토론이나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남북 관계, 개헌 문제 등 주요 현안이 생길 때마다 어김없이 TV를 적극 활용했다.
올 들어서는 지난 4월2일 온 국민의 관심사였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 타결 직후 국민들에게 이를 보고하는 형식의 TV 연설을 했다. 이로 인해 오랜 기간 10%대에 머무르던 ‘인기 없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벗어나 지지도가 3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참가한 그동안의 TV 토론회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늘 일방적이고 대립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 6월17일 밤의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에 관한 노대통령과 언론 단체 대표들과의 TV 토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권 초기부터 언론과 날선 대립을 보여온 노대통령이 난항을 겪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고자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의 토론회였던 것이다.
노대통령 발언에서 합리성과 객관성을 찾기는 어려웠다. 노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토론회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토론회가 끝난 뒤 일부 언론에서는 토론자로 나온 패널들이 편향적으로 구성된 것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다. 물론 다른 토론자들의 발언에서도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었다. 토론자들을 잘못 선정했다는 얘기다. 그날 노대통령이 언급한 언론 관련 내용들을 들여다보아도 시비거리가 적지 않다.
우선 노대통령과 정부 쪽이 내놓은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그렇다. 방안은 ‘합동 브리핑 센터 설치’ ‘전자 브리핑 시스템 도입’ ‘정보 공개법 개정’ 등을 뼈대로 하고 있다. 문제는 합동 브리핑 센터가 설치되면 취재원 접촉을 대폭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합동 브리핑 센터는 공급자인 정부 위주의 브리핑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커져 언론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할 수 있다. 또 전자 브리핑 시스템이 도입되면 취재원인 공무원과의 직접 접촉은 공식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기자가 자유롭게 취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여지가 줄게 되어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보공개법 개정 역시 구체적 계획을 내놓고 있지 않다.


 
정보공개법부터 현실에 맞게 고쳐야
‘취재 선진화 방안’이 실행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헌법에 명시된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다. 언론계와 학계에서도 브리핑룸이 통폐합되고 전자 브리핑이 이루어져 언론의 취재 기회가 줄어들게 되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해왔다. 알 권리는 인권의 일부라고 할 만큼 중요한 권리이다. 국가 공공 기관과 사회 집단으로부터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그에 관한 취재·보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따라서 알 권리는 꼭 지켜져야 할 국민의 필수적 권한으로 정부는 이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과는 취재 환경이 달라 기자실을 줄인다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공직 사회의 취재 거부 사례가 느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위험성이 다분하다.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서 취재원을 만나기가 갈수록 힘들어져가고 있다. 게다가 정부마저 취재를 제한하고 일방적으로 보도 자료만 배포할 경우 ‘발표 저널리즘’이 주류를 이룰 가능성이 크다. 발표 저널리즘이란 출입처 발표에만 의존해 기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런 발표 저널리즘이 확산될 경우 언론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부 처지만 앵무새처럼 전달할 가능성이 커져 언론을 통해 나오는 정보가 획일적이 되거나 조작될 확률이 높아진다.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고 실질적인 정보 공개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아직까지 정보 공개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 시행되어 기자실 통폐합, 전자 브리핑 시스템 도입이 이루어지고 공무원과 언론 접촉이 제한된다면 큰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 도입을 논의하기 전에 ‘정보공개법’의 확대 시행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정보공개법이란 ‘공공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로서 공공 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공개 청구와 공공 기관의 공개 의무를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현행 정보공개법은 예외 조항들이 너무 많고 공무원들이 악의적으로 업무를 태만히 했을 때에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 그런 만큼 전자 브리핑이 시행된다고 해도 기자들의 취재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이 도입될 경우 정보 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실한 기사를 양산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하고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말한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성급히 도입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날 토론회에서는 이같은 방안의 시행을 보류하기로 하고, 언론인과 공무원 사이에 태스크포스(task force) 팀을 만드는 것에 대해 노대통령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 그나마 소기의 성과는 얻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큰 제도의 도입에 대해 그런 성과만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정보 공개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민감한 사안에는 정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노대통령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의 TV 토론으로 모든 상황을 무마할 수는 없다. 노대통령과 정부는 열린 자세를 갖고 반대 의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노대통령이 지금처럼 언론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절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언론과의 대립은 더욱 깊어지고 언론 문제에 대한 해결도 힘들어진다. 노대통령과 정부가 우리나라의 취재 환경을 직시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안을 찾을 때만이 올바른 언론 개혁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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