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뿔이’ 범여권 “임은 먼 곳에"
  • 오윤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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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따로 생각 따로, 통합 방정식 ‘막막’…빅 3도 ‘동상삼몽’

 
12월 대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등 범여권의 모습은 아수라장에 가깝다. 이래서야 선거를 어떻게 치를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범여권 양대 주주의 한 축인 노무현 대통령은 민주당 중심의 통합을 “도로 민주당식 지역주의”라고 비난하며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겠다”라고 말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 중심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노대통령과의 마찰을 불사하고 나섰다.
민주당과 중도개혁신당은 통합민주당으로 합쳐져 원내 제3당의 위치로 올라섰다. 반면 제3지대에서 통합의 틀을 만들겠다던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은 ‘노무현 프레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방황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잔류파들은 7월10일께 탈당파와 시민사회 진영을 규합해 신당을 만들겠다고 결의했지만,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제3지대파들은 열린우리당 탈당파만으로 7월20일쯤에 대통합 신당을 만들겠다고 광고하고 있다. 국민 처지에서 보면 통합민주당은 ‘도로 김대중당’이고,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들이 몸부림치는 대통합도 결국 ‘도로 열린우리당’에 불과할 뿐이다. 오죽하면 문희상 전 의장이 인터넷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반한나라당이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한다”라고 주장했을까.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사생결단이라도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요즘 조용하다. 박상천 민주당 대표,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이해찬·손학규·한명숙·김혁규 등 범여권 유력 대선 주자들을 잇따라 면담해온 김 전 대통령의 동정이 언론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6월13일 후부터다. 대체 DJ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DJ가 언론에서 모습을 감추기 직전, DJ와 노대통령은 한바탕 격돌했다. 노대통령이 DJ의 충청-호남의 ‘서부 벨트’ 구축에 의한 대통합 전략을 맹비난하면서다. 그는 6·10 항쟁 기념사를 통해 “도로 민주당식 지역주의로 회귀하는 것이며 수구 세력에게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지역주의를 부활시켜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DJ는 그로부터 3일 후 CBS 특별 대담에서 “노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을 중심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게 당연하며, 민주당이 특정 지역에서 강세였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을 배척한 것도 아니고 따라서 민주당이 지역주의라는 건 맞지 않다”라고 맞받았다. 두 사람 간의 마찰은 열린우리당의 존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불꽃이 튀었다. 노대통령의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열린우리당 고수이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은 3김으로 대표되는 망국적 지역주의 해체를 위한 정치적 용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DJ는 한나라당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범여권 대통합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서는 범여권 안에서조차 배척당하는 열린우리당을 해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저히 접점이 없다. 노대통령으로서는 DJ식 대통합은 ‘도로 민주당’ ‘도로 김대중-호남당’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대통령과 DJ 사이에 무슨 일 있었나


 
노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묘한 일이 벌어졌다. 6월17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선진평화연대’ 창립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던 박지원 전 비서실장이 불참한 것이다. 불참한 배경도 알려지지 않았고, 양쪽 모두 설명이 없다. 다만 DJ의 침묵이 길어지기 시작한 시점에 일어난 일이어서 노무현-DJ 간 모종의 충돌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추측만 나돌 뿐이다.
박 전 비서실장이 손 전 지사 행사에 불참하기 직전까지도 손 전 지사에 대해서 DJ가 새로 입양한 ‘양자’라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DJ로서는 북한을 다녀와 동교동으로 달려가 방북 결과를 보고하는 모습이나, 입만 열면 햇볕정책을 찬양하는 손 전 지사가 믿음직해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그 무렵 DJ- 손학규 밀약설이 파다했다. 동시에 박상천 대표의 민주당에서도 손 전 지사를 대선 후보로 눈여겨보는 눈치였다. 따라서 박 전 실장이 손 전 지사의 행사에 참석한다 해도 하나 이상한 모양새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참했다.
노대통령은 DJ의 대통합 전략을 비난했고 DJ는 반발했다. 그후 도대체 무슨 사단이 생겼는지, 생겼다면 어떤 사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현직이다. DJ는 전직이고. 보유한 ‘힘’과 ‘수단’은 비교가 안 된다. CBS 여론조사에서 DJ가 범여권 후보 선출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45.4%, 노대통령이 더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의견은 30.3%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DJ가 ‘자연 상태’에 있을 때의 얘기다. 뭔가 ‘족쇄’가 채워진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박 전 실장의 ‘위축’은 노무현-DJ 충돌 후 적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음을 암시한다.
DJ의 침묵을 노대통령 대선 전략에 대한 ‘동의’로 해석하는 것은 성급하다. 범여권 동향은 오히려 노대통령에게 불리하고, DJ 페이스대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DJ의 양자로 불리는 손학규 전 지사가 범여권 대열에 합류하고, 후보 중심의 대통합 기류가 확산됨에 따라 “대통합이 안 되면 후보 단일화라도 해야 한다”라는 DJ 구상이 먹히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노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열린우리당 해체 기류도 완연해지고 있다. 정세균 의장 등 지도부가 열린우리당 해체를 전제로 시민사회 세력과의 대통합 신당을 추진 중이다. 노대통령으로서는 DJ가 침묵해도 대세를 되돌리기 쉽지 않은 처지이다. DJ의 침묵은 가만히 있어도 자기 구상대로 굴러가는 범여권 동향과 관련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손학규·정동영·이해찬은 범여권의 ‘빅 3’이다. 지지도를 다 합쳐보아야 10%도 안 되지만, 20여 명에 가까운 범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그나마 ‘메이저급’이다. 이들은 모두 ‘대통합’을 들고 나왔다. 지리멸렬한 범여권 통합의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들 3인의 대통합을 향한 속내들을 들여다보면 내용과 의미가 다르다. 대통합이든 중통합, 소통합이든 순탄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성급한 결론이 나온다. 손 전 지사의 국민 대통합론은 범여권 통합만으로는 “기회가 없다”라는 판단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는 범여권에 아예 기반이 없다. 안영근·김부겸 등 범여권 출신 ‘일곱 난장이’ 국회의원 7명이 그를 지원한다지만 이들과는 호적부터 다르다. 그로서는 ‘국민’을 끌고 들어가야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 한나라당 탈당 전력을 희석할 필요도 있다. 범여권 합류에 앞서 ‘선진평화연대’를 조직하며 각계 인사를 아우른 것도 범여권 동참을 위한 정지 작업이었을지 모른다. 특히 손 전 지사는 그를 낙마시키려는 노대통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범여권 합류는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대통합이 노대통령과 친노 세력의 열린우리당까지 포함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경우 그는 상대의 공격에 노출되고 만다. 친노 후보인 이해찬 전 총리는 손 전 지사가 합류하자마자 ‘기회주의자’라고 쏘아붙였다. 또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도 그에게 “한나라당 탈당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울 길이 없다”라고 낙인찍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김영환 전 의원도 그의 범여권 합류를 ‘위장 전입’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후보와 한나라당 탈당 후보가 싸우면 결과가 뻔하다”라는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의 ‘분열·배제 없는 대통합’이나, 이해찬 전 총리의 ‘친노를 아우르는 대통합’은 얼핏 유사하게 들린다. 그러나 험난한 계곡이 가로놓여 있다. 우선 정 전 의장은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고, “우리나라에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라고 일갈함으로써 ‘세계적 대통령’을 자처하는 노대통령을 건드렸다. 그는 참여정부의 언론과의 전쟁, 낙하산 인사 등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했다. 노대통령과는 일찌감치 동행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노대통령은 최근 정 전 의장에 대해 “정치적 신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보면 그의 ‘분열·배제 없는 대통합’은 “열린우리당은 빼고”이다. 유시민·김두관 같은 친노 직계들도 물론이다. 그의 눈은 이제 막 통합한 박상천·김한길 공동대표의 통합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제3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을 향해 있다는 얘기다. ‘분열·배제 없는 대통합’은 73석으로 줄어든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의 추가 탈당도 재촉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무현 프레임’을 깨려면 열린우리당 해체 또는 왜소화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골수 친노 세력만 빼고 탈당하면 손잡고 정권 재창출에 나서겠다”라는 뜻이다. 노대통령이 ‘신의’ 운운하며 그를 비난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한 김근태 전 의장이 주도하는 대선 후보 연석회의에 ‘후보’ 자격으로 참여하는 것도 께름칙할지 모른다. 언제 어디에서 “당신도 출마 포기를 선언하라”고 돌팔매가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소통합이냐, 중통합이냐, 대통합이냐


이해찬 전 총리의 ‘친노를 아우르는 대통합’은 손학규-정동영의 대통합에 대한 카운터다. 노대통령과 친노 그룹의 열린우리당을 배제하려는 세력을 향해 던지는 “우리를 물 먹이지 말라”는 호소와 몽니가 담겨 있다. 이 전 총리는 범여권 대통합 기류에서 가장 난처한 처지이다. ‘대세’를 따르자면 대통합 대열에 합류해야 하지만 ‘대의’를 존중하자면 열린우리당을 사수해야 한다. ‘대의’는 노대통령의 철학이다. 다만 노대통령도 “대통합에는 반대하지 않겠다”라고 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도 같이 하자”며 ‘친노를 아우르는 대통합’을 외치는 것이다. 그로서는 친노 그룹 등 골수 열린우리당 세력이 함께하지 않으면 범여권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 전 총리가 범여권 ‘빅 3’로 올라선 것도 노대통령 없이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패한 전력이 있다. 그런 그를 국무총리에 임명해 전권을 맡기다시피 한 노대통령 없이는 오늘의 그를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대선 후보로서의 이 전 총리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친노 세력들은 ‘대통령감’이라고 하지만,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은 “지금까지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경선 등 총선을 제외한 크고 작은 선거에서 모두 패하지 않았느냐”라면서 “이것이 이 전 총리의 최대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동안 정치적 처신만을 잘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대통령 양측에서 지지를 받았다”라고 곱지 않은 눈길을 던졌다.
이 전 총리와 같은 친노 계열인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은 “나는 확실히 검증된 후보”라는 이 전 총리의 자화자찬에 대해 “총리로서 내세울 업적이 없다. 골프 실력 하나는 확실히 검증됐다”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충남의 선영을 찾아 선대 묏자리 풍수까지 살폈지만, 범여권 안에서부터 부는 역풍이 기분 좋을 리 없다.
열린우리당이 7월10일께 이미 탈당한 의원들과 시민사회 세력을 묶어 창당키로 한 대통합신당은 열린우리당 해체를 전제로 한 것이다. 대통합 신당 창당 당론은 6월26일 워크숍에서 결정되었는데 모임에는 소속 의원 73명 중 53명이 참석했다. 열린우리당 해체에 소속 의원 대부분이 동의했다는 얘기다. 불참한 20명은 열린우리당 사수를 주장하는 친노파들로 짐작된다. 워크숍에서 이의가 나왔다면 친노파인 이광철 의원이 “대통합이 성사되지 않으면 후보 단일화 작업도 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정도이다.
이에 앞서 김원기 전 국회의장, 문희상·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등이 6월22일 3년 반 전 민주당 분당에 대해 “죄송하다”라고 사과했다. 김 전 국회의장 외에는 모두 열린우리당을 탈당했기 때문에 굳이 사과하거나 따질 필요가 없는 처지이다. 이들은 게다가 민주당을 포함한 대통합에 치중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의장은 다르다. 그는 민주당 분당 때 ‘신당(열린우리당)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노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열린우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민주당에 머리를 숙인 것이다.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인사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민주당 분당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왔다. 김 전 의장은 여기에 부응했다. 놀라운 일이다. 당장 친노파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총선이 가까워지니 국회의원 배지에 눈이 멀어 추파를 던지는 것”이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김 전 의장의 지역구는 전북이다. 내년 총선에 민주당의 바람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설 자리 좁혀지는 열린우리당과 친노 세력
지금 전개되고 있는 대통합·중통합·소통합 모두 노대통령에게는 같은 의미이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소통합의 상징인 통합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배제 없는 대통합’ 요구에 대해 “대통합은 애초 열린우리당이 실패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대통합을 위해 열린우리당을 살려야 한다는 한심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라며 매정하게 잘랐다. 열린우리당 이름이 존재하는 한 통합은 없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어떤 식의 통합이든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설 자리가 없다는 의미이다.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위장 탈당파’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왔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기는 했지만, 제3 지대에서 대통합 구도 속에 열린우리당을 안착시키기 위한 전위대를 자임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탈당할 때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이 “동감한다”라고 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런 그가 돌변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들끼리 7월20일 대통합 신당을 창당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제3 지대에서 범여권 대통합 분위기를 조성해 열린우리당을 안착시키겠다던 당초 계획이 흐트러진 것을 의미한다.
문 전 의장이 구상하는 신당은 자신이 대표 격인 열린우리당 탈당파들의 ‘대통합추진모임’ 소속 의원 43명이 대상이다. 전원이 참여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대통합에는 부족하지만 통합민주당보다는 큰 ‘중통합’이 된다. 문 전 의장은 “현실적으로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이 대통합 대열에 함께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통합이 불가피함을 설명했다. 여기에도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입지가 보이지 않는다. 문 전 의장은 아예 “이해찬 전 총리가 결국 열린우리당을 탈당할 것”이라고 대들보를 흔들었다. 이 전 총리를 대선 후보로 세워 범여권 후보 단일화를 꾀하겠다는 친노 세력의 구상을 깨려는 발언이다. 나아가 노대통령의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난센스”라고 일축했고, 노대통령이 집착하는 참여정부평가포럼에 대해서도 “정당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신문 기사를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라고 경계했다. 어느새 몸만 열린우리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마음도 노대통령으로부터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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