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정당’ 굴레 벗겨내려나
  • 김유진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7.0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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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 대형 주자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이인제 의원은 ‘3수’ 도전 선언

 
국민중심당에서 민주당으로 옮긴 이인제 의원은 얼마 전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 외교·안보·국방·통일은 대통령이 맡고 경제·사회·문화·복지·교육 등은 의회가 책임지는 이른바 ‘이원 정부제’를 공약하겠다”라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출마한다면 세 번째 도전이다. 세 번 이상 대선에 도전한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4번)밖에 없다. 그러나 이의원의 대선 출마 예고가 주는 긴장감은 과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 주목도도 약하다. 1997년에는 경선 불복→출마의 불명예를 안고도, 2002년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밀리자 중도 포기했던 그다. “또 그 타령이냐”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국민중심당 후보 출마를 포기하고 민주당으로 옮기면서 ‘복당’이라는 표현을 썼다. 1998년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국민신당을 해체하고 민주당에 입당했던 옛 호적을 되살린다는 의미이다. 그로서는 1997년 ‘경선 불복→독자 출마’로 김대중 정권 탄생에 ‘효자’ 노릇을 했던 것에 대한 민주당의 ‘보은’을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그를 두려운 상대로 보는 눈치가 아니다. 추미애·김영환·김민석·장성민 등이 자칭 타칭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다. 김한길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도 가세할 움직임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당원이 대선 후보 경선을 선언하면 민주당에서 이를 거부하기 힘들다.
이인제 의원을 포함해 통합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손님 끌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들 중 누구도 여론조사에서 0.1%라도 수치에 잡히는 지지율을 얻지 못하고 있다. “옥석을 가리겠다”라고 큰소리쳐온 통합민주당 지도부가 고개를 숙이고 대선 후보 영입을 위해 추파를 던지기 시작한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 때문이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유만만했다. 통합민주당으로 합당되기 전 민주당 때다. 박상천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해찬·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장 출신인 정동영·김근태·신기남, 각료 출신인 천정배·유시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병준 등을 ‘살생부’에 얹었다. 박대표는 “한 사람도 탈락자 없이 대통합에 동참해야 한다”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부를 받고도 버텼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마땅한 대선 후보가 없는 ‘불임 정당’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김근태 의원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더니 어느새 정동영, 손학규를 모으고, 열린우리당 이해찬 전 총리와 김혁규 의원까지 대선 후보 연석회의에 불러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통합민주당은 대선 후보 연석회의에 초대받지 못하는 ‘왕따’ 신세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손학규·정동영·이해찬·한명숙·김혁규·천정배 등 대선 예비 주자 6인이 ‘단일 정당·단일 후보’ 원칙에 합의한 것은 통합민주당에 ‘물을 먹인’ 사건이다.

 

러브콜 받은 손학규·정동영 ‘시큰둥’


박상천 공동대표는 “손학규 전 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중도개혁주의 노선에 동의하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노선에 동의하는 한 통합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정 전 의장에 대해 ‘국정 실패 책임자’로 매도했던 것이 불과 한 달여 전의 일이다. 박대표와 김한길 공동대표가 손학규·정동영 두 사람을 직접 만나겠다고 했다. 박대표가 6월27일 창당대회에서 “늦어도 9월 추석 전에 통합민주당 대선 후보를 내놓을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궤도 수정을 할 수밖에 없음을 자인한 셈이다.
김근태 의원의 ‘대선 후보자 연석회의’가 본격화됨으로써 통합민주당은 결국 설 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통합민주당은 열린우리당 해체를 통해 몸집을 불려 ‘대통합’을 이루고, 여기서 대선 후보를 만들어 정권 쟁취를 노릴 생각이었지만 ‘대선 후보 연석회의’는 정당 중심 대통합이 아닌, 후보 중심 대통합으로 궤도가 선회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의 열린우리당 배제론은 여전하다. 박상천 대표에 비해 유화적이었던 김한길 대표까지 문희상·김근태·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세 사람이 ‘배제 없는 대통합’을 주장하자, “열린우리당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시도는 구악이고, 대통합 탈을 쓰고 대통합을 가로막는 반통합 형태”라고 쏘아붙였다. “대통합 논의는 애초 열린우리당이 실패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합에는 찬성이지만 열린우리당 간판을 단 어떤 조직하고도 통합하지 않겠다는 매몰찬 선언이다. 따라서 손학규·정동영 두 사람에 대한 손짓은 대선 후보 연석회의 형태나 열린우리당이 가세하는 형태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개인 자격’으로 민주당 경선에 합세해달라는 것이다.
김근태 전 의장이 주도하는 연석회의는 손 전 지사를 끌어들임으로써 탄력이 붙었다. 정동영 전 의장과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등의 참석도 이끌어냈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기서 손학규·정동영 두 사람을 뽑아낸다면, 연석회의는 그야말로 ‘노무현 직계들의 잔치’로 전락한다. 민주당이 노린 게 바로 이것이다. ‘대선 후보 연석회의 허물기’이자 열린우리당 부활을 저지하는 쐐기이다. 때맞추어 이인제 의원과 추미애·김영환 전 의원은 연석회의 불참을 예고했다.
그러나 문제는 손학규·정동영 두 사람. 모두 민주당 제안에 부정적이다. 손 전 지사측은 “민주당이라는 작은 울타리보다 비한나라당 세력이 결집하는 완전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해야 국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라고 했고, 정 전 의장측도 “한나라당 집권을 막고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큰 통합의 국민경선이 필요하다”라고 일축했다.
이에 영리한 이인제 의원이 “범여권 연석회의에 불참하겠다”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라며 “범여권에서 마음이 급하니까 나에게도 접근을 하는데, 그것은 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저런 후보를 다 모아 경선을 위한 정당을 적당히 만들어 흥행 요소를 섞으려는 것 아니냐”라며 노골적인 불신도 드러냈다. 결국 ‘독자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범여권 지지율 1위인 손 전 지사에 대해서는 “나는 경선도 치르기 전에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전 지사와는 다르다”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들러리 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통합민주당은 과연 ‘불임 정당’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인제 의원은 대선 삼수에 도전할 수 있을까? 대선 주자 없는 통합민주당의 고민이 끝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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