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이 살아야 한국 축구가 산다
  • JES 제공 ()
  • 승인 2007.07.0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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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본색’ 보여줘야 아시안컵 우승 가능

 
아시안컵 대회(7월7~29일)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지난 6월15일. 핌 베어벡 감독은 딱 한 명의 선수를 놓고 고심했다.
부상만 없다면 주저없이 발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왼쪽 무릎 통증으로 인해 재활 중이었다. 베어벡 감독은 ‘마음의 주사위’를 던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에 대한 미련이 짙었다. 그간 대표팀은 킬러 부재에 시달려왔다. 47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서는 그의 존재가 절실했다. 마침내 베어벡 감독은 자신의 입을 통해 그의 이름을 호명했다. 바로 ‘사자왕’ 이동국(28·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이다.
지난해 4월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갑작스러운 십자 인대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도중 하차한 이후 1년2개월 만의 복귀였다. 어지간한 선수면 마음을 접을 만도 했다. 하지만 베어벡 감독은 중요한 시점에서 정상 컨디션이 아닌 그를 선택했다. 베어벡 감독은 당시 기자 회견을 통해 “이동국을 대체할 만한 선수는 없다. 조별 리그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8강 토너먼트 이후를 바라볼 수도 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에 대한 강한 애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는 ‘대표팀 미래는 그의 발에 달려있다’는 절박한 심정도 깔려 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영표(토트넘)·설기현(레딩) 등 프리미어 리거 3총사의 부상 결장도 한몫했다.


베어벡이 이동국을 사랑하는 까닭


그가 베어벡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풍부한 A매치 경험과 골 결정력이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와의 예선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A매치 64경기에서 22골을 터트렸다. 조재진(30경기 8골)과 우성용(11경기 4골)에 비해 월등히 앞서 있다. 특히 그는 ‘아시안컵의 사나이’라는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아시안컵에서 강한 면모를 과시했다. 2000년 레바논 대회에서 6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2004년 중국 대회에서 4골을 터뜨려 모두 10골을 기록 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가 베어벡 감독이 구사하는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핵심 요원이기 때문이다. 베어벡은 “이동국은 한국 선수들이 갖고 있지 않는 여러 장점들을 고루 갖췄다. 강한 체력과 타점 높은 헤딩력, 그리고 골 결정력이다”라고 말했다.
베어벡의 멘트는 K리그 득점 순위표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올 시즌 K리그 정규 리그 득점 순위에서 1~6위까지가 용병 스트라이커다. 이를 뒤집어보면 그보다 더 뛰어난 국내 공격수를 찾을 수 없다는 것과 통한다.
베어벡은 “이동국은 원톱이나 처진 스트라이커 모두를 소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동국-조재진 카드는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최적의 조합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할 때 ‘타깃 맨’ 역할을 할 수 있고, 사이드로 빠져 상대 수비를 끌어낼 수 있다. 또한 문전에서 강한 몸싸움을 통해 머리와 발로 골을 넣을 수 있는 멀티 공격수의 전형이다.
그는 지난 6월23일 대표팀의 제주도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하지만 전훈 초기 그는 완벽한 컨디션을 보이지 못했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것이 큰 요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훈련 3일째에는 왼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정밀 진단을 위해 병원을 수소문하는 등 대표팀에 비상이 걸렸다. 다행스럽게도 단순 타박상으로 밝혀져 한시름을 덜었다.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베어벡 감독은 6월29일 벌어진 이라크와의 친선 경기에 그를 전격적으로 스타팅 멤버에 포함시켰다. 전술적인 목적 외에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배려였다. 그로서는 지난해 3월1일 앙골라전 이후 4백86일 만에 치르는 A매치였다.
이날 중앙 공격수로 출전한 그는 45분을 뛰며 24번의 볼터치와 68%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특히 5개의 슈팅을 날리며 골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년 이상 대표팀 공백과 최근까지 무릎 통증으로 시달리던 선수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전반 19분 최성국의 발끝으로 정확히 배달한 패스와 전반 26분 김상식의 패스를 받아 과감하게 상대 골문을 정조준한 것은 압권이었다. 김성수 포항 GK 코치는 “체력 문제만 보강하면 흠잡을 데 없는 플레이를 펼쳤다. 왜 이동국이 국내 최고 스트라이커인지 보여준 경기였다”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이 경기를 통해 수비를 하지 않는다는 오해도 풀었다. 그는 마치 공격형 미드필더로 착각될 만큼 폭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를 곤혹스럽게 했다. 최경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중압감 있는 경기를 한 덕분인지 한결 여유 있어 보인다”라고 평가했고, 정해성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은 “볼 키핑력과 움직임은 역시 최고 수준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프리미어 리거 3인이 모두 부상으로 낙마해 시름에 잠긴 베어벡 감독의 마음에 ‘희망과 안정’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이동국, 부족한 2%를 채워라”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라크와의 A매치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보였지만 아직 2% 부족했다. 킬러의 제1 조건인 골맛을 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불에 덴 아이는 불을 무서워한다”는 말처럼 부상 재발 우려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을 떨쳐야 한다.
그는 이라크전을 마친 후 “비교적 오늘 플레이에 만족한다”라며 “아시안컵 개막전까지 충실하게 몸을 만들어 대표팀의 우승을 돕고 싶다”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그는 “움직임이나 볼 터치 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약간의 두려움은 있다. 이런 증상은 부상 회복 단계의 선수라면 누구나 느끼는 요소다”라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한 차례의 실전 테스트를 통해 이같은 두려움은 어느 정도 극복되었지만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 한국의 첫 경기인 사우디아라비아전(7월11일)까지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한다. 현재 아프신 고트비 코치가 이동국의 훈련 상황과 몸 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있고, 홍명보 코치는 외국인 코칭스태프가 잡아내기 힘든 감정 변화까지 체크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 역시 대표팀에서 즐거웠던 기억을 생각하며 골에 대한 집중력을 서서히 끌어올리며 결전의 날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공격수로서는 드물게 2000년과 2004년에 이어 아시안컵 3회 연속 출전한다. 그러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0년에는 준결승, 2004년에는 8강에서 모두 고배를 들었다. 따라서 우승에 대한 갈증은 그 어느 누구보다 간절하다.
특히 아시안컵을 앞둔 상황에서 그에 대한 외신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AFP 통신은 7월2일 “아시안컵에서의 한국의 성적은 이동국의 발에 달려 있다”라고 보도했다. 결국 그가 살아나야 태극호가 활짝 웃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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