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손학규, 숨막히는 대리전
  • 이명수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8.06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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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비장의 카드’로 맞서…박상천·조순형은 ‘제3의 적’

 
합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 속에 얼개가 갖춰진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을 ‘미신당’이라고 불렀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을 ‘우리당’ 대신 ‘열우당’으로 부른 것과 같은 의도적 ‘무시’이다. 통합민주당을 와해시켜 범여권을 한데 모으려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묻어난다.
다른 한편에서는 열린우리당 사수파들의 저항도 시작되었다. ‘열린우리당 지킴이연대 비상대책위’라는, 신당처럼 이름도 긴 조직이 “열린우리당 지도부나 참여정부 장관 직을 수행했던 자들이 탈당 행렬을 이루고, 이미 탈당했거나 당에 남은 지도부는 당 해산을 외치고 있어 통탄스럽다”라며 당 해체 반대를 결의했다. 정동영·김근태·문희상 전 당의장과 정세균 현 의장 등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비상대책위에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원웅 의원도 가세해 “대통합신당이 정체성이 있는지, 국민적 감동을 갖고 창당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열린우리당 사수’를 선언했다. 이미 열린우리당 해체는 시작되었고, 정세균 당의장은 열린우리당의 신당 흡수 합당 의지를 천명했다.
직전 집권당이, 그리고 100년 정당을 자임했던 열린우리당이 신당에 빨려 들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통합민주당도 ‘DJ 앞의 촛불 신세’이다.
박상천 대표나 조순형 의원이 버틴다지만 ‘훅’ 불면 언제 날아갈지 모른다. 김 전 대통령의 ‘완승’이다. 온갖 굴욕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차남 김홍업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것도 결국 그를 통합민주당에서 탈당시켜 대통합신당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동교동은 쾌재를 부르기 시작한 분위기이다. 그 반대편에는 열리우리당 붕괴를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기는’ 격이라고나 할까.

전·현직 대통령들의 2차 진검 승부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은 노대통령의 ‘대의’가 김 전 대통령의 ‘대세’에 밀려 파생한 실물이다. 노대통령이 그토록 “지역주의 회귀”라고 비난했지만 구 민주당 세력까지 끌어안은 “잡탕”이 ‘대의’를 표방한 열린우리당을 압도하고 만 격이다. 노대통령이 잠잠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범여권 재편 드라이브에 역부족을 느꼈기 때문일지 모른다. 믿었던 이해찬·한명숙·김혁규·김두관까지 신당의 대선 주자 연석 모임에 달려가는 모습을 보는 노대통령의 심정이 어떨까도 궁금해진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신당에 흡수된다고 해서 노대통령의 승부욕이 꺾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열린우리당이 풍전등화 신세이지만 정치인으로서 노대통령의 DNA를 상속할 후계자를 통해 재집권한다는 구상까지 포기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다만 자신이 미는 대선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의 영향권 속에 있는 범여권 경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12월 대선에서의 승리는 그 다음이다. 노대통령이 DJ의 범여권 대통합 대공세에 맞설 수단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범여권 단일 후보가 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애초부터 대통합보다 ‘범여권 단일 후보’를 선호해왔다. 그러나 대통합으로 큰 물살이 잡힌 마당에 열린우리당을 붙잡고 아쉬워해보아야 마음만 산란해질 것이다. 몸과 마음을 추수려 ‘노무현 버전’을 살려야 한다.

 
더구나 노대통령 입장에서는 대통합신당이 “손학규를 위한” 모양새로 굴러가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자마자 동교동을 성지 순례하듯 뻔질나게 드나들고, 김 전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애지중지해온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DJ-손학규 밀약설’이다. 동교동 ‘폭로 전문가’ 설훈 전 의원이 “손 전 지사가 임기를 마치기 몇 달 전 경기도지사 관사로 찾아가 ‘밀어드릴 테니 한나라당을 탈당하라’고 권유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도 이를 간접적으로 말씀드렸다”라고도 했다. 손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이 ‘동교동 작품’이라는 반증이다. 게다가 설 전 의원이 손 전 지사 선거 캠프에 합류한 마당이다. 실제로 정동영 등 몇몇 대선 주자 진영에서 “DJ가 사실상 `’손학규 신당’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라며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손 전 지사 진영으로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 민주당 출신, 동교동계 인사들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생겨나는 반발이다.
노대통령은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하자 “보따리 장수”라고 비난했다. 언론이 그를 범여권 주자로 분류하자 “범여권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주파수가 안 맞는다는 얘기이다. 그런 손 전 지사가 범여권 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며, 동교동 지원 속에 범여권 대선 후보 자리를 넘보는 데 대해 노대통령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서 노대통령의 ‘이해찬 범여권 단일 후보’에 대한 집착이 더 강렬해질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열린우리당 해체를 감수한다고 해도 참여정부의 ‘적통’을 이어받는 이 전 총리가 ‘보따리 장수’ 손 전 지사에 밀리는 상황을 어떻게 감내하겠는가. 또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통합 후보라도 되는 날에는 노대통령은 그야말로 ‘빈털털이’ 신세로 전락한다. 열린우리당도 깨지고, 굴러온 돌이 범여권의 구심점이 된다면 직전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허전하고 불안하겠는가.
최근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속속 이해찬 캠프로 몰려가고 있다. 정태호 전 정무비서관과 김현 전 춘추관장 등이 이미 활동 중이고, 행정관 출신인 김성진씨도 그를 돕고 있다. 노대통령 직계 부대인 부산·경남 인사들도 밀고 있다. 노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노대통령을 도운 부산 기업인들도 이 전 총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 역시 총리 재임 중 이미 부산 기업인들과 골프 나들이를 한 바 있다.
노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의 출마를 만류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논란도 결국 이 전 총리 출마와 관련이 있다. 노대통령으로서는 이 전 총리와 유의원이 함께 경쟁하는 모습은 곤란할 수 밖에 없다. 유의원은 이 전 총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다. 노대통령이 유의원 출마를 만류했다고 해도 이상하게 볼 이유가 없다. 또 그럴 개연성도 높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이 전 총리를 범여권 단 일후보로 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조인스 조사에 따르면 노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가장 비슷한 후보 1위가 이 전 총리이다. 이 전 총리가 20.1%, 정동영 15.9%이다. 그런데 국민의 79%는 “노대통령이 지원하는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조선일보 7월2일 조사). 범여권 대통합으로 배를 갈아탄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노무현 프레임’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가 유시민 의원 등 친노파들의 대통합 합류를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노무현=이해찬’ 딱지가 붙는다면 본선 경쟁력을 걱정한 대통합파들이 이 전 총리를 기피할 가능성이 크다. 노대통령의 ‘참여정부 적자 후보’ 만들기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정황이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전 총리 지지율은 1~2% 수준이다. 범여권 후보 중에서는 손학규·정동영에 이어 3위 또는 4위이다. 그런데 복병이 등장했다. 통합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범여권 후보 2~3위로 등극했다. 이 전 총리는 여기서도 밀려났다. 이 전 총리가 “이명박·박근혜는 ‘한방’이면 간다”라고 아무리 큰소리쳐도 그의 지지율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노대통령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DJ가 지분 없는 손학규를 미는 이유
그렇다고 유시민 의원을 대입하자니 그는 대통합 신당 진입부터가 여의치 않다. 후보 경선 무대에 서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래도 노대통령은 승산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고 확신하고 있음직하다. 지금은 손 전 지사 지지율이 높지만 경선이 진행되면 ‘손학규=짝퉁 한나라당 후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치어보이’ 역할로 끝날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최근 부쩍 심해진 범여권 후보들의 손 전 지사 ‘이지메’를 보면 손 전 지사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대통령의 마지막 승부수가 손 전 지사를 어떻게 겨냥하고, 무슨 방법으로 이해찬 전 총리를 연착륙시킬지 흥미롭다.
김 전 대통령의 눈길은 ‘서부벨트’에 향해 있다. 1997년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DJP 연대라는 호남-충청 결합을 대선 필승 요건으로 확고히 믿고 있다. 2002년에는 노대통령이 ‘수도 이전’ 공약으로 충청권을 공략해 JP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웠다. 이번에는 그 충청이 ‘경기’로 이전되었을 뿐이다. 경기도 출신이자 경기도지사를 지낸 손 전 지사를 통해 호남-경기 결합을 꿈꾸는 것이다. 승산이 있는 계산이다. 충청보다 경기도의 파괴력이 훨씬 크다. 인구만 1천만명이 넘는다. 도를 두 개로 분할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정도로 규모와 잠재력에서 막강한 웅도(雄道)이다. 충청 인구 4백여 만명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다. 김 전 대통령의 빠른 두뇌가 이를 놓칠 리 없다. 호남은 장중(掌中)에 있는 터이다. 손 전 지사의 잠재력은 범여권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입증되고 있다. 정동영·이해찬·한명숙 등과 격차가 크다.

 
과연 김 전 대통령이 손 전 지사를 미는 이유가 이것뿐일까. 아니다. 우선 손 전 지사는 범여권에 지분이 거의 없다. 선진평화연대가 손 전 지사의 지지 세력이라고는 하지만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급조한 조직일 뿐이다. 중앙에만 모습이 갖춰져 있을 뿐 지역 조직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범여권에 ‘지분’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것은 정치적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의미이다. 만에 하나 손 전 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범여권, 다시 말해 김 전 대통령이 구축한 대통합 세력 위에 얹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말발’을 누가 행사하겠는가. 김 전 대통령과 동교동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4개월 뒤에 실시되는 국회의원 총선을 예측해보자. 손 전 지사가 대통령으로 공천권을 행사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범여권이 시민·사회 단체까지 끌어모아 정권을 만들었다면 지분은 이미 그들 몫이다.
그들 뒤에 누가 있는가. 아들까지 통합민주당에서 탈당시켜 합류토록 한 김 전 대통령이야말로 대주주이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 가운데 선두이고 경기 출신이며, 나아가 범여권에 지분도 없으므로 더 이상 안성맞춤 후보를 찾으려야 찾기 힘들다. 더구나 햇볕정책을 신주 받들 듯한 손 전 지사가 아닌가.
‘폭로 전문가’ 설훈 전 의원의 손 전 지사 캠프 합류는 심상치 않다. 그는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호화 빌라 폭로를 시작으로 이후보 20만 달러 수수 등 ‘이회창 저격수’였다. 한 쪽에 김대업이 있었다면 다른 한쪽에 그가 서 있었다. 그만큼 그는 노대통령 당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손 전 지사 진영에 핵심 참모로 들어갔다.
설 전 의원은 동교동의 막내이다. 김 전 대통령이 가장 총애하는 가신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손 전 지사 쪽에 갔다면 최소한 ‘양해’가 있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번에는 손 전 지사를 위해 어떤 선거 기획을, 특히 어떤 폭로를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아무튼 범여권 대통합은 성공 여부를 차치하고 일단 밑그림을 그렸다. 김 전 대통령의 ‘안마당’ 같은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그것은 노대통령의 역작인 열린우리당을 밟고 일어선 모습이다. 과연 열린우리당을 놓친 노대통령이 어떤 구도로 대통합에 대응할지 주목된다. ‘노무현 적자’를 통한 대반격이 머지않아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통합민주당 굴복 못 시키면 ‘역풍’ 맞을 수도
노대통령이나 김 전 대통령, 그리고 손학규 전 지사든 이해찬 전 총리든 극복해야 할 장벽이 있다. 대통합신당 합류를 거부하고 있는 통합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조순형 의원이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신당을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매도하고 있다. 상당한 근거도 있고 공감도 사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 간판으로 ‘무리하게’ 당선시킨 아들 홍업 씨를 탈당시킨 데 대한 역풍도 만만치 않다. 골수 DJ 추종 세력들이 동교동 집 앞에서 항의 시위까지 벌이는 마당이다. DJ의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박대표는 독자적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대통합신당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조순형 의원과 이인제·김영환 등 대선 주자들도 여기에 동의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김 전 대통령이 주도한 신당의 국민참여경선은 반쪽이 된다. 김 전 대통령의 위신과 체면이 반쪽 나는 것과 같다. 권노갑·박지원 등 측근들을 총동원해 압박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조순형 의원으로부터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노벨상 수상자답게 세계 평화 문제에 신경 쓰는 게 좋겠다”라는 면박만 돌아왔을 뿐이다.
통합민주당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열린우리당 사수파들이 준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고민이다. 통합민주당 요구가 ‘열린우리당 해체’ ‘친노 배제’이기 때문이다. 통합민주당 주장을 누르지 못하면 친노 그룹과 열린우리당 골수 세력의 반발은 피하기 어렵다. 유시민 의원은 이미 대통합신당의 모습에 대해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가고 있다”라고 어깃장을 놓았다. 전투적인 그의 성격으로 보아 곧 어떤 폭탄을 감고 나타날지 알 수 없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천신만고 끝에 엮은 대통합신당의 틀이 흔들릴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다.
이번에는 노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이미 지적한 대로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 전 대통령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DJ만의 리그’에 대한 방책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구상은 그래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범여권 대통합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노대통령의 반격이 정치적 흥미를 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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