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북풍 앞의 등 불’ 되는가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1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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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의 예상이 적중했다. 그동안 말만 무성했던 남북정상회담이 마침내 열리기로 결정된 것이다. 8월28일부터 30일까지이다.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불과 8일 뒤다. 공교롭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에게는 겨우 ‘1주일간 잔치’만 허용된 셈이다. 당연히 ‘북풍’을 입에 올린다. 8월 남북정상회담이 여간 껄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은 ‘북풍’의 시작일 뿐.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은 이미 답이 나와 있다. 평화 체제와 남북 경협 및 인적 교류의 큰 범주에서 벗어날 합의는 없을 것이다. 북핵 타결을 기대하지만 핵에 관한 한 북한의 상대는 미국이다. 혹 선언적 ‘핵 포기 용의’가 언급될 수는 있다는 것이 일부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문제는 정상회담 이후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평화 체제에 합의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그럴 경우 ‘평화’와 ‘화해’는 2007년 대선의 화두가 된다. 회담에 미온적인 한나라에는 당장 ‘수구’ ‘냉전 세력’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면 ‘평화’와 ‘전쟁’의 대립적 컨셉트가 동원되어 한나라당을 ‘호전 세력’ ‘전쟁 세력’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이는 전에도 범여권에서 사용했던 방법이다.
평화 체제는 군비 축소로 이어진다. 당연히 병역 제도가 수술대에 오른다. 군 복무 기간 단축은 단골 메뉴이다. 그런데 복무 기간 단축 카드는 너무 오래 써먹었다. 아예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꾸는 깜짝 카드가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젊은층의 표가 우르르 움직일 것이 뻔하다.
남북정상회담 결과와 북풍의 충격이 어떨지 정확히 예측하기란 어렵다. 그것은 노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속셈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어도 현재로서 자세히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12월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노대통령은 “한나라당 집권은 끔찍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집권 반대”보다 더 지독한 “집권 저지”이다. 북한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거의 매일 한나라당에 저주를 퍼부었다. “남한 인민들이여! 한나라당을 불길에 쓸어넣자”라는 식이다. 한나라당이 햇볕 정책을 수정해 수용했다지만 ‘구원’을 잊을 리 없다. 그래서 노무현-김정일 회담이 ‘대선용’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사실 남북정상회담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대선판을 뒤집을 마지막 변수가 그뿐이라는 관측에서이다.

 노무현-김정일의 ‘한나라당 집권 저지’ 회심작?

 
범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정동영·이해찬·손학규 세 사람의 표정이 가장 밝아졌다. 이들 모두 ‘평양’과 연을 대고 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통일부장관으로 북한을 방문해 유일하게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인물. 그때 찍은 사진은 그의 대선 선거운동 포스터나 진배 없다. 그는 김위원장에게 면전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해 약속받았다며 의기양양해하기도 했다. 개성공단과 관련한 공로도 자기 몫이라고 여길 것이다. 노대통령이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자신을 싸잡아 비난할 때마다 ‘평화 전령사’로 포장하고 빈번히 찾은 것이 바로 개성공단이다.
이해찬 전 총리. 그도 남북정상회담에서 소외될 수 없다. 사실상 노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의장을 만났다. 그리고 미국을 방문해 남한·북한·미국·중국 4개국 정상회담을 처음 입에 올린 인물이다. 숟가락을 들고 덤벼도 나무랄 수 없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햇볕 정책을 찬양하는 것으로 남북 열차에 편승하고 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자마자 햇볕정책의 ‘전도사’를 자임했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동교동이다. 마치 성지 순례라도 하듯.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에 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미친 ×”라고 욕한 것은 서로 잊기로 작정한 듯하다. 정동영·이해찬·손학규 3인은 저마다 주판알을 튕겨보았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남북 관계에 끈을 대고 있는 이들 세 사람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저조한 지지율이 상승하기를 학수 고대하는 눈치이다.
범여권이 연말 대선에 일말의 기대를 걸 수 있다면 그 카드는 남북 관계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집권당이 부스러기처럼 흩어지고, 범여권 통합에 ‘짝퉁’ ‘잡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후보나 제대로 뽑고 선거나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시계가 어둡다. 오죽하면 정동영 전 의장이 ‘7회 말 콜드게임’ 가능성을 토로했을까.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자마자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하는 동요 가사처럼 너나 없이 뛰어 오르는 모습이다. 범여권 잠재 주자들의 입에는 약속이나 한 듯 ‘평화’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
범여권이 기대하는 남북정상회담의 효과는 다양하다. 우선은 ‘한나라당 따돌리기’이다. 8월28일 평양 회담이 열리면, 아니 그 이전부터 한나라당은 지면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8월20일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중 누가 뽑혀도 반짝 관심만 모을 뿐이다. 미디어는 온통 정상회담과 평양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어느 당이든 대선 후보를 선출하면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인기가 치솟는 것이 정상인데 한나라 경선은 벌써부터 김이 샜다. 흥행 실패가 점쳐진다. 노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대선 후보를 압도한 채 요란하게 등장하려 할 것이다.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
범여권과 대선 주자들의 프로그램은 이미 짜여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평화 민주 세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포장하는 계획이다. 범여권이 표현하는 평화 민주 세력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열린우리당과, 여기에서 뛰쳐나가 열린우리당과 다시 합친 민주신당을 말한다. 시민사회 진영 극소수가 여기 가세해 있다. 그런데 지금 평화 민주 세력은 ‘무능’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민주당조차 열린우리당을 “국정 실패 책임자”로 낙인찍었다. 각종 재·보선에서 40 대 0의 참패를 당한 주축이 바로 평화 민주 세력이다. ‘왕따’‘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바로 그’ 평화 민주 세력이 남북 회담이라는 스테로이드 주사라도 맞고 기력을 회복하겠다는 얘기다.
그간 범여권에는 무엇 하나 변변하게 내세울 것이 없었다. 눈만 뜨면 ‘친노’ ‘비노’ ‘반노’로 갈려 삿대질해왔고, 이 당 깨고 저 당으로 옮기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이념과 노선을 중시한다는 386들은 여기에서 한 술 더 떴다. 볼썽 사나운 집안 싸움에 민심은 등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회담 카드가 나타난 것이다. 범여권의 지리멸렬을 치유할 ‘만병 통치약’으로 여길 만하다. 가뭄 해갈하듯 범여권은 정상회담을 찬양하기 시작했고, 남북 회담에 어정쩡한 한나라당을 ‘전쟁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데 일심 단결이다. 어차피 ‘비노’‘반노’는 북한이 한나라당 집권 저지를 위해 주장하는 ‘반보수 대연합’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결정적 무기는 이것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평화 민주 세력이 집권해야만 정상회담 후속 조처를 취할 수 있다”라는 호소이다. 열린우리당이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남북 합의는 휴지 조각이 될 것”이라고 퍼부은 것과 같은 흐름이다. ‘한나라당 집권=남북 관계 파탄’이라는 공식을 우격다짐이라도 해서 국민들 뇌리에 심겠다는 전략이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는 일찌감치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한반도에 전쟁 난다”라고 악담을 한 바 있다.

범여권, ‘북풍’타고 기사회생하나
국회 통외통위 소속 최성 의원은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한 다음 날인 8월9일 “(범여권) 대선 후보들이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정략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민주신당 소속이다. 또 민병두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이 처음 열리는 것도 아니어서 그것 자체로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소속이다. 민주신당과 열린우리당은 지난 8월10일 합당을 선언했다. 이들과 함께 통합신당에 참여할 임종석 의원 역시 “대선이 임박한 지금 상황에서 오히려 별 영향이 없을 것이다. 이번 회담에 내용이 없다면 오히려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라고 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경고이다. 평양 회담이 일정한 성과를 내고, 차기 정부가 그 성과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면 범여권 후보가 대선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정도의 기대 이상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이 남북정상회담에 어정쩡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남북 관계에 자신감도 좌표도 없는 모습이 노정되면, 의식 있는 유권자들을 빼내올 수 있다는 기대감 정도는 무방하다는 것이다. 역풍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나선 셈이다.
남북정상회담이 “‘대선용 아니냐”라는 지적은 충분히 ‘역풍’을 예감하게 한다.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당연히 국민 대다수는 남북정상회담에 찬성한다. 조선일보 조사에서 75.6%가 찬성했고 중앙일보에서는 80.5%가 지지했다. 2000년 4월11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남북정상회담에 78.1%가 환영한다고 답한 것과 비슷한 수치이다. ‘잘못된 일’이라는 견해는 20% 미만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이성’은 다른 답변도 동시에 내놓았다. 중앙일보 조사에서, 대선까지 불과 4개월, 대통령 임기는 6개월 정도 남았기 때문에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대해 53.3%가 동의했다. ‘그렇지 않다’는 44.4%이다. 이번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차례인데 다시 평양에서 회담이 개최되어 문제라는 지적에도 55.5%가 동의했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42.3%였다.
조선일보 조사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시기와 관련해 ‘지금 개최하는 것이 적절하다’(49.1%)와 ‘다음 정권에서 개최하는 것이 적절하다’(42.8%)가 엇비슷했다. 회담 개최 장소에 대해서는 1차 회담에 이어 이번에도 평양에서 갖기로 한 것을 두고 ‘적절하지 못하다’(58.5%)가 ‘적절하다’(35.1%)에 비해 많았다. 게다가 남북정상회담의 대선 영향력에 대해서도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을 것’(42.6%) ‘전혀 영향을 주지 않을 것’(13.2%) 등 과반수(55.8%)가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반면 ‘매우 영향을 줄 것’(11%) ‘약간 영향을 줄 것’(29.1%) 등 이번 회담이 대선 판세를 변화시킬 것으로 보는 의견은 40.1%였다.
대강 여론의 가닥이 잡힌다. 남북정상회담은 바람직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서두르는 모양새는 마뜩치 않다는 것이다. 평양 회담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지만, 범여권이 기대하는 수준의 ‘북풍’까지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흐름이다.
이런 여론은 인터넷에서도 확인된다. 발표 직후 온라인에서는 누리꾼들이 다양한 반응들을 쏟아내고 있다. “환영한다”라는 의견이 대부분인 가운데 “1회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라는 지적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6개월 남은 시점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치 쇼에 불과하다”라는 비판의 목소리, “아프카니스탄 피랍 사태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정상회담 발표가 국민의 시선을 분산하는 것 아닌가”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정권 말 대선용”이라는 비난과 “뒷거래는 없어야 한다”라는 경고도 온라인을 메웠다.
특히 노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보여온 것이 들통 났다. 겉으로는 “구체적으로 추진되는 게 없다”라며 부인으로 일관해오면서 뒤로는 국정원장을 평양에 두 차례나 보낸 사실이 밝혀져 정상회담을 불투명하게 추진했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다. 야당이 아니더라도 네티즌들이 제기하는 정상회담의 의도와 시기와 장소, 의제 등은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에 쏟아지는 국민들의 냉정한 시선은 범여권이 평양 회담에서 기대하는 ‘부가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분위기가 범여권에 흐른다는 것이 문제이다.
외국 전문가들의 지적은 더 따갑다. 남북 현안에 날카로운 `미스터 한반도`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 대학 교수는 “이번 회담이 시기와 장소, 이유 등 모든 면에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어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임기를 반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데다 지지율이 하락하는 노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며 “한국 국민들은 이번 회담을 대선용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분명하게 덧붙였다. 마치 한국 야당의 논평을 연상시킨다. 중국 쪽 전문가들도 호의적이지 않다. 베이징 인민대학의 외교정책 전문가 시 인홍 교수는 “한국 차기 대선에서 북한에 비판적인 한나라당을 저지하려는 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실적 목표”라고 회담 배경을 분석했다. ‘한나라당 견제용’으로 평가 절하한 것이다. 나라 안팎의 시선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북풍’은 효과가 있을까. 남북정상회담이 범여권에 유리하게,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리라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여론도 그렇게 기운다. 범여권은 환호 작약한 반면 한나라당은 의기 소침해하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역대 ‘북풍’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난다. 그 북풍이 ‘냉풍’이든‘ 온풍’이든 오히려 진보 세력에게 불리했고, 보수층에 유리했다는 증거가 한둘이 아니다.

 

과거의 ‘북풍’, 별 효과 없었다
선거를 앞두고 따뜻한 바람이 분 대표적인 사례는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이다. 선거를 사흘 앞둔 4월10일에 정상회담 개최 합의 사실이 발표되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여당이 압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휩쓸었다. ‘압승’ 정도가 아니었다. 김 대통령이 ‘개헌선’을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돌았다. 개헌선은 국회 의석의 3분의 2이다. 입법부를 손에 넣고 남북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통일 대통령’을 꿈꾼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남북정상회담으로 2000년 총선에서 참패하면 2002년 대통령 선거는 하나마나이다. 아니 이총재가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이 2001년이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이라도 답방하는 날이면 한나라당은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한나라당은 총선에서 1백33석을 얻어 다시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여당이던 민주당은 수도권 경합 지역에서 근소한 표 차로 패하면서 1백15석을 얻는 데 그쳤다.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 직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 동안 청와대에 칩거했다. ‘낮은 단계의 남북 연합’ ‘고려연방제’ ‘통일 대통령’ 등이 저 멀리 떠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했을지 모른다. 그는 노벨평화상은 수상했지만 국내전에서 패했다.
당시 보수의 결집은 무서울 정도였다. ‘한나라당이 무너진다’라는 위기감과 함께 ‘김정일을 총선에 끌어들인다’라는 반감이 상승 작용을 일으켜 보수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보수의 본향은 영남이다. 당시 영남과 수도권 간의 전화 통화가 급증한 이유도 영남의 부모들이 수도권에 거주하는 자녀·친척들에게 연락을 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나라당을 찍어라”가 화두였다. “김대중-김정일의 ‘한반도 구상’을 깨야 한다”라는 절박한 소리가 오갔다.
만약 김 전 대통령이 총선 이후 정상회담을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1백15석 이상을 얻었을 수도 있고, 그보다 적은 의석을 확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김정일을 총선에 끌어들였다” “5억 달러나 주고 ‘북풍‘을 샀다”라는 등의 비난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불법 대북 송금’은 박지원 전 비서실장을 옥에 가두기까지 했다.
냉풍이든 온풍이든 북풍이 보수층의 결속을 재촉한 증거는 또 있다. 1996년 15대 총선이다. 북한이 4월5일부터 7일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중무장 병력을 투입한 지 나흘 후에 치러졌다. 4파전으로 벌어진 선거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1백39석을 차지했고, 국민회의가 76석, 자민련이 50석, 민주당이 15석을 얻었다. 1석 차이로 여소야대가 재연되기는 했지만 신한국당의 선전이었다. 어이없게도 북한이 신한국당을 도운 것이다. 

 
북풍에 부는 역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보수층의 결집력을 그 요인으로 꼽는다. 북한과 김정일만 떴다 하면 보수층과 영남권이 투표소로 쏟아져나온 데 따른 현상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젊은층은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노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이다. 국민의 실망과 반감이 큰 상태이다. 범여권 신당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잡탕’ ‘서더리탕’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런 판에 범여권은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며 호들갑이다. 지지율 2~3%에 불과한 범여권 대선 주자들이 열광한다.
국민들은 대충 짐작하지 않을까? 왜 범여권이 남북정상회담에 그토록 자지러지고, 스테로이드 주사라도 맞은 양 갑자기 활기에 차는지. 두말할 필요 없이 불리한 대선 국면이 남북정상회담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너무 식상한 시나리오이다.
 남북정상회담 소식이 전해진 8월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은 하루 종일 부산했다. 동교동은 정상회담 개최 발표에 앞서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라며 “한반도 평화와 남북 교류 협력에 큰 진전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축하했다. “사생결단이라도 해서 한나라당 집권을 막아라”라며 범여권 대통합을 밀어붙인 그에게, 그래서 비난이 쏟아지는 그에게 단비가 내린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2000년에 그런 혹독한 경험을 했는데도 말이다. 범여권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이다. 절박하기는 노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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