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신호’ 평양에서 이미 느꼈다”
  • 김세원 (언론인·고려대 초빙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7.08.1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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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발표’ 직전 현지에서 본 북한 표정

 
‘AIR KORYO’. 비행기 몸체의 빨간 띠와 로고를 확인하자 새삼 가슴이 설레었다. 비가 내리는 김포공항 활주로에 대기중인 비행기는 북한 고려항공 여객기임이 분명했다. 8월4일 오전 10시.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세계평화센터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하는 일행 1백53명은 고려항공 전세기 편으로 방북길에 올랐다.
‘위생실(화장실)’ 같은 기내 표지나 안내원이 나눠주는 ‘로동신문’ ‘조선’ ‘금수강산’ 등의 신문·잡지, ‘배단물’ ‘사과단물’같은 청량 음료가 북한 여객기에 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비행기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개설된 서해 직항로를 경유해 1시간 만에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필자를 포함해 북한 방문이 초행길인 사람들은 정신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북측 안내원의 제지를 받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바깥 풍경이나 지휘소(관제탑) 같은 보안 시설을 촬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북측 인솔자가 허용하는 대상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방문시에는 반입 자체를 불허하던 카메라 소지는 허용하면서 휴대전화 소지는 불허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방북 실무를 맡은 평화여행사 관계자가 휴대전화를 북한 주민에게 넘겨주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귀띔했다.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조국의 맹세 의지에 심장이 불탄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 사상으로 사회주의 사상 실현하자’. 공항에서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변과 평양 시내의 큰 건물, 큰 도로 어귀에는 어김없이 독특한 서체의 구호와 대형 벽화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결같이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거나 사회주의를 선양하는 내용이었다. ‘미제 타도’ 등의 투쟁적인 구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연극 세트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극 공연장에 와 있는 듯했다.
평양은 ‘평평한 땅’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예부터 버드나무가 많아 ‘유경(柳京)’으로도 불렸다는 설명을 듣자 가파른 피라미드 모양의 1백5층 유경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유경호텔은 1989년 골조 공사까지 끝났지만 1990년대 초 투자했던 프랑스 기업이 떠난 후 자금과 기술 부족으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된 채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평양 방문 경험자들은 평양 시가지가 예전보다 훨씬 활기가 넘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무표정한 얼굴들이 많았다. 거리의 시민 중 양복을 입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는 대부분 어두운 카키색 인민복을, 여자는 단색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받쳐 입었다. 간간이 비를 뿌리는 정도인데도 많은 시민들이 장화를 신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비포장 도로가 많고 도보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비가 오면 장화가 최고라고 한다.
8월5일 오전 10시, 일행은 평천 구역 안산동 보통강변에 지어진 세계평화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세계평화센터는 3만㎡(약 9천평)의 대지 위에 건축 면적 4천6백69㎡(1천4백12평), 지상 6층 규모의 초현대식 국제 컨벤션 센터이다. 8백석 규모의 다목적홀과 대강당, 숙박시설, 강의실, 회의실,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황선조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회장은 “남북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0년이 지났으나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다목적 교류 공간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세계평화센터는 본격적인 남북 사회·문화·학술 교류 시대를 여는 가교이자 산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평화센터재단측은 세계 평화와 남북통일을 위한 국제회의 및 남북 간의 문화 학술 종교 교류 목적의 각종 행사를 유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산가족 북측 화상상봉 장소로 사용하고 북한주민을 위한 외국어 및 컴퓨터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평양-남포를 잇는 왕복 10차선 도로의 이름은 청년영웅도로이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의 붕괴로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었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청년들이 돌과 모래를 날라 손으로 건설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북한 내 자동차 독점 생산권을 갖고 있는 평화자동차는 북한 무역회사인 령봉총회사와 합영으로 2002년 4월 남포에 연산 1만 대 규모의 자동차 공장을 완공했다. 이곳에서는 이탈리아 피아트 사 등 외국산 자동차의 부품을 수입·조립해 승용차 ‘휘파람’과 지프차 ‘뻐꾸기’, 미니밴 ‘삼천리’, 고급 승용차 ‘준마’ 등을 생산하고 있다. 평화자동차의 량정만 공장장은 “생산되는 자동차의 가격은 휘파람 1만2천 유로, 뻐꾸기 1만2천5백 유로, 삼천리 8천7백50유로, 준마 3만2천 유로”라며 “김정일 장군님이 직접 차 이름을 지어주셔서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으며 공장과 기업소에서 주로 구입한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2003년부터 중고 승용차의 수입과 수출을 중단시켰다. 국산 조립차인 평화자동차를 육성하기 위한 우대 정책인 셈이다.

북한 당국, ‘속살’ 드러내는 호의 베풀어

 
마지막 날인 8월6일 저녁, 북한이 자랑하는 대규모 집단 체조 ‘아리랑’을 보러 갔다. 묘향산의 국제친선관람관과 만수대의 김일성 주석 동상, 개선문 주체사상탑 등 대리석으로 지어진 북한의 주요 건물과 조형물들은 한결같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용을 갖추고 있었는데 ‘아리랑’ 공연장인 능라도 ‘5월1일 경기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의 관람석은 3분의 1 정도만 찬 반면 공연에서는 평양의 청년 학생 5만여 명이 출연하고 2만여 명이 카드 섹션을 벌여 관람객보다 행사 참가자가 더 많았다. 밤10시, 1시간 반 동안의 공연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생리적 욕구도 참아가며 공연에 참가했던 청소년들이 조명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밤거리를 걸어서 귀가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서울에서 북쪽으로 2백61km 떨어진 평양은 남쪽 사람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자 가기 힘든 곳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평양을 다녀온 남쪽 사람은 4천3백80명이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 북한 당국이 우리 일행에게 선뜻 속살 일부를 드러내는 호의를 보인 배경이 궁금했다. 우리 일행의 방북을 전후해 몇 개 팀이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방북했다. 국제구호기구인 월드비전의 후원자 1백42명이 량강도 대홍단군에서 열린 씨감자 수경재배시설 준공식 참석차 지난 7월30일 3박4일 일정으로 북한을 다녀온 것을 비롯해, 8월3일에는 부산시 관계자들로 구성된 부산 북녘항생제공장건립추진위원회 일행 70여 명이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생명공학부 부설 항생제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했다. 의문은 서울로 돌아온 다음날 아침 자연스럽게 풀렸다. 이달 말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텔레비전의 뉴스 속보가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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