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다고 하기에는 ‘아직 먼 나라’ 여행
  • 김세원 (언론인·고려대 초빙교수) ()
  • 승인 2007.08.13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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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2백61km 떨어져 있는 평양은 남쪽 사람들에게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1953년 이후 남쪽에서 평양을 다녀간 사람은 연인원 1만5천명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북한을 전공했고 오랫동안 북한 취재를 했으면서도 최근 평양에서 있었던 ‘세계평화센터’ 준공식 참관차 직접 가본 북한은 그동안 정보와 지식으로 알고 있었던 북한과는 많이 달랐다.
수도 평양이든 평안북도 정주의 농촌마을이든 차창으로 스치거나 직접 체험한 북한의 풍경들은 빛바랜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들을 떠올리게 했다.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선군정치로 주체 혁명의 새 시대를 열자’. 큰 건물과 큰 거리 어귀마다 자리 잡고 있는 구호와 대형 벽화들이  ‘낮에는 불조심, 밤에는 간첩조심’ ‘보리혼식 분식으로 나라부강 이룩하자’ 등의 표어가 넘쳐났던 1970년대 초 서울 거리와 오버랩되었다.

북한 방문길, 비용보다 더 많이 얻어
비가 뿌리는 가운데 장화를 신고 버스를 타기 위해 종종걸음을 치는 시민들, 꾸물대며 거리를 굴러가는 전차, 흰 저고리 검은 치마 교복을 입은  여대생, 한복 차림이 생활화된 공공 장소의 접대원과 안내원들, 흰천을 두르고 머리를 깎아주는 ‘리발소’, ‘아리랑’ 공연의 카드 섹션에 동원된 수천 수만의 어린 학생들…. 평양이 변화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지만 초행자의 눈에는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 시계 바늘이 멈춰버린 채 지도자와 집단을 위해 개인이 희생해야 했던 권위주의 시대 속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 주체사상탑, 개선문  등 주요 건물 여성 안내원의 과장되고 격한 목소리도 돌이켜보니 어릴 적 보았던 문정숙·최은희 주연의 방화에서 흘러나오던 성우들의 목소리와 매우 닮았다. 감정 과잉의 간드러진 북한 대중가요는 1930~50년대 전성기였던 뽕짝의 현대식 버전임이 분명했다. 키를 넘는 옥수수밭 사이로 깨와 감자밭이 펼쳐져 있고 방죽에서 풀을 뜯는 염소들과 알몸으로 냇가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모습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강원도의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고려항공 이용, 묘향산 관광, ‘아리랑’ 공연 관람을 포함해 3박4일의 북한 방문에 보통 1백50만~2백만원이 든다. 여행 경비 중 일정 금액은 북한 당국에게 지불된다. 대북 사업 경험이 있는 이들은 북한과 교류하고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계약액 외에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보수주의자들이 북한 퍼주기라고 비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8월 말 평양에서 열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가 제공하기로 약속한 선물 보따리가 얼마나 되며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북한 정권으로 보내는 푸짐한 선물은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북 간의 교류와 경제 협력이 활성화되어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 당장 국가의 신용등급이 올라가고 주식 시장은 물론, 새로운 소비 시장과 투자처를 찾는 한국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
타임머신을 타고 30~40년 전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다고 생각하면 북한 방문 비용이 그렇게 비싼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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