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 승자, 축배는 짧고 고난은 길다
  • 김행 편집위원 ()
  • 승인 2007.08.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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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 후유증 깊어 ‘선거 공조’도 불확실…패자 쪽 지지자들 이탈 가능성도 높아

 

한나라당 경선이 끝났다. 그러나 누구도 ‘한나라당의 집권’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살육전을 연상케 하는 피투성이 경선을 거치면서 대선 후보와 당이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후보 사퇴론’까지 나왔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가 경선 결과를 진심으로 승복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근 반년간 상대방에 퍼부은 비난과 폭로, 여기에 가세해 춤까지 춘 두 후보 진영 현역 의원들의 모습은 사실상 화학적으로 반분된 한나라당의 자화상이다. 내상으로 불구가 된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더 격렬하고 살벌한 본선의 격투를 어찌 감당할지 궁금하다.
범여권은 여론이 조롱하든 말든 그들의 길을 가고 있다. ‘도로 열린우리당’이든 ‘짝퉁 열린우리당’이든 민주당을 빼고 일단 범여권 통합이라는 구색도 갖추었다. ‘안면몰수’한 김대중 전대통령의 지원 덕이다. 2~3%짜리 여권 후보 지지율을 올리는 것이 과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고 대선 막판 ‘후보 단일화’에는 민주당 조순형 후보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움켜쥐었다. 어떤 패가 나올지 모른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씩’ 웃는 듯하다. 더 중요한 사실은 민주신당은 여당으로, 한나라당은 야당으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즉, 한나라당의 상대 후보는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훨씬 많은 강한 후보라는 얘기이다.
2002년 ‘노무현 - 정몽준 관계’가 남긴 교훈
지난 대선을 돌이켜보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여론조사 다음 날인 2002년 11월26일. 깨끗이 승복한 두 후보와 정후보 쪽의 민창기 단일화협상단장, 필자(당시 정몽준 후보 대변인), 노무현 후보 쪽의 신계륜 의원, 이낙연 의원 등이 국회에서 만났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비공개 자리에서 신의원은 정후보에게 “이제 선대위원장을 맞아 도와주셔야죠”라고 정중히 요청했다. 정후보는 “일단 설악산에 다녀오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는 날 점심에 뵙죠”라고 화답했다. 그 때 노무현 후보의 반응은 이러했다. “아뇨, 뭘요? 꼭 만날 필요는 없죠. 그리고 그날 마침 제가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어서…”. 즉각 신의원이 나섰다. “아니 정후보님과 회동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어디 있습니까?”  “아니 천천히 뵙자구요. 그리고… 김대변인은 우리 집사람이 진작부터 ‘우리 쪽에 왔었으면 좋았겠다’고 하더군요.” 승자인 노후보의 예상치 못한 동문서답과 돌변에 정후보 쪽은 당황했고 필자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정후보가 명예선대위원장을 맞기까지는 12월13일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선거일로부터 꼭 1주일 전이다. 양쪽의 선거 공조가 그토록 늦어진 것은 정후보 쪽이 줄기차게 지분을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당시의 중론. 물론 그런 부분도 없지 않다. 그러나 노후보 역시 정후보의 도움을 절실히 원하지 않았다. 오직 단일화 상대로만 인정하려 했다. 정후보로서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는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있을까? 여론은 온통 패자가 과연 선대위원장 직을 수락해 승자를 도울 것인가에만 맞춰져 있다. ‘경선 후유증’을 우려해서이다. 일단 패자의 탈당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행법상 탈당을 하더라도 대선 출마의 길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권을 놓고 양측이 또다시 맞붙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간 내각 지분을 두고 벌였던 샅바 싸움처럼 말이다. 패자가 ‘당권·대권 분리론’을 내세우며 당권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비협조로 일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사실 승자 쪽이 선거 공조를 더 원치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경선 기간 중 ‘퇴로 없이’ 물고 뜯는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터이다. 게다가 막상 승자가 되고 보니 상대의 도움 없이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 한나라당 승자는 거의 대통령이 된 기분일 것이다. 누구 좋으라고 권력을 반분하겠는가? 당권을 어떻게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선거 공조의 열쇠는 사실 승자가 쥐고 있다. 
여론 역시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 사이의 단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8월16일 CBS가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44.9%가 경선 후 단합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았고, 39.2%가 승리 후보 중심으로 단합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두 후보 간의 단합만이 문제가 아니다. 중앙일보와 SBS, 동아시아연구원(EAI), 한국리서치의 대선 패널 2차 조사 결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를 지지한 사람들이 본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은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전 시장이 승리할 경우 박 전 대표 지지자 중 48.9%가 본선에서 이 전 시장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박 전 대표가 승리할 경우에는 이 전 시장 지지자 가운데 58.9%가 박 전 대표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각각 보인 것이다. 결국 상대 지지자의 절반은 달아난다는 분석이다. 현재의 여론으로 보면 ‘1+1=2 또는 그 이상’이 아니고 ‘1+1+=1.5’ 정도의 효과이다. 유념할 대목이다.
이제 한나라당 집권의 암초들을 하나하나씩 정리해보자. 가장 큰 암초는 승자의 오만일 수 있다. 권력에 취하면 패자가 보이지 않는다. 권력을 독식하고 싶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사례를 생각해보면, 단일화 여론조사 날까지는 두 후보가 대등하게 싸웠지만 여론조사로 승패가 갈린 후 승자와 패자의 지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과연 한나라당 승자는 패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

 
“차라리 패자 쪽 의원들이 더 나을지 모른다”
또 다른 암초는 승자의 상처가 너무도 깊다는 점이다. 경선 기간 중 온갖 의혹이 다 불거졌다. 그런데 어느 하나 명쾌히 밝혀진 것은 없다. 그 역할은 남은 본선 기간 중 온갖 정보를 틀어쥔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 그리고 검찰이 할 것이다. 친여 매체가 요란하게 동원될 것이다. 한나라당 전략통인 ㅊ의원은 “지금 한나라당을 보면 차라리 패자 쪽에 줄 선 의원들이 더 나을지 모른다. 본선은 물 건너갔다. 두 후보 모두 너무 약점이 많다. 승자는 본선에서 패해 정계 은퇴할지 모른다. 차라리 패자 쪽은 당권이라도 잡아 2008년 4월 총선 치르고, 차차기를 노릴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할 정도이다.
게다가 더 본질적인 것은 한나라당의 승자가 이번 경선 기간 중 국가 비전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여당 후보군들의 지리멸렬한 상황에는 노대통령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선은 미래를 보고 하는 선택이다. 여당 후보가 정해지면 선거 구도가 달라진다. 이해찬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는 한 방에 보낼 수 있다”라고 자신하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후보들의 TV 토론을 보고 굉장한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이 캠프 쪽 참여 인사의 전언이다. 며칠 전 만난 김민석 전 의원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내가 보기엔 여전히 여당에 가능성이 있다. 한나라당 후보가 너무 약체이다. 특히 유시민과 붙게 되면 힘들 것이다. 그는 각을 분명하게 세운다. 노선도 뚜렷하고 열렬 지지자들도 있다. 2002년 재판이 될지 모른다. 이회창 후보가 몸조심하다 당한 것처럼 대세론에 취해서 말이다”
선거는 당일 날에도 판세가 바뀐다. 대선까지는 4개월 남짓. 여당에 비해 너무도 일찍 후보가 정해진 한나라당은 무방비 상태로 집중 포화를 맞을 것이다. 여권은 이제 시작이다.  온갖 정치 이벤트 끝에 단일 후보를 탄생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검증 기간은 너무도 짧다. 한나라당의 본선 승리를 장담하기에는 여정이 너무도 멀고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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